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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
나이토 이즈미 지음, 위지영 옮김 / 마음의숲 / 2026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죽음을 병원의 일로 여겨왔다. 하얀 커튼 너머, 모니터의 숫자들 사이에서,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임종. 그것이 현대인에게 주어진 죽음의 표준적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마지막인가. 나이토 이즈미의 기록을 따라 가다 보면, 그 질문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익숙한 냄새가 배어 있는 방, 오래 앉아 있던 창가의 의자,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 그 안에서 눈을 감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지를, 책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한국은 지금 인구 구조의 거대한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다. 2025년 현재,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 며 초고령사회에 공식적으로 진입했다. 통계청의 추산에 따르면, 2050년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4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노인이 많아진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불길하게 여기는 문화, 호스피스를 '포기'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그리고 재택 돌봄을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의 미비. 이 세 가지가 맞물려 있는 한, 우리는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감할 권리를 사실상 갖지 못한다. 그래서 나이토 이즈미의 이야기는 일본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거울이기도 하다.재택 호스피스는 병원 대신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제도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삶의 연장선 위에 놓겠다는 철학적 선언에 가깝다. 사람은 살아온 방식으로 떠난다는 명제는, 역으로 말하면 마지막 순간의 환경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완성하거나 훼손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병원은 치료를 위한 공간이다. 그 설계의 중심에는 생명 연장이라는 목표가 있으며, 죽음은 그 목표의 실패로 읽히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병원에서의 임종은 종종 관계보다 기계가, 온기보다 절차가 앞서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물론 의료진의 헌신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스템의 구조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 구조 안에서 환자는 주체가 되기 어렵고, 마지막 순간조차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갈 자유를 빼앗기는 경우가 생긴다. 반면 재택 호스피스는 환자를 삶의 공간으로 돌려보낸다. 거기서 그는 여전히 가족의 밥상을 차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장부의 계절을 눈에 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이토 이즈미의 기록 속 인물들 이 인상적인 이유는 그들이 죽음을 앞두고도 '지금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 문을 끝까지 열어두고, 봄날 딸기를 으깨어 우유를 만들고, 손자에게 삶의 졸업장 이야기를 전하던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삶의 마지막 챕터를 가장 자기답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이것이 재택 호스피스가 복지 제도를 넘어 하나의 가치 체계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다. 어디서 죽는가의 문제는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일본은 1990년대 이후 재택 의료 체계를 꾸준히 정비해왔다. 방문 진료와 방문 간호를 중심으로 한 재택 호스피스 모델은 지역사회 의료와 연계되어 있으며, 환자가 자택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닌 사회적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나이토 이즈미가 설립한 후지 내과병원의 사례는 그러한 흐름의 한 상징이기도 하다. 한국의 현실은 다소 다른 지점에 있다. 물론 완화의료 및 호스피스 제도는 법적으로 정비되어 있고,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의 제정 이후 제도적 틀은 어느 정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실제 현장의 층위에서는 여전히 많은 간극이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재택형 호스피스 서비스의 접근성이다. 전국적으로 재택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아직 충분하지 않으며, 지역 간 편차도 크다. 대도시와 농촌 지역 사이의 격차는 단순한 서비스 밀도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돌봄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가족, 특히 여성 가족 구성원에게 집중되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재택 돌봄이 확대되는 만큼, 그 부담을 누가 감당하는가에 대 한 사회적 논의와 지원이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제도는 되레 특정 계층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다. 인식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호스피스는 여전히 '치료를 포기하는 것, '마지막 선택지'라는 이미지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호스피스를 치료의 실패가 아닌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문화적 전환이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 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삶의 마무리를 사전에 설계하고 논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나이토 이즈미는 말한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건강할 때 휘파람을 불며 해야 한다. 역설이 아니다. 죽음을 일상의 언어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곧 삶을 더 진지하게 살아가는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재택 호스피스를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도적 확충만이 아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적 감수성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책은 초고령화 사회는 우리에게 제도적 과제를 던지는 동시에,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사회 전체 앞에 내려놓는다. 재택 호스피스는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실천적 응답이다. 하지만 그 응답이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먼저 그 질문을 두려움없이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