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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쇼크 - 금리가 재편하는 새로운 부의 질서
제이미 러시 외 엮음, 임경은 옮김, 박정호 감수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6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가격은 무엇일까? 원유 가격, 반도체 가격, 혹은 빅맥 가격을 떠올릴 수 있지만, 저자들은 단연 돈의 가격, 즉 금리가 가장 중요한 가격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30년 넘게 하락해온 이 가격이 이제 상승 전환점에 서 있음을 경고한다. 책의 핵심 개념은 자연이자율(Natural Rate of Interest, r*)이다. 자연이자율이란 경제를 과열시키지도, 냉각시키지도 않으면서 저축과 투자를 균형 있게 유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이론적 균형 금리다. 19세기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Knut Wicksell)이 처음 제시한 이 개념은 벤 버냉키(Ben Bernanke)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글로벌 저축 과잉(global saving glut) 논리로 재조명하면서 현대 통화정책의 핵심 나침반으로 자리 잡았다. 만약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자연이자율보다 지속적으로 낮게 유지한다면 경기는 과열되고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며, 반대로 너무 높게 유지한다면 저축이 과잉 공급되고 투자가 위축되어 실업률이 상승한다. 저자들은 12개 선진국 데이터를 토대로 독자적인 모형을 구축하여, 자연이자율이 왜 하락했는지(why)를 설명하고 어디로 향할지(where)를 전망한다. 이 에세이는 책의 주요 논지를 따라 자연이자율 하락의 역사적 원인, 현재의 구조적 전환, 그리고 미래 시나리오를 살펴보고,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를 고찰한다.
미국의 실질 장기 자연이자율은 1970년대 약 5%에서 2012년 2% 이하로 떨어졌다. 명목 기준으로는 1980년 약 12%이던 10년 만기 국채 자연이자율이 2015년에는 4%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이 하락을 이끈 핵심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잠재성장률의 둔화다. 1960~70년대 미국은 GDP 성장률이 연평균 4%에 달했다. 왕성한 생산성 향상과 인구 증가가 투자 수요를 끌어올렸고, 이는 자연히 금리를 높게 유지시켰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성장률은 2% 수준으로 주저앉았고, 2007~08년 글로벌 금융위기(GFC)가 이 추세를 고착화했다. 성장이 둔화되면 미래 수익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기업의 투자 유인이 감소하여 자금 수요가 줄어든다. 둘째, 인구 구조의 변화다. 1980년대부터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대비해 저축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금융시장에 유동성이 넘쳐흘렀다. 저축 공급의 증가는 금리를 구조적으로 끌어내리는 힘으로 작용했다. 셋째, 글로벌 저축 과잉과 불평등의 심화다.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그 자금을 미국 국채에 재투자했다. 또한 미국 내 소득불평등 심화로 고소득층의 저축률이 높아졌고, 이 역시 저축 공급을 늘렸다. 투자 측면에서는 컴퓨터와 기술 장비 가격의 급락으로 기업들이 기술 업그레이드에 드는 비용이 줄어, 실물 투자 수요가 감소했다. 이러한 복합적 요인들의 결과, 30년에 걸친 저금리 팽창의 시대가 펼쳐졌다. 저렴한 자금 조달 비용은 가계의 주택 구매를 촉진했고, 연방 정부는 GDP 대비 채무가 30%에서 90% 이상으로 세 배나 늘었음에도 이자 비용 부담은 오히려 낮아지는 공짜 점심을 누렸다. S&P 500 지수의 장기 상승세와 글로벌 자산 가격의 팽창도 이 저금리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저자들은 2010년대 중반을 저점으로 자연이자율이 이미 상승 전환했다고 진단한다. 2022년 기준 실질 자연이자율은 약 2.3%로 회복됐으며, 2030년대에는 2.8%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명목 기준으로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4.5~5% 사이에 안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전환을 이끄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정부 부채의 급증이다. GFC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선진국 정부들은 막대한 재정을 풀었고, 미국의 경우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재정 지출 기조를 이어갔다. 안전 자산 공급이 늘어나면 채권 가격이 하락하고 금리는 상승한다.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닌 구조적 변화다. 인구 구조적 반전도 핵심적이다. 저축을 늘리던 베이비붐 세대가 이제 은퇴 후 저축을 소비하는 단계로 진입하면서 저축 공급이 줄어들고 있다. 동시에 미중 관계 악화와 중국의 환율 정책 변화로 인해 중국 자금이 미국 국채로 유입되는 흐름도 약해졌다. 기후 변화 대응도 중요한 상승 압력이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에는 세계 GDP의 약 30%에 달하는 30조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 이 막대한 투자 수요는 자본 시장에서 자금 조달 경쟁을 심화시키고 금리를 밀어 올린다. 지정학적 긴장 고조도 변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서방 국가들의 방위비 지출 확대를 촉발했고, 러시아 외환보유고 동결은 달러 자산에 대한 글로벌 수요를 약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책은 경제 전망서가 아니다. 저자들은 자연이자율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통해, 수십 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저금리라는 구조적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금리 상승의 파급 효과는 광범위하다. 먼저 가계 차원에서 주택담보대출 이자 부담이 늘고, 1980년대 이후 저금리에 힘입어 상승해온 주택 가격과 주식 가격의 상승 모멘텀이 약화될 수 있다. 기업 차원에서는 자본 조달 비용이 높아지면서 투자 결정이 더욱 신중해질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이미 막대한 규모로 쌓인 공공 부채의 이자 부담이 급증한다. 저자들은 자연이자율이 기본 시나리오대로만 오른다 해도 2030년까지 미국의 GDP 대비 이자 지급 비용이 2%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며, 이는 2022년 기준 약 5,500억 달러에 해당한다. 물론 금리 상승에 수혜를 입는 측도 있다. 저축 보유자와 채권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중앙은행은 경기 침체 시 금리를 내릴 여유 공간을 되찾아 통화정책의 효력을 회복할 수 있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공짜 돈의 시대는 끝났다. 성장, 인구, 부채, 기후, 지정학이라는 다섯 개의 거대한 힘이 동시에 금리를 밀어 올리는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