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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기쁨 - 개정판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26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누군가는 위대한 삶을 증명하기 위해 거대한 무언가를 세운다. 기념비를 올리고, 이름을 새기고, 흔적을 각인하려 한다. 그러나 타샤 튜더는 달랐다. 그는 헛간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에 멈춰 섰고, 연못 위에 흔들리는 나무 실루엣 앞에서 붓을 들었다. 금방 곁을 스쳐 간 작은 새 한 마리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 찰나들이 쌓여 백여 권의 그림책이 되었다. 기쁨은 특별한 날에만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다. 타샤의 삶을 들여다보면, 기쁨이란 원래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거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너무 빠르게 걸어서, 너무 큰 소리로 말해서, 듣지 못했을 뿐이다. 타샤는 평생 그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연습했다. 그리고 그 귀 기울임의 결과를 그림으로 남겼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묘한 감각이 찾아온다. 배경은 여백으로 비워두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화면 위에 올려놓는 방식. 그것은 기법이기 이전에 철학이었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조용히 비워두는 태도. 화려함 대신 본질을 선택하는 용기. 타샤의 그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 안에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감각들이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아홉 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낯선 집에 맡겨진 아이, 열다섯에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살기 시작한 소녀, 이혼 후 네 아이를 홀로 키우며 붓을 놓지 않은 여자. 타샤튜더의 이력은 어찌 보면 결핍의 연대기처럼 읽힌다. 그러나 그는 그 결핍을 결핍으로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새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피워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자기다워지는 길을 아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타샤는 그 길을 누군가에게 묻지 않았다. 스스로 걸어가며 발견했다. 19세기 방식의 삶을 고집하고, 골동품 옷을 입고, 손수 정원을 일구고, 인형을 만들고, 코기와 앵무새를 곁에 두며 그는 누구의 기대에도 맞추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삶이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 되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 작은 것들을 좋아해도 되는 걸까, 타샤의 삶은 그 물음에 대한 가장 조용하고 단호한 대답이다.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가 만드는 어떤 것 안에도 없다. 결국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은 우리 자신에게서 온다. 타샤가 그린 따뜻한 풍경들은 타샤 자신이 따뜻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니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자기 안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먼저다. 56세에야 비로소 버몬트 산골에 자기 땅을 마련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꿈은 반드시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사람. 늦게 얻은 정원은 그래서 더 깊이 사랑받았고, 더 오래 가꾸어졌 으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 중 하나가 되었다.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누구에게나 다른 이에게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모습이 있다고, 마치 달처럼. 타샤 역시 그 어둠을 몰랐을리 없다. 이혼의 상처, 홀로 아이들을 키우던 지난한 세월, 낯선 집에 맡겨졌던 어린 시절의 고독. 그러나 타샤는 그 어두운 면을 지우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달이 뒷면을 감추고도 아름답게 빛나듯, 타샤는 자신의 그늘을 안고서도 기쁨을 그려냈다. 이것이 타샤의 그림이 위로가 되는 진짜 이유다. 그의 그림 속 풍경은 지나치게 완벽하지 않다. 아이들이 뛰노는 풀밭은 조금 어수선하고, 헛간은 낡았으며, 겨울 정원은 앙상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살아있는 것들의 따스함이 있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진짜인 것들. 타샤는 삶이 완벽해야 기쁨이 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쁨은 완벽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일상의 진정한 가치는 손에 잡히지도 않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말처럼, 타샤가 남긴 기쁨의 조각들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느껴지는 것이다. 비 온 뒤 뜬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처럼, 달빛이 호수에 내려앉는 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처럼. 그 말할 수 없는 순간들이 실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라는 것을 타샤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평생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92세의 여름, 타샤는 평생을 사랑한 정원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백여 권의 그림책과,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와, 세계 최고의 1830년대 의상 컬렉션이 남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있다. 기쁨이 무엇인지 묻는 태도. 작은 것들 앞에서 멈추는 용기.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다. 꿈은 우리 자신을 나타내는 기준이라는 말처럼, 타샤가 꾼 꿈은 거창하지 않았다. 자기 손으로 가꾼 정원, 따뜻한 난로 앞의 동물들, 손주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담아낸 그림 한 정. 그것이 타샤의 꿈이었고, 타샤의 삶이었다. 좋은 것을 더 좋게, 더 좋은 것을 최고로 좋게 만들 때까지 쉬지 않는다는 정신이 그의 삶 전체에 흘렀다. 그러나 그것은 경쟁이나 성취의 언어가 아니었다. 오늘보다 조금 더 아름다운 하루를 만들겠다는, 소박하고도 단단한 다짐이었다.타샤 튜더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는 우리와 함께 살아있다. 그의 그림 속 햇살은 아직도 헛간 틈새를 비추고 있고, 그의 정원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계절을 바꾸며 피어나고 있다. 우리가 일상의 작은 기쁨 앞에서 잠깐 멈출 때마다, 타샤는 조용히 우리 곁에 앉아 함께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그것이 바로 삶이라고, 말없이 이야기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