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유인원 - 폭력적인 침팬지와 다정한 보노보로 바라본 인간 본성의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빌리버튼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믿어왔다. 이성과 도덕, 언어와 문명을 갖춘 인간은 여타 동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자부심이 인류의 역사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철학자들은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 정의했고, 종교는 인간에게 신의 형상을 부여했으며, 근대 과학조차 오랫동안 인간을 진화의 정점으로 묘사해왔다. 그러나 영장류학자 프란스드 발(Frans de Waal)은 그의 저서 <내 안의 유인원(Our Inner Ape)>에서 이러한 자기 인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드발은 침팬지와 보노보, 이 두 종의 유인원이 우리 인간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30년에 가까운 현장 연구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의 논지는 인간도 동물이다"라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그는 권력, 섹스, 폭력, 친절이라는 네 가지 핵심 주제를 통해, 우리가 가장 인간적이라고 여기는 특성들이 사실은 유인원과 공유하는 진화적 유산임을 설득 력 있게 논증한다.

드 발의 논의에서 가장 흥미로운 출발점은 침팬지와 보노보의 극명한 대조다. 두 종은 유전적으로 인간과 약 98.7%의 DNA를 공유하며, 서로 간에도 그 이상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 두 종의 사회 구조와 행동 양식은 놀라울 만큼 다르다. 침팬지는 철저한 수컷 위계 사회를 형성한다. 알파 수컷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 구조 속에서 개체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고, 때로는 잔인한 폭력도 불사한다. 드 발이 암스테르담 아른 동물원에서 목격한 루이트(Luit)의 죽음은 이를 상징적으 로 보여준다. 루이트는 빠르게 알파 자리에 오른 침팬지였는데, 경쟁자인 여룬(Yeroen)과 니키(Nikkie)가 동맹을 맺어 그를 공격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드 발은 이 사건을 "정치적 살인"이라고 표현하며, 침팬지의 권력 정치가 인간의 그것과 얼마나 유사한지를 강조한다. 마키아벨리적 전략, 배신, 동맹 구축, 이것들이 비단 인간 정치의 전유물이 아님을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실감하게 된다. 반면, 보노보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보노보 사회는 암컷 중심의 평화로운 공동체로, 구성원들 사이의 긴장은 종종 성적 접촉을 통해 해소된다. 보노보는 낯선 개체와도 음식을 나누고, 공감과 친절 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드 발은 보노보의 성(sexuality)이 단순한 생식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와 갈등 해소의 도 구로 기능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인간의 성적 행동이 가진 복잡한 사회적 맥락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이 두 유인원은 말하자면 인간성의 두 극단을 상징하는 거울이다. 한쪽에는 경쟁과 지배, 폭력의 충동이 있고, 다른 쪽에는 협력과 공감, 평화의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이 두 거울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는 존재다.

드 발은 인간 본성에 대한 오랜 이분법적 시각에 도전한다. 서구 사상의 전통에서 인간 본성은 종종 선과 악, 이성과 본능, 문명과 야만의 대립으로 설명되어왔다. 홉스(Thomas Hobbes)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속에 놓인 존재로 보았고,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반대로 인간의 본성적 선함을 주장했다. 이 오랜 논쟁에 드 발 은 제3의 답을 제시한다. 드 발에 따르면, 인간은 침팬지처럼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동시에, 보노보처럼 평화롭고 친절할 수 있는 "양극단적 유인원(bipolar ape)"이다. 이 두 가지 충동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진화적 역사에서 비 롯된 보완적인 성향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도덕성은 우리의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면모를 형성한 동일한 선택과정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이타심과 공감 능력은 사회적• 종교적 훈련을 통해 인위적으로 주입된 것이 아니라, 유인원으로서의 생물학적 역사 속에 이미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폭력성을 문명 이전의 '동물적 잔재'만 보거나, 반대로 인간의 친절함을 '문화적 산물'로만 해석하는 것은 모두 불완전한 시각이다. 우리 안의 침팬지와 보노보는 공존한 다. 암스테르담 동물원의 침팬지들이 권력을 두고 죽음의 싸움을 벌이는 동안, 다른 무리의 침팬지는 다친 연구자에게 다 가가 위로의 포옹을 건넨다. 이 두 장면은 모두 '인간적'이며, 동시에 모두 '유인원적'이다. 또한 드 발은 권력에 대한 인간 의 욕구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침팬지 사회에서 알파 수컷은 단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내 갈등을 중재 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권력은 착취의 도구인 동시에 질서와 안정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인간 사회의 리 더십과 정치 구조를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왜 본능적으로 강하고 공정한 지도자를 원하는지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결국 자기 인식의 확장이다. 우리 안에는 루이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침팬지의 냉 혹한 정치적 본능도 있고, 낯선 이와 기꺼이 음식을 나누는 보노보의 따뜻한 공감 능력도 있다. 이 두 중동은 우리를 불편 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있는 그대로 설명해 준다. 내 안의 유인원을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정당화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더 정직하게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우리가 왜 권력을 탐 하는지, 왜 때로 잔인해지는지, 그러면서도 왜 낯선 이의 고통에 눈물짓는지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진화는 우리에게 운명을 부과하지 않는다. 다만 가능성의 범위를 알려줄 뿐이다. 침팬지와 보노보 모두를 품은 양극단적 유인원"으로서,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갈 수 있다. 드 발이 말했듯, 수백만 년의 시간 이 그 답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긴 여정의 매 순간,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현명하게 하기 위한 첫 걸음은, 거울 속에서 유인원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것을 두려움 없이 마주하는 용기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