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나와 내 돈, 내 사람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률 지식
임호균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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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 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표현이었다. 순하고 착하게 살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그 말을 일종의 칭찬이자 삶의 목표처럼 여기며 자랐다. 경찰서 문턱을 넘을 일도, 법원에 갈 일도 없이 조용히 사는 것이 가장 평온한 인생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접한 한 책을 읽으면서, 그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책은 현직 변호사가 자신이 다룬 수많은 사건들을 바탕으로 쓴 생활 법률서였다. 전세 계약, 지인 간의 금전 거래, 직장에서의 부당한 대우, 연애와 이별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까지, 책이 다루는 범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일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한 해에 접수되는 형사 고소와 고발 건수가 수십만 건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여겼던 법적 분쟁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상의 위험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책을 읽으며 크게 와닿았던 것은, 법을 모르는 착한 사람이 가장 먼저 손해를 본다는 지적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냉정하게 느껴지는 말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흔히 갈등 상황에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넘어가거나, 억울해도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오히려 상대방에게 만만하게 보이는 빌미가 되고, 결국 시간이 지나 돌이킬 수 없는 손해로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접한다. 전세 보증금을 떼이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퇴사 후에야 뒤늦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특히 나는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이기에, 주거와 관련된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요즘 뉴스를 켜면 하루가 멀다 하고 전세 사기 피해 소식이 들려온다. 그동안 나는 계약서를 쓸 때 그저 중개인이 알려주는 대로, 관행이라는 말에 기대어 서명해왔다. 계약서에 어떤 특약을 넣어야 내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불안감만 안고 살아온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계약 단계에서부터 확인해야 할 사항들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막연했던 두려움이 조금은 구체적인 대비책으로 바뀌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낯설게 느껴졌던 영역들도 있었다.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동거 관계의 정리와 같은 주제들은 평소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별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사건이 때로는 매우 치열한 법적 다툼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내가 그동안 타인의 갈등을 얼마나 피상적으로만 바라보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헤어진 이후에도 집요하게 연락을 시도하는 상대, 동의 없이 사적인 기록을 유포하는 상황 등은 더 이상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 누군가의 현실일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침착하게 증거를 모으고 절차를 밟아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훨씬 덜 무력한 상태로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이 강조하는 태도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철저히 증거를 중심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억울함이나 분노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 감정 자체는 법적으로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결국 나를 지켜주는 것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남긴 기록과 준비해둔 증거라는 사실을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대화를 정리해두고, 중요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문제가 될 만한 상황에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객관화하는 습관. 이런 것들이 거창한 법률 지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평소의 태도와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온라인 거래, 프리랜서 계약, 동업, 투자 등 예전에는 흔치 않았던 형태의 경제 활동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분쟁의 종류와 양상도 다양해졌다. 이런 시대에 법을 안다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본 소양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선하고 신중하게 살아가려 해도, 나를 둘러싼 관계와 계약, 거래 속에서 예기치 못한 갈등에 휘말릴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런 상황 자체를 완전히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를 갖추는 일일 것이다.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제부터라도 일상에서 남기는 기록의 습관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통장 내역 하나, 대화 캡처 하나가 훗날 나를 지켜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다른 하나는, 이 지식을 실제로 써먹을 일이 내 인생에 없기를 바라는 역설적인 소망이었다. 법을 안다는 것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당한 상황 앞에서 침묵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력을 갖추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방어력은 나 자신뿐 아니라, 언젠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지 모를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평범하고 조용한 하루하루가 여전히 가장 큰 축복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그 평온함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 정도는 갖추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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