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박상미 지음 / 저녁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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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눈 속에서도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미는 수선화처럼, 나는 늘 관계 속에서 누구보다 먼저 상처를 입었다.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가슴에 박혀 있었고,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집에 돌아와 이불 속에서 혼자 되새기는 밤이 적지 않았다. 왜 나는 이렇게 약한가. 왜 나는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가.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문제는 내 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뿌리가 아직 충분히 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크고 단단해 보이는 나무도 뿌리가 얕으면 거 센 바람 한 번에 쓰러진다. 나의 뿌리는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즉 자존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랫동안 나 자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성적이고, 말주변도 없고, 늘 눈치를 보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쓸데없는 욕심까지 있었다. 그 욕심이 충족되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를 탓했고, 그 자책은 다시 상처가 되어 나를 깎아내렸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평가 하나하나에 온 마음이 출렁이는 것은 어쩌 면 당연한 결과였다. 자존감이라는 뿌리가 깊어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이기심이 아니라 건강한 관계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책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말해주었다.

관계에서 받은 상처보다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그 상처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재생하는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에 게 상처 되는 말을 들으면 며칠이고 그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렸고, 왜 그랬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 사람은 나를 어떻 게 보는 걸까, 하는 생각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화살" 이었다. 처음 화살은 타인이 쏜 것이지만, 두 번째 화살은 내가 나에게 스스로 쏘는 것이다. 이미 아픈 자리에 다시 상처를 입히는 행위. 생각해보면 나는 타인에게 입은 상 처보다 스스로에게 가한 두 번째 화살로 훨씬 더 오래, 더 깊이 앓아왔던 것 같다. 상처의 크기는 처음 맞은 순간이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 가슴을 찌르듯 와닿았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 상처를 키우고 있었 던 것이다. 반추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같은 고통을 머릿속에서 재생하는 동안 정작 나의 감정 상태만 더 나빠질 뿐이다. 자기연민, 즉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것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말이 이 지점에서 새롭게 다가왔다. 실수했을 때 가혹하게 자책하는 대신, 친한 친구를 위로하듯 나 자신을 다독이는 것. 스스로에게 엄격한 만 큼 타인에게도 엄격해지고,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타인의 부족함도 품을 수 있다는 이치가 비로소 이해되 었다. 두 번째 화살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관계 연습의 첫걸음이었다.

빅터 프랭클의 말은 강렬한 메시지였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나는 왜 그토록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렸을까. 이제 그 이유를 안다. 나에게는 그 공간이 없었다. 누군 가 무심코 던진 말이 나에게 닿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상처가 되고, 분노가 되고, 자책이 되었다. 자극이 들어오면 반응이 자동으로 터져 나왔다. 그 사이에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공간을 만드는 연습, 그것이 관계 연습의 핵 심이라는 것을 이 책은 알려주었다. 나를 향한 말이 비난처럼 들릴 때, 그 말 속에 담긴 상대의 감정과 소망을 읽으려는 노력.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한 박자 멈추고,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해석하며 듣는 것. 이것이 바로 공감대화의 출발점이다. '생각을 말하지 말고 소망을 말하라.' 이 단순한 원칙 하나가 사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필요로 하는지,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실감했다. 가장 편한 사람에게 가장 날 것의 말을 내뱉고, 그것이 상처가 되어 관 계를 멀어지게 만든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마"가 아니라 "나는 네가 이렇게 해주면 참 좋겠어"로 말하는 것. 말 한마디의 차이가 관계의 온도를 바꾼다. 그리고 듣는 것의 힘. 내 목소리가 많이 들릴수록 실패한 대화라는 말이 뼈를 건드렸다. 나는 얼마나 많은 대화에서 상대의 말을 충분히 듣지 못하고, 내 생각과 판단을 쏟아내는 데 급급했 는가. 경청은 단순히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과 그 안에 담긴 바람을 해석하며 듣는 적극적인 행위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관계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관계'란 어느 순간 도달하는 완성된 상태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래서 관계가 어긋날 때마다 '나는 역시 안돼' 하고 포기하거나, 관계 를 통째로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도망쳐왔다. 그러나 관계는 끝없이 배워가는 과정이다. 수선화가 매년 봄마다 다시 땅을 뚫고 올라오듯, 관계도 매번 다시 시작하고 다시 배우는 것이다. 상처도 관계 속에서 받지만, 행복도 관계 속에서 만들어 진다. 호모 사피엔스가 홀로가 아닌 함께 사회를 이루어 살아남았듯, 인간은 연결 속에서 비로소 완전해진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이 쌓여야 관계를 사랑하는 힘도 깊어진다. 내 마음이 충만해야 타인에게도 나눠줄 수 있다. 이제 나는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보다, 나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려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원인을 알았고, 방향을 알았다. 자극과 반응 사이 그 작은 공간에 자유와 힘을 조금씩 채워가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관계의 연습이다. 매일 조금씩,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며, 나는 오늘도 그 연습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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