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철학의 출발점은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선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무대가 아니라, 각자의 주관이 인식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성립하는 장면이다. 다시 말해,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회의를 하더라도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의 수만큼 서로 다른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협력의 자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경쟁의 장이, 또 다른 이에게는 그저 견뎌야 할 시간일 수 있다. 이 통찰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이 '틀렸다'거나 '나쁘다'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표상으로서의 세계 개념에서 보면, 그 사람은 자신이 인식하는 세계 안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충돌은 악의보다 인식의 차이에서 더 자주 태어난다. 관계의 상처가 반드시 누군가의 잘못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마주친 결과일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이기심을 도덕적 결함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교정해야 할 병이 아니라 삶에의 의지가 개체로 발현된 자연스러운 형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존속을 원하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 한다. 직장이라는 공간은 이 욕망들이 좁은 장 안에서 동시에 충돌하는 곳이다. 역할이 주어지고, 평가가 이루어지며,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이 구조 안에서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특히 뛰어난 누군가가 등장할 때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생각해 보라. 탁월함은 환영받기보다 억제되는 경우가 많다. 성과를 축소하거나, 평가를 흐리거나,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행동들은 단순한 시기심이 아니다. 쇼펜하우어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자신의 평균적 위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낀 존재가 그 기준 자체를 무효화하려는 시도다.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그 반응들이 덜 개인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나를 향한 공격이라기보다 구조가 만들어 낸 반응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