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아파트는 피트니스센터, 작은 도서관, 스카이라운지, 심지어 실내 수영장과 시어터까지 갖추며 '자급자족 도시'를 표 방한다. 단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완결된 세계. 이것은 편의의 극대화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고립인가.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시설들이 '커뮤니티'를 표방하면서도 실제 공동체 형성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피트니스센터를 이용하면서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같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도 대화 를 나누지 않는다. 공간은 공유하되, 삶은 분리된다. 이것이 바로 현대 K-APT가 안고 있는 역설이다. 살고 싶은 집과 살 수밖에 없는 집의 간극은 이 맥락에서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교통 편의성, 학군, 녹지 공간, 최신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살고 싶은 집‘은 끝없이 오르는 가격표를 달고 있고, 그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살 수밖에 없는 집'으로 밀려난다. 주거의 질이 경제력으로 결정되는 사회에서, 아파트는 평등한 주거의 꿈이 아니라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구조물이 되 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에는 여전히 희망의 씨앗이 있다. 어린이집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노인 커뮤니티 센터 에서 바둑을 두는 어르신들, 다함께돌봄센터에서 서로의 아이를 돌봐주는 부모들. 설계된 공동체이지만, 그 안에서 자연 스럽게 피어나는 연대의 감정들. 아파트 커뮤니티가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시설의 양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질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