1816년 여름, 우리는 스위스로 여행을 갔고 - 프랑켄슈타인의 기원이 된 두 여행의 기록
메리 셸리.퍼시 비시 셸리 지음, 유혜인 옮김 / 이일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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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메리 셀리는 뜨거운 여름날 런던을 떠났다. 그 열기를 피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도버 해협을 건넜다. 뱃멀미로 잠들었다가 깨어보면 목적지는 여전히 반절이나 남아 있었고, 바다는 폭풍처럼 일렁였다. 그럼에도 배는 나아갔다. 번개가 빠르게 번쩍이다가 동이 터 오는 수평선 위로 핏빛의 해가 솟아올랐다고 그녀는 썼다. 읽으며 생각했다.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편안한 출발이 아니라, 멀미와 불안 속에서도 닻을 올리는 것. 그리고 마침내 항구에 닿았을 때, 붉고 크고 구름 하나 없는 태양이 파도 위로 솟아 오르는 것을 보는 것이다. 알프스를 생각할 때마다 그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의 순간이다.


셸리 부부는 파리를 벗어나 걷기로 했다. 당나귀를 사고, 노새를 빌리고, 짐을 싣고, 여름의 대로를 걸었다. 그 길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코사크 군대가 쓸고 간 마을들은 지붕이 없었고, 벽은 무너져 있었으며, 소는 모두 빼앗겼다. 주민들은 나폴레옹이 패위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또 다른 침략을 두려워하며 집을 짓지 않았다. 여행은 때로 이렇게 잔인한 진실을 가르친다. 관광 책자에 나오는 장면들이 아니라, 사람의 손이 거쳐 간 자리, 역사가 몸을 부딪치고 간 흔적들. 언젠 가 유럽의 오래된 소도시를 걷다가 포탄 자국이 남아 있는 성벽을 만진 적이 있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돌의 울퉁불퉁함이 어떤 여행 안내서의 문장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메리 셸리가 황폐해진 마을을 지나며 기록한 문장은 그 감촉을 다시 불러온다. 


“이 재앙을 두 눈으로 목격하지 못한 자는 전쟁에 대한 진정한 혐오감을 알 수 없다." 제네바에 도착한 메리는 이렇게 썼다. 매일 저녁 여섯 시, 호수로 나가 배를 탄다고. 파도가 높아도 뱃멀미가 없다고. 오히려 물결이 흔들릴수록 기분이 고양된다고. 그리고 밤 열 시쯤 돌아오면 꽃향기와 갓 깎은 풀 냄새, 귀뚜라미 소리와 새소 리가 그들을 맞이한다고. 나는 그 문단을 천천히 두 번 읽었다. 호수 위의 저녁. 서서히 짧아지는 황혼. 점점 둥글어지는 달. 그리고 물에서 물으로 돌아올 때 코를 먼저 찾아오는 밤의 냄새들. 이것이 여행이다. 어디를 갔느냐가 아니라, 어느 저 녁에 어떤 바람을 맞았느냐. 어떤 냄새가 어떤 기억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느냐. 제네바 호수는 지금도 저녁이면 그렇게 흔 들리고 있을 것이다. 몽블랑이 물 위에 비치고, 쥐라 산맥이 검게 실루엣을 그리고, 어딘가에서 노를 젓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나는 그 호수 위에 아직 가 본 적이 없지만, 메리의 문장 덕분에 이미 그 저녁을 한 번 살았다.


알프스를 향해 가는 길은 서서히 달라진다. 평야가 언덕이 되고, 언덕이 능선이 되고, 능선이 벽이 된다. 나무들은 점점 더 검어지고, 강물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하늘은 점점 더 좁아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길이 협곡으로 접어들며 갑자기 세계의 크기 자체가 달라진다. 퍼시 비시 셸리는 그 감각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이전에 산이 무엇인지 알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다." 나를 오래 붙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가. 사진으로, 영상으로, 타인의 언어로 미리 경험했다고 믿으며 실제의 앞에 서는가. 그러나 알프스는 그 모든 예습을 무너뜨린다. 샤모니 계곡에 들어서며 눈사태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퍼시는 천둥인 줄 알았다가 가이드의 손짓으로 그것이 눈과 얼음의 붕괴임을 알아챘다고 썼다. 그 소리는 읽을 수 없다. 들어야 한다. 여행이 존재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몸이 직접 가서, 직접 듣고, 직접 놀라야 한다.


빙하는 느리게 움직인다. 하루에 약 30센티미터.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그러나 멈추지 않고. 그 위를 걸으며 퍼시는 얼 음의 균열 사이로 내려다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파란 틈새. 하늘보다 더 파란 색. 그는 썼다, 그 푸르름은 하늘의 것보다 아름답다. 몽블랑 정상에는 아무도 없다. 눈송이가 쌓이고, 바람이 눈을 날리고, 번개가 소리 없이 번쩍인다. 아무도 그것을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은 일어난다. 퍼시는 시 몽블랑의 마지막 연에서 이렇게 묻는다. ”만약 인간의 마음이 없다면, 침묵과 고독은 공허일 것인가?“ 알프스 여행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산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빙하는 우리 가 오든 오지 않든 흐른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 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그 침묵은 언어가 된다. 그 고독은 의미가 된다. 여행이란 어쩌면, 우리가 세상의 침묵을 제대로 듣기 위해 일상의 소음을 떠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메리와 퍼시는 결국 돌아갔다. 돈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라인강을 따라 배를 타고, 홀란드의 평야를 가로질러, 로테르담에서 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기니 동전까지 쓴 그들은 되돌아보며 이렇게 썼다. 800마일을 30파운드로 여행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충분했다. 어떤 여행은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라인강의 성벽들, 알프스의 빙하, 제네바 호수의 저녁들, 그 모든 것이 가슴 안에 접혀 들어간 채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여름의 기억이, 그 번개와 빙하와 폭풍 의 감각이 훗날 <프랑켄슈타인> 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 여행은 끝나도, 여행이 만들어낸 것은 끝나지 않는다. 알프스에 가고 싶다. 샤모니의 새벽에, 빙하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서 있고 싶다. 몽블랑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 때, 메리가 느꼈던 그 황홀한 경이, 광기와 경탄의 경계 어딘가에 있는 그 감각을 나도 한 번쯤 온몸으로 받아내고 싶다.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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