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미술관에 가면 작품 앞에 서서 뭔가를 느끼긴 하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언어화하기가 어렵다. 설명을 읽으면 고개는 끄덕이지만 내 것이 된 느낌은 아니다. 그러다가 어떤 그림 앞에서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오래 서 있게 되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아, 이게 미술이구나, 싶어진다. 책이 흥미로웠던 건 그 '이유도 모르게 오래 서 있게 만드는' 감각을 언어로 풀어주기 때문이었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의 수련 연작 앞에서 저자가 쓴 대목. 크고 굵은 붓질이 화면을 쓸고 지나간 듯 하다고, 전체가 붉은색으로 불길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이게 모네 그림이라고?' 놀라며 다시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나는 그 장면을 읽으며 그 전시실 안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네가, 사실은 훨 씬 더 격렬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폴 마르모탕이 인상주의를 가리켜 "이게 회화라고, 아니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고 했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한 시대의 혁신은 항상 누군가에게 모욕처럼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 모욕처럼 보였던 것이 결국 세기를 건너 남는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 발언을 남긴 마르모탕의 이름이 붙은 미술관에서, 지금 그토록 혹독하게 비난했던 인상주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역사의 어떤 유머처럼 느껴졌다. 로댕 미술관의 이야기는 또 달랐다. 손만 모아놓은 전시실이 있다는 것. 사람의 손이 그렇게 많은 표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외로움의 비탄, 고통의 절규, 창조주의 힘, 은밀한 비밀. 조각이라는 건 결국 형태로 감정을 번역하는 일인데, 로댕은 그걸 신체의 일부만으로도 해냈다는 것이다. 두 개의 오른손이 맞닿아 기도와 사 랑을 표현한 <대성당>. 나는 이 작품을 아직 실물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미 그 손이 어떤 감촉인지 알 것 같 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