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스즈키 도시타카 지음, 김소연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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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처음 마주쳤을 때, 나는 잠시 멈추었다.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제목 하나가 마치 오래된 동화의 첫 문장처럼 가슴 속에 내려앉았다. 허풍이거나, 혹은 어린아이 같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품은 무게가 예사롭지 않았다. 저자 스즈키 도시타카는 동물언어학자이며, 도쿄대학 준교수다. 동화가 아닌 과학의 언어로 이 놀라운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까마귀, 참새, 비둘기가내가 아는 새의 이름은 고작 이 정도였다. 동물 전반에도 크게 흥미가 없었으니, 이 책은 어찌 보면 내 영역 밖의 이야기였다. 그런 데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길가에서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좋은 책의 힘이 아닐까.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사실은 처음부터 내 곁에 있었음을 깨닫게 만드는 것. 책은 그 깨달음의 여정을 따라가는 기록이다.

책이 여타 과학 에세이와 다른 점은,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연구 이야기 곳곳에 살아 숨쉰다는 것이다. 스즈키는 연구를 위해 경주 지역에서 한 달 동안 흰쌀밥만 먹으며 박새를 관찰했다. 아무런 반찬 없이, 물에 만 밥, 그냥 밥, 뜨거운 물을 부은 밥, 이 세 가지를 "메뉴"라고 부르며 노트에 기록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알 수 없는 숙연함이 따라왔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진실을 향한 집착, 보다 정확히는 아무도 증명하지 못한 것을 반드시 증명하겠다는 고집이다. 저자는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다윈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언어는 인간만의 것"이라고 믿어왔다고, 그 믿음은 관습이 되었고, 관습은 진실처럼 굳어졌다. 누구도 의심 하지 않았다. 아니, 의심하더라도 증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스즈키는 증명했다. ”쨔쨔쨔쨔“라는 박새의 울음소리가 뱀을 의미하는 명사라는 것을. 이 소리를 들은 박새는 머릿속에 뱀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시야 안에서 뱀을 찾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스즈키는 녹음된 소리를 재생하는 플레이백 실험을 통해, 이것이 특정 대상을 지시하는 언어 행위임을 입증했다. 그것은 단어였다. 박새에게는 뱀을 부르는 단어가 있었다. 이 발견 앞에서 나는 한동안 책을 내려놓았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올린 지식의 탑 바깥에,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세계가 얼마나 넓게 펼쳐져 있는가. 그것을 비둘기만 한 작은 새 한 마리가 증명해 보인 것이다.

스즈키의 연구 중 나를 놀라게 한 부분은 박새가 문법을 사용한다는 발견이었다. 단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운데, 그것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니. "피-이 피(경계)"와 "치치치치(모여라)"를 조합하면 "경계하면서 모여라"는 의미의 문장이 된다. 그리고 이 순서를 바꾸면 박새는 반응하지 않는다. 즉, 어순이라는 문법 규칙이 존재한다. 인간 언어의 본질 중 하나는 유한한 단어로 무한한 표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이를 '조합성'이라 부른다. 그런데 박새도 그것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다윈이 틀렸다. 그런가 하면, 박새가 날개로 제스처 를 한다는 발견도 있다. 새끼를 함께 기르는 수컷과 암컷 박새가 둥지 앞에서 한쪽이 날개를 파닥이면, 그것은 상대에게 “먼저 들어가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행위라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다. 새가 날개로 배려를 표현한다. 이 사실이 발표되자 전 세계 조류학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이후 다양한 새의 제스처 연구가 시작되었다. 스즈키는 단지 먼저 뛰어든 사람, 퍼스트 펭귄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먼저 걸어들어가, 그곳에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다.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처럼 매일 박새를 관찰하는 연구자는 박새를 닮아가고, 침팬지를 연구하는 학자는 침펜지 처럼 과일을 먹는 입 모양을 갖게 된다고. 처음에는 그냥 웃고 넘겼다. 그런데 읽으면서 점점 그 이야기가 묵직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우리가 오래 바라보는 것을 닮아간다. 그것이 사람이든, 새든, 침팬지든.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오래, 가까이, 진지하게 바라보는 것. 그 대상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흰쌀밥만 먹으며 겨울 숲에 앉아 있는 것. 스즈키의 연구는 학문적 성취이기 이전에, 박새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기록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무엇을 오래 바라보고 있는가. 무엇을 진지하게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는다. 오래된 관습처럼, "그런 거야"라고 단정 짓고 눈을 돌린다. 하지만 스즈키는 말 한다. 아직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덮은 뒤 나는 산책길에서 새 울음소리를 들었다. 이전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소리. 이제는 고개를 들어 어느 나무 위에 앉아 있는지를 찾게 된다. 그 작은 새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것이 스즈키가 건네고 싶었던 선물이 아닐까. 지식보다 더 오래 남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진실이라고 믿어 온 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실은 편견이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도, 다윈도 몰랐던 것을, 박새는 수백만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인간의 오만이 허물어지는 순간, 세계는 훨씬 더 풍요롭고 넓어진다. 데이터만을 믿고, 관습을 의심하고, 진실을 하나씩 쌓아가는 사람, 그 끝에 새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 나는 그 여정을 책에서 함께했고, 이제 나도 조금은 귀가 열린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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