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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 딥 - 가짜 생각에서 벗어나 진짜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
유디트 베르너 지음, 배명자 옮김 / 페이지2(page2) / 2026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밤 열한 시, 나는 또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 낮에 내가 한 말이 틀리지는 않았을까. 그 사람이 내 문자를 읽고도 답하지 않은 건 무 슨 의미일까. 내일 회의에서 상사가 내 보고서를 어떻게 볼지. 5년 후 나는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까, 아니면 그때도 이렇게 같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는다. 숫자를 세어 보고, 음악을 틀어 보고,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반복해 보지만 머릿속의 소용돌이는 잠잠해질 기미가 없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생각이 많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생각이 많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제자리를 맴도는 것이다. 더 정확한 단어가 있다. 오버싱킹(Overthinking). 생각 과잉이다. 생각 과잉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구조를 가진 사고의 패턴이다. 출발은 있으나 도착이 없고, 문제는 인식하나 해결에는 이르지 못하며, 에너지는 소진되지만 결과는 남지 않는 일종의 지적 공회전 상태. 엔진은 힘차게 돌아가는데 차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 보통 세상이 건네는 처방전은 대개 두 가지다. 그냥 하는 것. 생각을 멈추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그러나 이 두 가지 처방은 생각 과잉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조언들은 하 나같이 생각 자체를 문제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생각이 많은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생각의 방향이 문제인가?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실제로 필요한 것은 출구가 아니라 나침반이다. 오버싱킹과 딥싱킹(Deep Thinking)의 차이는 생각 의 양에 있지 않다. 방향과 구조에 있다. 오버싱킹이 같은 지점을 계속 맴도는 원운동이라면, 딥싱킹은 표면에서 시작해 점점 더 근본 적인 질문을 향해 내려가는 수직 운동이다. 오버싱킹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반복한다면, 딥싱킹은 왜 나는 이것을 두려워하는가", "이 두려움은 어디서 왔는가", "내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 전환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다. 몇 가지 실마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생각에 이름을 붙인다. 소용돌이치는 생각들을 그대로 두면 덩어리가 되어 압도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지금 나는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고 있다"처럼 이름을 붙이는 순간, 생각은 감정의 덩어리에서 분리되어 관찰 가능한 대상이 된다. 이것이 딥싱킹의 첫 걸음이다. 생각에 잡아먹히지 않고, 생각을 바라보는 것이다.'사실'과 '해석'을 분리해야 한다. 오버싱킹의 상당 부분은 사실이 아닌 해석에서 자란다. 상사가 오늘 내 인사를 짧게 받았다는 것은 사 실이다. 그러나 '나를 싫어한다, '해고될 것이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이다'는 모두 해석이다. 딥싱킹은 이 두 가지를 의식적으로 분리 하는 훈련이다. 사실의 층위에 머물 때, 우리의 생각은 훨씬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또한 혼자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의 생각은 혼자 완결되지 않는다.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각도를 발견하고, 내 생 각의 맹점을 인식하게 된다. 오버싱킹하는 사람들이 종종 타인과의 관계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관계 속에서 생각을 완성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에 '기한'을 두어야 한다. 이것은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각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이 문제는 오늘 저녁 한 시간 동안 충분히 생각하겠다. 그 이후에는 내일로 미루겠다." 이 렇게 의식적으로 생각의 시간과 공간을 설정하면, 생각은 삶 전체를 잠식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무한정 열려 있는 생각의 문을 일부러 닫는 것, 이것이 생각을 더 잘 하는 방법이다.왜 우리는 생각하는가? 생존을 위해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물론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다. 생각 없이 경험은 축적되지 않는다. 반성 없이 실수는 반복된다. 성찰 없이 우리는 타인의 언어와 논리 속에서 부유하게 된다. 오버싱킹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생각을 멈추라'고 말할 때, 그 말의 이면에는 사실 이런 메시지가 숨어 있다. 그냥 순응하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여라. 큰 그림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 니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바로 더 잘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가다듬는 것. 소음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소음 속에서 내 목소리를 찾는 것. 불안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의 정체를 직시하는 것이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만 그 의지가 제 방향을 찾지 못하고 내면에서 소진될 때, 우리는 지치고 무너진다. 오버싱킹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다만, 그 생각을 데리고 좀 더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이다. 천장을 바라보며 같은 걱정을 되풀이하는 대신, 그 걱정의 뿌리를 향해 한 걸음씩 내려가 보는 것이다. 아마도 그 끝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고요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