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왜 이 이야기들을 이토록 오래 기억해왔을까. 홍수, 추방, 방랑, 약속, 배신, 귀환. 이 패턴들이 수천 년 동안 반복해서 그려지고, 쓰이고, 노래되어 온 까닭은 그것이 신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에덴 밖에서 길을 잃고, 언제나 약속의 땅을 향해 걷고, 언제나 믿음과 의심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간다. 렘브란트가, 미켈란젤로가, 루벤스가 그 이야기에 매혹되었던 것처럼,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오래된 서사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화려한 색채와 드라마틱한 붓질 뒤에 숨겨진 것은 결국 이 질문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어쩌면 그 질문에 완전한 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천 년 전 사막을 걸었던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화폭에 옮겼던 거장들도, 그리고 지금 이 책을 펼치는 나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덜 외롭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