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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제주여행 가이드북 - AI 시대, 여행을 바로 보는 새로운 기준 - 2000여 여행지로 정리한 제주 여행, 2026-2027 개정증보2판 ㅣ 에이든 가이드북 &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 외 지음 / 타블라라사 / 2026년 3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든 여행은 어딘가로부터 시작된다. 누군가에게는 우연히 펼쳐진 사진 한 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인의 말 한마디가 그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제주는 드라마 한 편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를 처음 틀었던 건 아무 계획 없이 보낸 어느 평일 밤이었다. 제주의 말투, 제주의 냄새, 제주의 바람이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돌담 사이로 흐르는 바람, 억새밭을 물들이는 노을, 해녀 할머니들의 웃음소리. 드라마가 끝났을 때 나는 이미 반쯤 제주에 와 있었다. 그 열망이 막연한 동경으로 그치지 않은 건 에이든 제주여행 가이드북 덕분이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제주는 더 이상 꿈속의 섬이 아니었다.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되었다. 지역별로 촘촘히 엮인 여행지 정보들, 숨겨진 맛집과 카페, 오름과 숲길의 위치가 사진과 함께 펼쳐지자 머릿속에서 동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책의 저자 이정기는 20년간 여행 콘텐츠에만 몸담아 온 전문가다. 그 내공이 페이지마다 느껴진다. 단순한 명소 나열이 아니라, 계절별 꽃과 식물, 테마별 액티비티, 지역 전통시장과 플리마켓까지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건 꼭 가야 해'라는 메모를 남기게 된다.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지나치게 꼼꼼한 편이다. 동선이 꼬이면 괜히 지치고, 좋은 장소를 그냥 지나쳤다는 아쉬움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가이드북을 앞에 놓고 여름 제주 여행의 큰 뼈대를 잡는 데만 며칠을 보냈다. 첫날은 제주 서북부를 택했다. 가이드북이 '해 질 녘 가장 빛나는 감성'이라고 표현한 그 구역이다. 애월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리다가, 구엄리 돌염전에 멈춰 서서 현무암 암반 위로 스며드는 햇빛을 바라볼 생각이다. 조선시대부터 소금을 생산했던 이 천연 암반지대는 올레 16코스와 이어져 있다. 올레길을 걷다 배가 고프면 근처 남또리횟집에서 고등어회를 먹을 계획이다. 잡내 없는 고등어회에 고등어 메밀소바라니, 생각만으로도 입맛이 돈다. 이틀째에는 오름 트레일에 도전하고 싶다. 가이드북을 보며 오름의 종류가 이토록 다양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일출 명소로 유명한 따라비오름과 지미봉, 도두봉 정상의 키세스 존까지. 특히 도두봉은 공항 근처라 가볍게 산책하기 좋고, 나무 숲 사이로 하늘이 키세스 초콜릿 모양으로 뚫려 있다는 그 장면을 직접 보고 싶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해도 기꺼이 기다릴 것 같다. 영화와 그림을 좋아하는 내게, 제주의 미술관과 갤러리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가이드북의 박물관·미술관 섹션을 보며 여러 곳에 밑줄을 그었다. 자연 속에 자리 잡은 갤러리들이 많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억새밭이나 감귤 밭을 배경으로 한 야외 전시라니, 도시의 하얀 큐브 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감각일 것이다.
에이든 가이드북의 가장 큰 미덕은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광고성 정보와 이미 폐업한 가게, 수년 전 후기들이 뒤섞여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한다. 이 책은 그 피로를 덜어준다. 지역별로 검증된 장소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지도를 펼쳐 동선을 짜는 과정 자체가 여행의 일부가 된다. 물론 아날로그 지도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영업시간이나 임시 휴무, 실시간 교통 상황 같은 것들은 스마트폰으로 확인해야 한다. 나는 그 둘을 조합할 생각이다. 가이드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세부 사항을 채우는 방식. 이 현명한 조합이 여행을 더 유연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의도적으로 여백을 남겨두려 한다. 계획하지 않은 골목에서 발견한 독립 책방, 우연히 들어간 전통시장에서 만난 어떤 맛,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마주친 노을, 그런 것들이 여행을 여행답게 만든다는 걸 이제는 안다. 가이드북은 나에게 지름길을 알려주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은 결국 나의 발걸음과 감각이다.
요즘 나는 매일 밤 책상 위에 가이드북을 펼쳐 두고 한 장씩 넘긴다. 페이지마다 형광펜 자국이 늘어나고, 포스트잇이 하나둘 붙는다. 서귀포의 독채 숙소 '평온'의 정원 사진 앞에서는 잠시 멈췄다. 귤나무가 있는 정원이 보이는 통창, 야외 자쿠지. 이곳에서 하루 이틀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는 말 그대로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관광지다. 성산일출봉처럼 누구나 아는 명소 뒤에도,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오름과 해안 도로와 숲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여름, 나는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열어볼 것이다. 지도 한 장을 손에 쥐고서. 혼저옵서예,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