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에 숨겨진 불멸의 바이블 : 구약 성경 명화 속에 숨겨진 불멸의 바이블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원재훈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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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처음 들었던 이야기들이 있다.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소년 다윗, 고래 뱃속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 그 이야기들은 신기하고 무서웠으며, 때로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장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이야기들을 잊어버렸다. 어른이 되면서 세상은 더 복잡해졌고, 고대의 서사는 현실과 점점 멀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구약 성경은 서재 한쪽에 꽂혀 있는 묵직한 책이었지, 내 일상 속 살아있는 언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나는 뜻밖의 방식으로 그 이야기들과 다시 만났다. 거장들의 그림 앞에서였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모세상 앞에 선다고 상상해본다. 대리석으로 빚어진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인내가 동시에 새겨져 있다. 40년을 광야에서 보낸 한 인간의 무게감이 돌 속에 그대로 응축되어 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텍스트로 읽을 때는 모세가 그저 '위대한 지도자'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존재했는데, 조각 속 그의 손가락 하나, 눈빛 하나가 나를 기원전 어느 사막 한가운데로 끌어당긴다는 것을. 예술은 시간을 접는다. 수천 년의 간극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 렘브란트가 그린 〈아브라함의 희생〉은 더욱 강렬하다.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버지의 손, 그 손 위로 천사가 내려와 칼을 막는 순간. 렘브란트는 그 찰나를 포착했다. 빛과 어둠이 극적으로 충돌하는 화면 속에서, 나는 아브라함의 손이 떨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라고 담담하게 기록하지만, 렘브란트는 그 담담함 이면의 인간적 고뇌를 화폭에 남겨두었다. 믿음이란 의심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심을 끌어안고도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임을 그 그림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구약 성경은 참으로 이상한 책이다. 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다. 질투하고, 실수하고, 도망치고,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카인은 동생을 죽이고,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탐욕을 이기지 못하며, 솔로몬은 지혜의 절정에서 오히려 어리석음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완벽한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진실하다. 루벤스의 그림들을 보면 이 아이러니가 더욱 선명해진다. 그의 화폭은 넘쳐흐를 듯 풍성하고 육감적이며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신의 계시를 받는 순간조차 그의 인물들은 땀을 흘리고 근육을 긴장시키며 살아서 꿈틀거린다. 성경의 이야기가 천상의 것이 아니라 지상의 것임을, 인간의 몸과 감각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임을 루벤스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헨드릭 빌렘 반 룬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그가 글을 쓰는 방식, 즉 어려운 역사를 마치 이웃집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들려주듯 풀어내는 그 방식은 즉각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는 구약의 이야기를 신앙의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먼지바람 속에서, 이집트 나일강의 범람 속에서, 가나안 땅의 정치적 긴장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역사의 언어로 재구성한다. 그 시선이 흥미로운 이유는, 성경을 읽는 행위를 종교적 의무가 아닌 지적 탐험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 실재했던 대홍수의 기억과 겹쳐지고, 출애굽의 여정은 고대 이집트와 셈족 문명 사이의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곧 인류 문명의 여명기를 읽는 것과 같다는 감각, 그 감각을 이 책은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일깨운다.


나는 가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서양 회화 앞에 서면 당혹감을 느끼곤 했다. 수태고지, 최후의 만찬, 다윗과 골리앗. 제목은 알겠는데 그림 속 인물들의 손짓과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배경에 무슨 이야기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쳤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서양 미술의 절반 이상이 성경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를 몸으로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구약의 서사를 그림과 함께 다시 읽기 시작하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빛의 방향, 인물의 시선, 화면 구석에 놓인 작은 사물들. 화가들은 성경을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에 감응하고, 분노하고, 눈물 흘리며 붓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그림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곧 성경의 이야기를 그들과 함께 다시 살아내는 일이다. 예술과 고전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간은 무의미해진다. 기원전 수천 년의 광야와 16세기 로마의 작업실과 21세기 서울의 내 책상이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이어진다.


인류는 왜 이 이야기들을 이토록 오래 기억해왔을까. 홍수, 추방, 방랑, 약속, 배신, 귀환. 이 패턴들이 수천 년 동안 반복해서 그려지고, 쓰이고, 노래되어 온 까닭은 그것이 신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에덴 밖에서 길을 잃고, 언제나 약속의 땅을 향해 걷고, 언제나 믿음과 의심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간다. 렘브란트가, 미켈란젤로가, 루벤스가 그 이야기에 매혹되었던 것처럼,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오래된 서사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화려한 색채와 드라마틱한 붓질 뒤에 숨겨진 것은 결국 이 질문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어쩌면 그 질문에 완전한 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천 년 전 사막을 걸었던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화폭에 옮겼던 거장들도, 그리고 지금 이 책을 펼치는 나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덜 외롭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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