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어둠의 천문학
은하른(신박천문연구소) 지음 / 든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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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적, 나는 자주 옥상에 올라갔다. 딱히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좁은 방 안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마음속에 차오를 때, 어느새 계단을 올라 옥상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별자리의 이름도 몰랐고, 저 빛이 몇 광년 떨어진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냥 오래, 가만히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무언가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우주를 '위로의 공간'으로 느꼈다. 별빛은 아름다웠고, 하늘은 넓 었고, 그 광활함 앞에서 나의 고민은 잠깐이나마 가벼워졌다. 나는 우주를 몰라도 우주 앞에 설 수 있다고 막연히 믿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어둠의 천문학을 읽고 난 뒤, 나는 그 믿음이 얼마나 작은 세계 안에서의 믿음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우리는 왜 밤하늘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 반짝이기 때문에? 멀기 때문에? 아니면 닿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별빛을 '지금 이 순간'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을 바라보면 그 빛이 바로 지금 저 별에서 출발해 내 눈에 닿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현재라고 믿었다. 그 빛이 수백만 년, 혹은 수십억 년 전에 출발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감각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사실을 다시, 훨씬 더 선명하게 일깨워 주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별빛 은 그 별이 과거에 살아있었다는 증거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 수도 있다. 우리는 현재를 보고 있다 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주의 과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밤하늘은 살아있는 지금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의 기억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우주가 아름답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들의 잔상'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아름답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들 중에는, 이미 끝난 것들이 적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나간 계절, 돌아오지 않는 사람, 다시 꾸지 못하는 꿈. 우리는 그것들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여전히 그 빛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래도록 '보이는 것'만이 진짜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성과로 증명되는 것,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 숫자와 결과 로 남는 것. 그것들이 나를 이루는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말로 꺼내기 어려운 감정들, 아무도 모르는 슬픔, 혼자서 삼킨 외로움은 그냥 잉여 감정, 처리해야 할 노이즈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은 우주조차도 보이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대부분은 눈으로 볼 수 없다. 빛을 내지 않아 관측조차 되지 않는 암흑 물질 과 암흑 에너지가 우주 전체의 9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우주'라고 알고 있는 것, 즉 반짝이는 별과 화려한 은하와 빛나는 성운은 사실 전체의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어둠이 없다면, 우주는 형태 자체를 유 지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 지탱한다. 드러나지 않는 것이 버티게 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잉여라고 여겼던 것들,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한 감정들, 조용히 혼자 삼킨 밤들이 사실은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들고 있던 힘이었던 것은 아닐까.


화려하게 빛나는 5퍼센트만이 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95퍼센트까지가 온전한 나일 수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이 어딘가 나를 놓아주는 것 같았다. 슬픔을 없애야만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둠이 있어야 우주가 유지되듯, 보이지 않는 나의 무게들이 있어야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지우려 할 것이 아니라, 그 어둠과 함께 살 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주 어딘가에는 우리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다. 이 광대한 우주에 오직 지구만 이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으니까. 언젠가는 신호가 닿을 것이고, 언젠가는 응답이 올 것이라 고 막연히 기대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기대에 정면으로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호를 보냈다. 탐사선을 날 렸고, 전파를 쏘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우주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아직 닿지 않음'이 아니라, 어쩌면 그 자체로 하나의 대답일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나를 섬뜩하게 했다. 응답 없는 침묵이 가장 무서운 것은 우주에서만이 아니다. 우주의 침묵 앞에서, 나는 그 모든 기다림의 무게를 다시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응답이 없어도, 신호를 보낸 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우주를 향해 탐사선을 날리고, 전파를 쏘고,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행위는 응답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것 자체가 살아있음의 증거이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니까. 응답이 없는 침묵 앞에서도 계속 말을 건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인간이 우주를 닮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책을 덮은 뒤, 나는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별은 여전히 반짝였고,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 만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빛 하나하나가 이미 사라진 존재일 수 있다는 것, 내 눈에 닿는 이 순간이 사실은 과거라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둠이 저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름다움이 조금 더 진지하게 느껴졌다. 가볍지 않았다.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겁고 서늘 하고 거대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작았다. 몹시 작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작음이 더 이상 허무하지 않았다. 138억 년의 시간이 흘러 만들어진 이 우주 속에서,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내가 그 어둠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이겠는가. 나는 여전히 별자리의 이름을 잘 모른다. 광년이 얼마나 먼 거리인지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어도 우주 앞에 서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다. 어둠 속에서 별을 배우는 일은, 어쩌면 어둠 속에서 나를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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