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까지 나에게 '화학'은 솔직히 시험 과목이었다. 원소 기호를 외우고, 화학식을 균형 맞추고, 몰 농도를 계산하 는 것. 그것이 내가 알고 있던 화학의 전부였다. 그러나 책은 화학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주었다. 화학이란 인류 가 자연과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고대 이집트인이 나무의 침투압으로 바위를 가르던 것도, 알렉산드로스가 알리자린으로 적을 기만하던 것도, 메소포타미아인이 모래와 소다로 최초의 유리를 만들어내던 것도 모두 자연의 원리를 발견하고, 그 것을 삶에 적용하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탐구였다. 화학은 교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불 앞에서, 강가에서, 광산에서, 전쟁터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더 잘 먹기 위해, 더 강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더 아름다운 색을 내기 위해 본능적으로 발견해낸 것들이 모여 오늘날의 화학이 되었다. 이 관점은 나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지식은 그 자체로 탄생하지 않는다. 삶의 필요와 호기심이 만나는 지점에서 지식은 피어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필요와 어 면 호기심으로 배우고 있는가.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로서 학문을 바라볼 수 있을까. 책이 나에게 던진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