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화학 이야기 1 - 우주 탄생부터 산업혁명까지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오미야 오사무 지음, 김정환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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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왕과 영웅, 전쟁과 조약의 연속으로 배워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위대한 정복자였고, 라부아지에는 위대한 과학자였으며, 나폴레옹은 불세출의 전략가였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 게 던졌다. "그들의 뒤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책은 그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한다. 바로 화학이었다고. 138억 년 전 빅뱅 에서 출발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유리 생산, 쿠푸 왕의 피라미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염색 위장술, 라부아지에의 단두 대에 이르기까지, 책은 인류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화학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역사의 방향타를 쥐고 있었음을 증명해낸 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가 사실은 절반밖에 보지 못한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먼저 나를 사로잡은 이야기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였다. 높이 약 139미터, 평균 무게 2.6톤인 돌 230만 개, 총 무게 600만 톤. 다이너마이트도, 포클레인도, 절단기도 없던 4,500년 전의 인간이 이 불가능해 보이는 구조물을 어떻게 완 성했을까. 나는 솔직히 말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무 막대기와 물이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믿기 어려웠다. 책이 설명하는 원리는 명쾌했다. 석재에 일직선으로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바짝 마른 나무 막대기를 꽂은 뒤 물을 붓는다. 그러면 나무 내부의 농도 차이를 해소하려는 물이 나무 내부로 스며들고 이것이 바 로 침투(삼투)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침투압이 단단한 암석을 갈라놓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현대 화학의 언어 를 몰랐을지언정, 그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응용했던 것이다. '지식'과 '이해'의 차이를 생각했다. 우리는 종종 개념을 외우는 것과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것을 혼동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침투압'이라는 단어를 몰랐지만, 자연의 이치를 몸으 로,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교과서에서 삼투압의 공식을 외우고도 그것이 피라미드와 연결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다. 지식은 이름이 아니라 연결에서 시작된다. 이 책이 나에게 처음으로 던진 깨달음이었다.


깊이 생각하게 만든 이야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염색 위장술이었다. 페르시아 원정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서양꼭두서 니에서 추출한 알리자린이라는 붉은 염료로 병사들의 군복을 물들였다. 피범벅이 된 부상병처럼 위장해 페르시아군을 방심하게 만들고, 그 허점을 찔러 수적 열세를 극복한 것이다. 이 일화는 영리한 전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여기서 심리학과 화학의 교차점을 발견했다. 붉은 색이 '위험', '부상', '패배'를 연상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인지적 편향이다. 알렉산 드로스는 그 편향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화학적 도구(염료)를 통해 심리적 효과를 이끌어냈다. 전쟁은 칼과 창으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색깔로, 냄새로, 정보로 싸우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광고 기업들은 색채 심리학을 이용해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빨간 색의 세일 태그, 파란 계열의 신뢰감을 주는 금융 브랜드, 초록 계열의 친환경 이미지. 2,300년 전 알렉산드로스가 알리자린으로 했던 일을 오늘날의 마케터들은 디지털 화면 위에서 반복하 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다만 그 도구와 무대가 달라질 뿐이다.


"그의 목을 자르는 데는 1초면 충분하지만, 그와 같은 두뇌를 가진 인물이 인류사에 등장하려면 적어도 100년은 걸릴 것이다." 화학의 아버지인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연금술에 사형선고를 내리고 근대 화학의 토대를 쌓은 인물이다. 그는 산소를 발견하고, 질량 보존의 법칙을 정립하며, 인류의 자연 이해를 수백 년 앞당겼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의 광풍은 그의 지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징세 청부업자였다는 이유 하나로, 혁명 재판은 그에게 단두대를 선고했다. ”공화국에 화학자 따위는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지식과 이성이 폭력과 집단적 분노 앞에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라부아지에가 죽은 이후에도 화학은 발 전했지만, 그의 죽음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손실은 라그랑주의 탄식처럼, 어쩌면 100년치의 지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깊은 물음을 제기한다. 과학기술이 사회를 바꾸는 힘이 있다면, 반대로 사회의 흐름이 과학을 억압하고 왜곡할 수도 있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처럼, 라부아지에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던 것처럼. 이성이 언제나 폭력보다 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역사가 가르쳐주는 냉혹한 진실이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에게 '화학'은 솔직히 시험 과목이었다. 원소 기호를 외우고, 화학식을 균형 맞추고, 몰 농도를 계산하 는 것. 그것이 내가 알고 있던 화학의 전부였다. 그러나 책은 화학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주었다. 화학이란 인류 가 자연과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고대 이집트인이 나무의 침투압으로 바위를 가르던 것도, 알렉산드로스가 알리자린으로 적을 기만하던 것도, 메소포타미아인이 모래와 소다로 최초의 유리를 만들어내던 것도 모두 자연의 원리를 발견하고, 그 것을 삶에 적용하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탐구였다. 화학은 교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불 앞에서, 강가에서, 광산에서, 전쟁터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더 잘 먹기 위해, 더 강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더 아름다운 색을 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발견해낸 것들이 모여 오늘날의 화학이 되었다. 이 관점은 나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지식은 그 자체로 탄생하지 않는다. 삶의 필요와 호기심이 만나는 지점에서 지식은 피어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필요와 어 면 호기심으로 배우고 있는가.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로서 학문을 바라볼 수 있을까. 책이 나에게 던진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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