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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지 않는 뇌 -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이들을 위한 뇌과학자의 처방전
스가와라 미치히토 지음, 김동희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도 나는 미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고, 딱 10분만 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 10분은 40 분이 되었고, 어느새 오전이 증발해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지만 손가락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은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몸은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왜 이럴까. 자책이 시작되는 건 언제나 그 순간이다. 의지가 약한 것인지, 게으른 것인지, 아니면 그냥 태생적으로 이런 사람인 것인지. 스스로를 탓하는 목소리 가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쯤, 나는 우연히 하나의 문장을 마주쳤다. "뇌는 원래 게으름뱅이다." 뇌신경외과 전문의 스가와 라미치히토의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수십 년 동안 붙여온 낙인을 조용히 떼어냈다.사실 우리는 오랫동안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살아왔다. '미루는 것'은 나쁜 습관이고, 그 습관의 원인은 나약한 의지에 있다고. 그래서 더 독하게 마음을 먹어야 하고, 더 강하게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 그런데 뇌과학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인간의 뇌는 체중의 고작 2%에 불과하면서도, 전체 에너지의 20%를 소비한다. 에너지 효율의 관점에서 보면, 뇌는 몸에서 가장 '비싼' 기관인 셈이다. 그러니 뇌가 에너지를 아끼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생존 전략이다. 뇌는 새로운 자극 을 경계하고, 변화를 회피하며, 되도록 지금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뇌에게는 일종의 기본 설정 (default)인 것이다.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게을렀던 게 아니었다. 내 뇌가 생존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이 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쩔 수 없으니까 미뤄도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출발점이 달라진다. 자책에 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에서 시작하게 된다. 나를 탓하기를 멈추는 순간, 비로소 나를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게으름을 선택하는 뇌를, 어떻게 행동하게 만들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의욕이 생기면 행동할 수 있다고. 그래서 오늘도 '기분이 날 때', '준비가 되면, 딱 맞는 타이밍이 오면' 시작하겠다며 기다린다. 하지만 그 타이밍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파민은 행동하기 전에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시작한 이후에 분비되기 때문이다.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작업 흥분(Zeigarnik Effect 의 응용 개념)'이라고 부른다. 일단 무언가를 시작하면 뇌의 측좌핵 (nucleus accumbens)이 자극을 받아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 도파민이 다시 행동을 추진하는 연료가 된다. 즉 의욕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처음 접했을 때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억지로 책상 앞에 앉아 딱 한 줄만 써보겠다고 시작했다가, 어느새 두 시간을 훌쩍 넘겨 있던 날들. 운동하기 싫어서 신발 끈만 묶어보자며 나갔 다가, 결국 30분을 뛰고 들어온 날들. 그 모든 경험들이 사실 뇌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되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느끼고 나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움직이면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미루지 않는 뇌로 가는 첫 번째 문이다. 문제는, 알면서도 시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계획이 완벽하게 세워져야, 환경이 딱 갖춰져야, 실력이 충분히 쌓여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의 이면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실패라는 결과를 원천 차단하려 했던 것이 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흘러가고 기회는 사라지며 자신감은 오히려 더 낮아진다. 스가와라는 말한다. 50점짜리로 일단 시작하라." 베타 버전을 세상에 먼저 내놓고, 반응을 보면서 수정해 나가는 것이다.처음부터 완성된 것을 만들려고 하면 영원히 시작할 수 없지만, 불완전한 것을 내놓으면 적어도 전진은 할 수 있다. 뇌의 작동 방식에 근거한 전략이다. 뇌는 완성되지 않은 과제를 더 오래 기억하고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일단 시작하면 뇌 스 스로가 그 과제를 완성하려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시작 자체가 완성을 향한 뇌의 스위치를 켜는 행위인 것이다. 미루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작한 것을 계속하는 일이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자극에 빠르게 흥 분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익숙해진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순화(habituation) 즉 반복되는 자극에 무뎌지는 현상이다. 처음에는 설레고 재밌던 일이 어느 순간 당연해지고, 지루해지고, 결국 손을 놓게 된다. 삼일 천하, 작심삼일. 우리가 그토록 자주 경험하는 그 패턴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그렇다면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까? 비결은 작은 성공 체험의 축적이다. 도파민은 거창한 목표를 달성했을 때만 분비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미션을 완수했을 때,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는 것을 느꼈을 때도 분비된다. 그리고 그 작은 도파민들이 쌓여, 다음 행동을 위한 연료가 된다. 그리고 또 하나. 보여주는 것의 힘이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행동의 일관성을 만들어낸다. 마라톤 대회에 등록해두면 포기하기 어렵고, 독서 모임에 나가기로 약속하면 책을 덮지 못한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나는 여전히 가끔 미룬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제 는 그것이 내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뇌의 생존 본능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본능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 더 강한 의지가 아니라, 더 작은 시작이라는 것도 안다. 5분. 한 줄. 신발 한 짝. 그것으로 충분하다. 도파민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지 않는다. 움직이는 자에게 온다. 완벽한 준비가 끝난 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어설프게라도 첫 발을 내디딘 순간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