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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
이아코포 멜리오 지음, 최보민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날은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눌려 있는데, 그게 슬픔인지 외로움인지, 아니면 피로인지조차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분명히 느껴지는데 말이 되지 않는다. 혀끝까지 왔다가 사라지는 그 감각.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어디로 가는 걸까. 아마도 몸 어딘가에 쌓이거나, 소화되지 못한 채 안쪽에서 조용히 곪아가지 않을까. 의학 용어로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라는 말이 있다. 감정표현불능증.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말로 꺼내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이상 하게도 안도감이 밀려왔다. 내가 말을 못하는 게 아니었다. 내 감정에 맞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안도감이 바로 이 책,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을 읽게 된 이유가 되었다. 이아코포 멜리오는 책에서 200개의 감정 단어를 전 세계 언어로부터 길어 올린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처럼 익숙한 언어는 물론, 웨일스어, 미크맥어, 킬리빌라어처럼 쉽게 마주 치지 못할 언어들로부터도. 그 단어들은 각자의 언어 안에서 오랜 시간 숨 쉬어온, 어떤 민족의 경험과 정서가 응축된 결 정체들이다. 번역하면 흐릿해지고, 옮기면 질감을 잃는 그런 단어들. 그러나 뜻을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감정 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름을 몰랐을 뿐이라고.노르웨이어에는 '포렐스케트(Forelsket)라는 단어가 있다. 사랑에 막 빠졌을 때 느끼는 어쩔 줄 모르는 설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몽롱함, 온몸을 감싸는 두근거림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어의 'falling in love'나 한국어의 '사랑에 빠지다'로 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그 감정의 질감 자체를 꼭 쥐고 있는 단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그 상태에, 이름이 있었다. 사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말문이 막히는 순간을 스코트어로는 '타르틀(Tartle)'이라 부른다. 아, 분명히 아는 사람인 데. 분명히 여러 번 만났는데.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그 당혹스럽고 민망한 찰나를 딱 한 단어로 표현해버리다니. 단어를 알고 나면 그 상황이 조금은 덜 창피해진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 모두가 공 유한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언어는 현실을 기술만하는 도구가 아니다. 언어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감정에 이름이 붙는 순간, 그 감정은 실체를 갖게 된다. 막연하게 떠돌던 것이 하나의 형태로 굳어지고, 비로소 내가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름이 없었을 때 우리는 그 감정 안에 갇혀 있었다. 이름을 얻고 나서야 우리는 그것을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 다. 책의 가장 조용하고도 강렬한 선물이다.하와이어 '아키히(Akihi)는 길 안내를 받고 나서 곧바로 잊어버리는 그 어이없는 상황을 가리킨다. 감사 인사까지 넉넉하게 건넨 뒤 출발했는데, 다섯 걸음도 채 안 가서 오른쪽인지 왼쪽인지가 사라진다. 분명히 들었는데, 분명히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 당혹스러운 경험에 하와이어 사용자들이 이미 이름을 붙여두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된다. 나 혼자만 이러 는 게 아니구나. 인류가 공유하는 실수가 있구나. 반투어의 '우분투(Ubuntu)'는 '타인을 향한 인간성에 의해 스스로 정의 된다는 믿음'이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나이기도 하다는 철학.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공동체 정신을 담은 이 단어는, 개인의 성취와 효율을 지상과제로 삼는 시대에 놀랍도록 낯선 울림을 준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그리움을 불 러일으킨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혹은 아직 다 잃지는 않은 무언가에 대해, 벨라루스어 '탈라카(Talaka)'는 아무런 대가 없이 공동체를 위해 함께 일하는 문화를 뜻한다. 보상은 딱 하나, 일을 마치고 나누는 따뜻한 식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 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고, 계약서 없이도 성립되는 이 연대의 언어가 낯설면서도 아프도록 아름답다.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 이런 단어를 일상 속에서 쓰는 사람들이 있다.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이 책을 읽으며 그 문장이 새삼 몸으로 느 껴졌다.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들은 그 동안 내 세계 바깥에 있었던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거나, 이름 없이 떠돌았을 뿐. 감정에 이름이 생기면 달라진다. 설명하지 못해 혼자 삭혔던 것들을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게 된다. '나 지금 타르틀 상태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상대는 웃으며 그 민망함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요즘 좀 이루수가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설명 없이도 나의 상태가 전달된다. 언어는 그렇게 관계의 다리가 된다. 우리가 가진 언어의 경계를 넓히는 일은, 곧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넓히는 일이다. 책은 그 확장의 여정으로 독자를 조용히 초대한다. 억지로 끌어당기 지 않는다. 그저 단어 하나를 건네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찾아내도록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