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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가장 느린 것들이 가장 오래 빛난다
이유리 지음 / 청림출판 / 2026년 7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래도록 속도를 믿었다.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성과를 내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고,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며, 퇴근 후에도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는데, 어느 날 문득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었다. 내 삶의 좌표 자체가 흔들리는 감각이었다. 식물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식물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처음에는 그저 지친 마음을 달래줄 가벼운 읽을거리겠거니 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묵직한 울림을 얻었다. 식물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내가 외면해온 수많은 질문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중앙아메리카 우림에는 1년에 20미터씩 걷는 나무가 있다고 한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린 움직임이지만, 그 나무는 분명히 걷고 있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는 지금 걷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남들의 속도에 떠밀려 흘러가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우리를 분류한다.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 이름 있는 것과 이름 없는 것.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 도 벗어나면 마치 뽑아버려야 할 잡초처럼 취급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직장에서의 평가, SNS 속 타인의 화려한 일상,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척도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끊임없이 측정하고 판단한다. 그런데 책은 말한다. "잡초는 아직 이 름 불리지 않은 꽃이다." 버려져야 할 존재가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이라고. 그리고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화 려한 꽃이 아니라 흙 속 뿌리처럼, 들판의 잡초처럼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이라고. 오랫동안 부끄러워했던 나의 평범함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주목받지 않아도 괜찮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가능성으로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무미건조한 일상을 반복하며 나는 종종 스스로를 잡초 취급 했다. 특별하지 않고, 두드러지지 않고, 누군가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나 식물의 세계 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연에는 위계가 없다. "자연은 말하지 않는다. 어느 것이 옳은지, 무엇이 정상인지, 그 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서로의 삶을 이어갈 뿐이다."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멈춤'은 종종 실패나 게으름으로 읽힌다. 잠시 쉬어가겠다고 말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속도를 늦추면 도태되는 것 같다. 이 도시의 문법은 끊임없는 전진을 요구한다. 그런데 식물은 안다. 언제 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가을이 오면 나무는 수백만 장의 잎을 미런 없이 떨군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다. 멈춤은 후퇴가 아니라 다음 계절을 위한 전략이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 밑동치에서 봄이 오면 새 가지가 솟아오르듯, 내려놓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다. 맹그로브를 생각한다. 진흙 속 협기성 환경에서도 뿌리로 숨을 쉬며 살아가는 나무. 누가 봐도 불리한 조건에서, 남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숨구멍을 찾아낸다. 그 모습이 나의 지난 시간과 겹쳐 보였다. 나 역시 지금 내 자리가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자리가, 이 시간이, 뿌리로 숨을 쉬는 나만의 방식을 익히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발아의 순간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삶이란 깨어날 수 있는 가능 성이다. 죽음은 단지 잠시 멈춘 침묵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내게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하나의 철학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 금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시간도, 언젠가 새순을 틔우기 위한 고요한 기다림일 수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한 거대한 질문들이 나를 오랫동안 괴롭혀왔다. 잘 살고 있는가. 이 길이 맞는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그 질문들은 답을 주기보다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스피노자는 코나투스(Conatus)를 말했다.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자신을 보존하려는 근원적인 힘. 식물도 그 힘으로 산다. 거대한 의미를 위해서도 아니고, 허무주의에 반항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단순한 진리가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했다. 지금의 벗어남과 망설임, 겉으로 뻗 어낸 뿌리 하나하나가 결국 내 깊이를 만들어온 시간이었음을.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할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었다. 모 는 꽃이 아름다울 필요는 없고, 모든 아름다움이 눈에 띄어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봄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도시는 빠르게 돌아간다. 지하철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알림은 쉼 없이 울리고, 누군가는 더 높이, 더 빠르게 올 라가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오늘 식물 하나를 떠올리기로 했다. 말없이, 그러나 묵묵히 자신의 계절을 살아가는 식물. 나도 그렇게, 오늘 하루에 충실하며, 내 뿌리가 닿는 곳을 믿으며, 그냥 살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