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식물 도감 - 전 세계 760여 종 식용 식물 총망라!
윤주복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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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마다 밥을 짓는다.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멍하니 서 있다 보면,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 작고 흰 낱알 하나가 어디서 왔을까. 그것이 한때 초록빛 논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뼈였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살아가는 걸까. 찬장을 열면 양파가 있고, 냉장고에는 시금치 한 봉지가 구겨져 있다. 된장찌개를 끓이려 애호박을 썰고, 참기름을 두른 팬에 시금치를 볶는다. 우리가 매일 치르는 이 평범한 식사의 의식 속에는, 사실 수천 년에 걸쳐 인간과 식물이 함께 쌓아 온 오랜 대화가 담겨 있다. 인간이 식물을 선택한 게 아니라, 식물이 인간을 살아남게 해 주 었다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고마움을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잊는다. 마트의 진열대는 언제나 깔 끔하고 풍요롭고, 계절과 무관하게 딸기와 수박이 나란히 놓여 있는 세상에서, 식물의 본래 얼굴을 기억하기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 가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은 <먹는 식물 도감>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들길을 걷다 노란 꽃이 핀 풀 앞에서 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무슨 꽃인지는 몰랐다. 그냥 예쁜 노란 꽃,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름을 모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존재와 완전한 관계를 맺지 못한 상태와 같다. 우리는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라보게 되니까. 어린 시절, 할머니는 뒷마당에 있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이름 으로 불렀다. "이건 쑥이야. 봄에 뜯어다 떡 해 먹으면 향이 기막히지.""저건 질경이, 발에 밟혀도 꿋꿋하게 산다." 할머니 의 손은 언제나 흙 냄새가 났고, 눈은 풀잎 하나에도 오래 머물렀다. 그때는 몰랐다. 할머니가 내게 식물의 이름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세상을 천천히, 깊이 들여다보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름을 안다는 건 암기가 아니다. 하나의 존재를 내 삶의 지도 속에 새기는 일이다. 쑥이라는 이름을 알고 나면, 봄철 들판에서 쑥이 보이기 시작한다. 쑥 을 보면 할머니의 손이 떠오르고, 된장국 냄새가 스친다. 이름 하나가 기억을 만들고, 기억이 쌓여 삶이 된다.

학교 운동장 한켠에 심어진 나무 밑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봄이면 그 나무에 꽃이 피고, 여름이면 그늘을 내어 주고, 가을이면 낙엽이 지며 아이들의 발밑을 바스락거리게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나무는 조용히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아이들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아도, 사실 몸으로 먼저 기억한다. 처음 손으로 잡아 본 나뭇잎의 감촉, 이마에 내려 앉은 꽃잎, 아스팔트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풀 한 포기를 발견했을 때의 그 묘한 흥분이다. 식물은 교실 밖의 교과서다. 아 이가 민들레 홀씨를 후 불어 날리며 씨앗이 바람을 타고 퍼지는 원리를 몸으로 이해하는 순간, 어떤 강의보다 더 깊은 배움이 일어난다. 손에 흙을 묻혀 씨앗을 심고, 매일 물을 주며 새싹이 올라오는 걸 확인하는 아이의 눈빛에는, 숫자와 문자로는 전달할 수 없는 어떤 진지함이 깃들어 있다. 그 진지함은 교실에서 배우는 집중력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다. 살아 있는 것과 마주하는 경이로움에서 비롯된 집중, 즉 삶에서 우러나오는 배움의 자세다. 어른들은 종종 공부를 따로 떼어 생각한다. 국어, 수학, 과학이 각각 다른 서랍 속에 담겨 있는 것처럼, 하지만 식물 하나를 제대로 알아 가는 과정에는 그 모든 것이 녹아 있다. 이름의 유래를 찾으면 언어와 역사가 나오고, 꽃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생물학이 펼쳐지고, 수분과 광합성을 이해하다 보면 화학과 물리가 따라온다. 식물은 분리된 지식이 아니라, 통합된 삶의 언어다.

봄날 아침, 면 소재 셔츠를 입으며 생각한다. 이 부드러운 흰 천이 한때 목화 꽃이었다는 것을, 목화는 여름내 흰 꽃을 피우고, 가을이 되면 솜 같은 열매를 내어 준다. 그 솜을 따서 실을 뽑고, 실을 엮어 천을 만들고, 그 천이 내 몸을 감싸는 옷이 된다. 이 기나긴 여정을 생각하면, 옷 한 벌이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앉아 있는 나무 의자, 잠드는 침대 프레임,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 심지어 연필 한 자루까지.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의 물질적 기반 상당 부분이 식물에서 비롯되었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식물과 함께 먹고, 입고, 자고, 짓고, 병을 고쳐 왔다. 그 역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놀랍고 또 경이롭다. 약용식물의 세계도 흥미롭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생강차, 쑥차, 결명자차 한 잔에는 수백 년에 걸쳐 사람들이 경험으로 축적해 온 지혜가 담겨 있다. 어떤 풀이 열을 내리고, 어떤 잎이 소화를 돕는지를 인류는 책이 아 니라 몸으로, 세대를 이어 기억해 왔다. 이제 그 기억이 점점 옅어지고 있지만, 식물을 알아 가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그 오래된 지혜의 실마리를 다시 잡아당길 수 있다.

오늘 퇴근길, 가로수 아래를 걷다가 문득 발을 멈춰 보고 싶다. 그 나무의 이름이 무엇인지, 언제 꽃을 피우는지, 어디서 왔는지 한 번쯤 궁금해 보고 싶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식탁 위에 놓인 오늘의 재료들을 잠시 들여다보고 싶다. 그것들이 햇빛을 받고, 비를 맞고, 바람에 흔들리며 자라났을 어딘가의 들판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책은 나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식물은 조용하다.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 바라볼 때, 식물은 분명 무언가를 전한다. 삶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계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 지구 위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한다. 초록의 언어로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어쩌면 모든 배움의 시작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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