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주문 - 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개정증보판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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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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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우리는 무언가를 다짐하며 집을 나선다. 오늘은 좀 더 잘해보자, 오늘은 참아보자, 오늘은 모른 척해보자. 그 다 짐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나는 지금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일터는 생각보다 언어가 많은 곳이다. 회의에서 오가는 말, 메일로 주고받는 문장, 복도에서 스치는 눈빛. 그런데 그 수많은 언어 속에서 정작 자신을 설명하는 말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일하는 여성들에게, 일터의 언어는 때로 자신을 담기에 너 무 좁거나, 자신을 표현하기에 너무 위험한 그릇처럼 느껴진다. 그 좁고 위험한 자리에서, 그래도 나를 지우지 않는 방법 을 묻는 책이다.


우리는 종종 '표현이 거칠다'는 말을 듣는다. 혹은 반대로, 너무 조심스럽다는 말을,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같은 행동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언어로 불린다는 사실이다. 똑같이 꼼꼼하게 일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철저하다'는 말이 돌아오고 어떤 사람에게는 '예민하다'는 말이 돌아온다. 의견을 강하게 밀면 누구는 '소신 있다'는 평을 받고, 누구는 이기적이 다는 평을 받는다. 이 언어의 격차는 어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어떤 자리에 있어도 된다고 여겨지는가에 대한 사회의 무의식이 말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그리고 타인에게 증명하는 행위에 가깝다.


쿠션어를 어디서 쓰고 어디서 걷어낼지, 침묵을 언제 견디고 언제 깨뜨릴지, 왜냐하면 이라는 한 단어가 어떻게 말의 무게를 달리 만드는지, 이 모든 것들이 일터에서 자신을 유지하는 언어의 근육이다. 그리고 이 언어의 근육은 혼자 키우기 어렵다. 말을 꺼내도 튕겨나오는 분위기, 의견을 냈을 때 무시되는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은 결국 말을 삼키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기술보다, 말해도 된다는 감각을 되찾는 일이다. 내 말이 어떤 공간에서는 가치 있게 받아들여진다는 경험이 쌓여야, 말하는 연습도 의미를 갖는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글로 정리하는 행위는, 내가 겪은 일을 나만의 지식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아무도 평가해주지 않아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기록된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훗날 자신을 설명할 언어가 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발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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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오래, 그리고 잘 살아남은 여성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혼자'라는 것이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남에게 도움을 주지도 않으며, 오롯이 자신의 능력으로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 그 독립심은 분명 대단하다. 그러나 그 결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연결하는 고리가 조용히 끊어진다. 네트워킹이라는 단어는 종종 불편하게 느껴진다. 목적있는 관계, 이해관계로 얽힌 인맥 그런 인상 때문에 진정성 있는 사람일수록 의식적으로 멀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네트워킹의 본질은 이해타산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서로의 사다리가 되어주는 일이다. 술자리를 함께 해야만 만들어지는 관계라면, 술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관계망 밖에 놓인다. 접근 가능한 경로 자체가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자리에 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른 방식의 연결을 만들 것인가다.


가볍게 안부를 묻는 것,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 누군가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 이런 작은 접속들이 모여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망이 된다. 책임있는 자리에 올라가기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쁜 결정에 동참해야 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으면 그 결정은 어차피 이루어진다. 다만 다른 사람이 내릴 뿐이다. 더 많은 사람이 결정하는 자리에 있어야, 더 많은 사람의 현실이 결정에 반영된다. 그것이 성취를 넘어, 광의의 협업이 되는 지점이다. 관계에서 또 하나 놓치기 쉬운 것은, 같은 여성 동료에 대한 태도다. 경쟁적인 환경에 서 오래 살아남다 보면 비슷한 처지의 동료를 경쟁자로 먼저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를 경쟁자로 보는 순간, 서로의 사다리가 될 가능성도 사라진다. 다른 여자를 존중하는 일은 도덕적 당위이기 전에, 자신이 속한 구조를 조금씩 바꾸는 실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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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이라는 말이 이렇게 흔해진 시대에도, 정작 번아웃이 오기 전에 멈추는 사람은 드물다. 할 일 목록이 눈앞에 있고, 번아웃은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재능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최고 수준이라는 데 있다. 성실함과 자기착취는 때로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분산이다. 재테크의 분산투자처럼, 인생에서도 에너지와 의미를 한 곳에만 몰아넣지 않는 것. 일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으려 하면, 일이 흔들릴 때 자신 전체가 흔들린다. 일 외의 관계, 일 외의 관심사, 일 외의 시간이 실은 일을 오래 지속하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 능숙함은 재능과 다르다. 재능은 타고날 수 있지만, 능숙함은 반드시 꾸역꾸역의 나날을 통과해야 온다. 재미없는 것을 참아내는 시간 없이 재미있는 순간이 오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위로처럼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공정한 말이기도 하다. 누구도 처음부터 능숙하지 않았다. 지금 어설픈 것은 부족한 게 아니라, 아직 그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라는 뜻 이다. 어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만성질환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일은 포기가 아니 다. 오히려 그것을 인정해야,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찾을 수 있다. 해결하려다 지치는 것과, 안고 가면서 나머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 잘 못하는데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것이 때로는 무모해 보이지만, 현실에 기반한 신중함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곳에 이르게 해주기도 한다. 허술해 보이는 다리를 냅다 건너다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길은 충분히 준비된 다음에야 열리는 게 아니라, 일단 걸어 들어가야 열린다.


책이 말하는 '주문'은 마법이 아니다. 현실을 바꿔주는 주문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내가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말이다. 그것은 회의실에서 말을 꺼내기 전의 작은 다짐일 수도 있고, 퇴근 후 오늘 있었던 일을 몇 줄로 적어두는 습관일 수 도 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동료에게 안부를 묻는 메시지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다는 말 대신 다른 단어를 찾아보는 노력일 수도 있다. 일하는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나 더 완벽한 전략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조금 덜 닳고, 내일의 나와 연결될 수 있는 언어.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그리고 아직 나는 나아가고 있다는 작은 확신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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