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안부를 묻는 것,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 누군가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 이런 작은 접속들이 모여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망이 된다. 책임있는 자리에 올라가기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쁜 결정에 동참해야 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으면 그 결정은 어차피 이루어진다. 다만 다른 사람이 내릴 뿐이다. 더 많은 사람이 결정하는 자리에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의 현실이 결정에 반영된다. 그것이 성취를 넘어, 광의의 협업이 되는 지점이다. 관계에서 또 하나 놓치기 쉬운 것은, 같은 여성 동료에 대한 태도다. 경쟁적인 환경에 서 오래 살아남다 보면 비슷한 처지의 동료를 경쟁자로 먼저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를 경쟁자로 보는 순간, 서로의 사다리가 될 가능성도 사라진다. 다른 여자를 존중하는 일은 도덕적 당위이기 전에, 자신이 속한 구조를 조금씩 바꾸는 실천이기도 하다.
번아웃이라는 말이 이렇게 흔해진 시대에도, 정작 번아웃이 오기 전에 멈추는 사람은 드물다. 할 일 목록이 눈앞에 있고, 번아웃은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재능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최고 수준이라는 데 있다. 성실함과 자기착취는 때로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분산이다. 재테크의 분산투자처럼, 인생에서도 에너지와 의미를 한 곳에만 몰아넣지 않는 것. 일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으려 하면, 일이 흔들릴 때 자신 전체가 흔들린다. 일 외의 관계, 일 외의 관심사, 일 외의 시간이 실은 일을 오래 지속하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 능숙함은 재능과 다르다. 재능은 타고날 수 있지만, 능숙함은 반드시 꾸역꾸역의 나날을 통과해야 온다. 재미없는 것을 참아내는 시간 없이 재미있는 순간이 오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위로처럼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공정한 말이기도 하다. 누구도 처음부터 능숙하지 않았다. 지금 어설픈 것은 부족한 게 아니라, 아직 그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라는 뜻 이다. 어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만성질환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일은 포기가 아니 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해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찾을 수 있다. 해결하려다 지치는 것과, 안고 가면서 나머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 잘 못하는데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것이 때로는 무모해 보이지만, 현실에 기반한 신중함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곳에 이르게 해주기도 한다. 허술해 보이는 다리를 냅다 건너다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길은 충분히 준비된 다음에야 열리는 게 아니라, 일단 걸어 들어가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