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세계문화전집 2
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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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작년 여름 휴가를 떠올린다. 비엔나에 도착한 날, 나는 먼저 커피를 마셨다. 링슈트라세의 카페에서 멜랑주 한 잔. 크림이 구름처럼 얹힌 그 커피를 홀짝이며 나는 생각했다. 이 도시는 세기말에도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아니면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균열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레오폴드 미술관 앞에 서자 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심장이 아니라 가슴 어딘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자리가 조여드는 것 같았다. 매표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기 전, 나는 잠시 멈췄다. 프란 츠 카프카가 이 도시에 온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었다. 카프카는 프라하 사람이었다. 빈은 에곤 실레의 도시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실레의 그림 앞에 서기 위해 이 계단을 오르면서, 카프카를 먼저 떠올렸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실레의 그림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낯설고 불편한 풍경이었다. 비틀린 몸통, 각이 진 팔꿈치, 살갗 아래에서 불거져 나올 것 같은 뼈의 윤곽, 그는 인간의 신체를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감추고 싶은 것들을 날카롭게 꺼내놓았다. 나는 <나무 네 그루, 1917 년>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가을의 나무들이다. 그러나 화려하거나 풍요롭지 않다. 나무들은 저마다 뒤틀린 몸으로 서 있고, 뿌리는 땅속 깊이 박혀 있지만 가지 끝은 허공을 향해 어딘가 부러질 듯 뻗어 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무가 아니라 인간처럼 보인다. 고통을 흡수하면서도 어떻게든 서 있으려는, 조용하고 필사적인 존재들처럼. 그 앞에서 나는 카프카의 요제프 K를 떠올렸다. 그는 아침에 일어났고, 아무 이유 없이 체포되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법원은 지하 어딘가에 있었고, 판사는 보이지 않았으며, 절차는 끝나지 않았다. 죄가 있기 때문에 재판받는 것이 아니었다. 재판을 받기 때문에 죄인이 되었다. 실레의 나무들도 그랬다. 무언가 를 잘못해서 저렇게 뒤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냥 저 모양으로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은 그것을 불편하다고 말했다.


<초승달 모양을 이룬 집들, 1915년> 앞에서 나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우중충하고 불투명한 색깔들이다. 집들은 촘촘히 붙어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로를 밀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창문에는 빛이 없고, 벽과 벽 사이의 골복은 좁고 깊 다. 이 집들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꿈을 꿀까. 나는 갑자기 카프카의 문장 하나가 생각났다. "세상으로 도망쳐 들어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세상을 기뻐할 수 있겠는가." 카프카는 글을 썼고, 실레는 그렸다. 방식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다. 사회의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눈. 혹은 안에 갇혀서 바깥을 향해 손을 뻗는 팔. 그것 이 카프카의 문장이었고, 실레의 선이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실레는 빈에서 각자 의 불안을 살았다. 그러나 나는 레오폴드 미술관의 전시실 안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라는 거대한 압력 아래 숨 막혔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그 무게를 작품 안에 새겨넣고 있었다. 쌍둥이처럼. 만나지 않은 쌍둥이처럼.


미술관을 나오면서 나는 다시 커피를 마셨다. 이번에는 한 잔이 아니었다. 두 잔. 어쩌면 세 잔. 카페인이 혈관을 달리는 것 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부정맥은 아니었다. 그저 무언가를 너무 깊이 들여다본 사람의, 불규칙한 두근거림이었다. 나 는 생각했다. 카프카와 실레는 결국 자신의 불안을 극단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것을 글로, 선으로, 색으로 터뜨렸다. 피폐한 삶의 어두운 에너지를 세상이 알아보기 오래 전부터, 그들은 이미 그것을 예술로 변환하고 있었다. 제국이 무너질 때 예술이 폭발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무의식을 해부하던 시대, 클림트가 황금빛 관능을 그리던 시대, 쇤베르크가 불협화음으로 새로운 음악을 열던 시대. 그 한가운데서 카프카는 변신하는 인간을 썼고, 실레는 해체되는 신 체를 그렸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비엔나의 한 미술관에서 그들의 흔적 앞에 서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링슈트라세를 천천히 걸었다. 가을 빛이 기울어지는 거리였다. 마로니에 잎이 떨어지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트램이 낡은 선로 위를 달렸다.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도시의 지층 어딘가에 카프카의 문장들이 새겨져 있고, 실레의 선들이 뿌리처럼 박혀 있다는 것을. 불안은 어떤 방식으로 몸 안에 존재 하고 있는가.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품은 채 걷는 것, 그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프카도, 실레도 결국 그렇게 살았을 테니까, 불안을 안고, 그것을 쪼개어 세 상에 내놓으면서, 그들이 남긴 것들 덕분에 나는 오늘, 조금 덜 혼자였다. 책은 나의 추억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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