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저항'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거칠고, 시끄럽고, 공격적인 무언가다. 주먹을 쥐고 고함치는 모습, 혹은 권위에 맞서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 그러나 이것은 저항의 본질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진정한 저항이란 외부의 압력이 존재할 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큰 소리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저항은 조용하고 단단하다. 외과 의사가 동료의 실수를 목격했을 때 "잠깐만요, 다시 확인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것, 회의실에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라고 손을 드는 것, 혹은 불합리한 지시 앞에서 "이건 제 양심에 반합니다"라고 부드럽지만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모든 것이 저항이다. 중요한 것은 저항이 타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정직함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가치관을 억누르고 순응할 때, 가장 먼저 배신당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저항은 그 배신을 거부하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저항은 폭력이 아니라 자기 보존에 가깝다.
순응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사회는 어느 정도의 순응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신호등 앞에서 멈추고, 줄을 서고, 공공 규칙을 따르는 것은 문명의 기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순응에 너무 길들여진 나머지, 순응해서는 안될 순간에도 순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상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 의료 현장에서 동료가 실수를 저지를 때, 가족 안에서 불합리한 일이 반복될 때,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선택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상 관리'에 대한 불안이다. 내가 이의를 제기하면, 상대방은 내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을까? 관계가 어색해지지 않을까? 이 불안이 우리를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반복되는 침묵은 우리 내면에 조용히 쌓인다. 처음에는 작은 불편함이지만, 그것이 누적되면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발전한다. '나는 왜 그때 아무 말도 못 했을까'라는 자책이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가치관이 무엇인지조차 흐릿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순응의 비용은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치러지고 있으며, 그 정 구서는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날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