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한 인생 사전 - 두 언어를 오가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
박솔미 지음 / 북스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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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영문학 개론 수업 교수님이 칠판에 한 문장을 썼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소크라테스의 말이었다. 교수님은 분필을 내려놓으며 잠시 침묵했고, 강의실 안에는 뭔가 의미심장한 공기가 흘렀다. 나는 노트에 그 문장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 옆에 조심스럽게 번역을 달았다. '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다 쓰고 나서 밑줄을 그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손에 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밑줄 하나 긋고, 노트를 덮었다. 시험에 나올 것 같은 문장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문장이 내 삶과 무슨 상관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토익 점수를 올려야 했고, 자기소개서를 다듬어야 했으며, 졸업 후의 진로를 걱정하느라 바빴다. 영어는 그렇게 점점 성찰의 언어가 아니라 스펙의 언어로 자리를 옮겼고, 나는 그 이동을 눈치채지 못한 채 졸업을 했다.

​그 뒤로 오랫동안, 나는 영어 문장을 읽어도 '읽지' 않았다. 이메일을 해독하고, 계약서를 번역하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다듬었다. 영어가 필요했고, 영어를 썼고, 영어로 일했다. 하지만 어느 문장 앞에서 멈춰 선 적이 없었다. 단어 하나를 두고 '이게 왜 이 단어여야 했을까' 하고 오래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 영어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그 자체로 사유의 공간이 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책을 읽으며, 한 문장을 만났다.

"True integrity comes when we stop seeking approval."

출처도 불분명했고, 누가 보내준 것도 아니었다. SNS 피드를 스크롤하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가락이 멈췄다. 'integrity'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우리말로 뭐라고 옮겨야 하는지, 사전적 정의는 알지만 이 문장 안에서 정확히 무슨 무게를 지고 있는지,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문장 앞에서 멈췄다.

'integrity'를 번역하려고 한참을 씨름했다. '정직함'이라 하기엔 도덕적 울림이 너무 표면적이고, '성실함'이라 하기엔 무언가 핵심을 비껴가는 느낌이었다. '온전함'은 근접했지만 조금 아쉬웠고, '완전함'은 결과의 뉘앙스가 너무 강했다. 무엇보다 이 단어에는 외부의 시선과 무관하게, 자기 스스로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서만 풍기는 어떤 고요하고 단단한 인상이 담겨 있었다. 그게 한 단어로 딱 떨어지지 않았다. 대학 시절의 나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어림잡아 '성실함' 정도로 처리하고 다음 줄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애매함이 좋았다. 한 단어가 담고 있는 무게가 어느 언어의 그릇에도 완전히 옮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프기보다는 경이로웠다. 그건 어쩌면, 내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감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것들이 빠르게 처리된다. 감정도, 관계도, 생각도. 느리게 앉아서 한 문장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는 일을 언제부턴가 사치처럼 여기게 되었다. 빠른 결론이 능력처럼 느껴지고, 긴 침묵은 비효율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나도 모르게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문장은 달랐다. 문장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틀린 번역이 있고 나쁜 번역이 있을 수는 있어도, 느린 번역이 나쁜 번역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들여다볼수록 문장은 다른 층위를 드러냈다. 'integrity'가 단순히 '정직한 사람'을 묘사하는 형용사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 자기 내면의 나침반을 흔들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나는 그 문장이 나에게 하는 말을 비로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지금, 나의 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영어 문장이 던진 질문이 이렇게 깊이 들어온 건 오랜만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아주 거창하게 달라진 건 아니다. 다만 예전엔 스크롤을 멈추지 않았을 문장에서 손가락이 멈추는 횟수가 늘었다. "Stay grounded." 요가 선생님이 즐겨 쓰던 표현인데, 어느 날 다시 읽었더니 삶 전체에 대한 조언처럼 들렸다. 흔들리는 건 두렵지 않다. 다만 중심축이 어디인지 모를 때가 두렵다. 그 말이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The way we talk to our children becomes their inner voice." 이 문장은 더 오래 앉아 있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 결국 그 아이의 내면을 짓는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들도, 나의 내면을 계속 짓고 있다는 것.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를 향해 내뱉는 말들을 돌아보게 됐다. 그 말들이 나를 자라게 하는지, 아니면 조용히 쪼그라들게 하는지. 번역을 하려다가 나 자신을 읽게 됐다.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셰익스피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 말. 나의 언어로 너를 붙들어두겠다는 다짐. 그 오래된 문장을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떤 문장을 붙들고 살아가고 싶은가. 어떤 말을 내 내면의 목소리로 삼고 싶은가. 대학 시절, 밑줄 하나 긋고 덮었던 노트를 이제야 다시 펼치는 기분이다. 늦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문장은 기다려준다. 언제 돌아와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다시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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