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과학자 - 우리 곁의 자연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기록한 과학의 순간들
이동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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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연필 한 자루, 혹은 펜 한 자루를 들고 자연 앞에 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화가이기 이전에 과학자였고, 과학자이기 이전에 무언가에 깊이 매료된 인간이었다. 마리아 시빌라메리안, 메리 애닝,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장 앙리 파브르, 존 제임스 오듀본. 이들의 이름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면, 공통된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살아 움직이는 것을 붙잡으려는 손, 그리 고 그 손이 긋는 선이다. 글을 읽으며 내내 한 가지 질문을 놓지 못했다. 왜 하필 그림이었을까? 문자가 없던 시절, 인간은 동굴 벽에 손을 얹고 윤곽을 그렸다. 사냥한 들소, 뛰어오르는 말, 손바닥의 실루엣. 그것은 보았다는 증거였고, 존재했다는 기록이었다. 그 본능은 수만 년이 지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17세기의 메리안이 누에의 허물을 스케치하고, 19세기의 오듀본이 새를 실물 크기로 화폭에 옮길 때, 그들은 동굴 벽의 인간과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림은 시대와 언어를 초월한다. 라틴어로 쓰인 논문은 시간이 지나면 번역이 필요하고, 언어가 다르면 오해가 생긴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려진 딱정벌레 한 마리는 300년이 지나도 같은 딱정벌레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그림을 선택한 가장 원초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마리아 시빌라메리안의 이야기에서 나는 가장 먼저 '용기'를 읽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그저 흉내내고 예쁘게 보이도록 하기보다 본인이 보고 경험한 모든 것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이것은 혁명적인 태도였다. 당시의 박물화는 대상을 아름답게 구성하는 것, 즉 이상화된 자연을 보여주는 것에 더 가까웠다. 메리안은 달랐다. 알에서 깨어나는 애벌레, 탈피 후 남겨진 허물, 고치를 뚫고 나오는 나방. 그녀의 그림에는 삶의 불완전한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형태만이 아닌 시간의 기록이었다. 생명이 변해가는 과정, 즉 생태 그 자체를 그림으로 포착한 것이다. 여성이 곤충에 관심을 갖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보이던" 시대에, 그녀는 수리남까지 건너갔다. 뇌졸중으로 몸이 마비된 후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메리안의 그림 앞에서 나는 묻게 된다. 그녀를 그 자리까지 이끈 것은 예술적 열망이었을까, 아니면 과학적 집념이었을까. 아마도 그 둘은 그녀 안에서 처음부터 하나였을 것이다.

메리 애닝의 이야기는 다른 결의 이야기다. 그녀의 손이 찾아낸 익티오사우루스 두개골은 박물관에 전시되었지만, 그 표본을 발굴한 사람의 이름은 오랫동안 기록되지 않았다. 화석을 해석하고 복원한 공로는 학회에 앉은 남성들에게 돌아갔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엘리자베스 필폿이라는 존재에 주목했다. 메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 여성이 없었다면, “메리 애닝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 이것은 과학의 역사 속에 숨겨진 수 많은 협력과 연대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빛나는 발견의 뒤에는 언제나 기록되지 않은 손들이 있었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과학에서 기록의 윤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림을 그리고, 화석을 찾고, 표본을 복원하는 행위. 그것이 누구의 것으로 남느냐는 순전히 권력과 제도의 문제였다. 지식은 발견되는 것이지만, 그 공로는 선택되는 것이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650볼트 전기뱀장어의 전기 충격을 네 시간 동안 직접 받아가며 실험했다. 산소통도 없이 6천 미터 고산을 오르며 자신의 몸 상태를 기록했다. 장 앙리 파브르는 정원 한 켠을 실험실로 삼아 평생을 보냈다. 돈도, 장비도, 학계의 인정도 없이. 관찰이란 결국 헌신의 다른 이름임을 깨닫는다. 훔볼트의 기록이 30권의 책이 되고, 파브르의 관찰이 10권의 <곤충기>가 된 것은 단지 지적 호기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알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 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사명감이었다. 파브르가 "나는 곤충을 연구하며 단 한 번도 돈을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가난 속에서 쓴 그 문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순수한 열정이 어디까지 인간을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머릿속에 빠르게 흘러가는 생각을 남기기 위해 필기구는 펜 하나만을 단촐히 사용한다.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화가들 이 완성을 목표로 그림을 그린다면, 현장의 과학자는 사라지기 전에 붙잡는 것을 목표로 선을 긋는다. 근육을 그리고, 골격을 그리고, 동공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전체가 아닌 부분을. 완성이 아닌 순간을. 이 필드 노트의 미학은 불완전함 속에 있다. 미처 그리지 못한 부분을 메모로 채우고, 확인하지 못한 것은 물음표로 남긴다. 그 불완전한 기록들이 쌓여 하나의 과학이 된다. 나는 이 장면에서 과학이 사실 얼마나 인간적인 행위인지를 새삼 느꼈다.

오듀본이 새를 그린 방식은 독특했다. 그는 단순히 새의 외형을 묘사하지 않았다. 날고, 먹고, 싸우고, 쉬는 새의 순간을 포착하려 했다. 그의 그림이 전통적인 야생동물 그림을 초월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생명을 그림 속에 가두지 않고, 생명이 그림 밖으로 튀어나오게 했다. 이것은 메리안이 변태의 과정을 기록하고, 파브르가 말벌의 외과적 침술 을 묘사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과학 그림의 목표는 대상의 복사가 아니라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다. 형태를 그리 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그리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이해는 인간에게 필요하다.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림 그리는 과학자들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남긴 그림들은 인간이 자연 앞에 섰을 때 얼마나.겸손해질 수 있는지, 동시에 얼마나 집요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메리안의 누에 허물, 메리 애닝의의티오사우루스 두개 골, 홈볼트의 고산 스케치, 파브르의 말벌 관찰, 오듀본의 살아있는 새들. 이 모든 선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 그리는 과학자가 되어야 하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소멸하는 것들 앞에서, 눈을 감지 않을 용기를 가진 채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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