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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지키는 것이다 - 농부와 소설가가 심은 한 알의 진심
이동현.김탁환 지음 / 해냄 / 2026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늘 어딘가를 지나친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이름 모를 마을들, 고속도로 표지판에 잠깐 눈길을 주다 이내 잊어버리는 지명들. 곡성도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남원과 구례 사이, 어느 쪽으로도 확실하게 기울지 않는 그 어정쩡한 자리. 지도 위에서조차 존재감이 희미한 고장. 누군가 거기 뭐 있어요?"라고 물으면,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머뭇거려야 하는 이름.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지나쳐온 것은 곡성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나쳐온 것은, 느리게 살아가는 것들이었는지도. 우리가 지나쳐온 것은, 계절의 속도를 따라 숨 쉬는 삶이었는지도. 섬진강은 말없이 흐른다. 굽이굽이 돌아 구례로, 하동으로, 광양으로 내려가는 그 강물은 곡성을 가로지르면서도 요란하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냥 흐른다. 그냥 거기 있다. 어쩌면 그것이 곡성을 닮았다. 어쩌면 그것이 미실란을 닮았다.옛 초등학교 교정을 상상해본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운동장, 칠판 먼지가 내려앉던 교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리던 복도. 그 자리에 이제는 논이 생겼다. 교실 대신 발아현미 연구실이 들어섰고, 운동장이었을 자리엔 텃밭이 쌀 미 자 모양으로 일궈졌다. 아이들 대신 벼가 자라고, 수업 종소리 대신 개구리 울음소리가 절기를 알린다. 처음엔 낯설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던 박사가 흙냄새 나는 시골 마을에 뿌리를 내리는 일. 논문과 데이터로 가득한 세계를 뒤로하고, 손에 흙을 묻히는 농부의 삶을 선택하는 일. 사람들은 물었을 것이다. "박사 양반이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하지만 과학자가 된 농부는 알았을 것이다. 볍씨 한 알 안에 담긴 것이 어떤 논문보다 깊다는 사실을. 흙과 물과 햇볕이 빚어내는 화학반응은 실험실에서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씨앗이 땅 속에서 발아하는 순간, 그 생명의 떨림은 어떤 첨단 장비로도 완전히 측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630종의 벼를 한 논에 심는다는 것은 농사 실험만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선언 이다. 하나의 품종만을 대량으로 키워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대에, 다양성을 지키겠다는 완고하고 아름다운 고집. 소멸해 가는 품종들을 붙잡아두려는 조용한 저항. 씨앗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역사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려는 긴 호흡의 의지다.현대 도시의 삶은 항상 어딘가를 향해 달려간다. 빠르게, 더 빠르게. 효율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우리는 목적지만 바라보며 걷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사치로 여기며 산다. 걷다가 길 위에 눕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퐁퐁 다리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드러눕는 두 중년 남자의 이미지가 그토록 선명하게 마음에 남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등을 통해 올라오는 강물 소리. 온몸을 감싸는 물의 진동. 하늘과 땅 사이에 그냥 존재하는 것.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것이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는 비밀이다. 미실란의 시간은 절기를 따라 흐른다. 소한과 대한의 고요 속에서 한 해를 준비하고, 입춘과 우수의 기운을 따라 땅을 깨운다. 종의 분주함 속에서 씨앗을 심고, 백로의 이슬이 벼 이삭을 여물게 한다. 인간이 만든 시계가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리듬 위에 삶을 얹는 것이다. 그 삶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자동화된 농기계 대신 손으로 모내기를 하고, 제초제 대신 직접 김을 매고, 데이터 대신 하늘의 구름을 읽는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 비효율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계절을 잃어버리고, 흙을 잊어버리고, 밥 한 그릇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비효율인지도 모른다.우리 세대는 조급하다. 결과를 빨리 보고 싶고, 변화를 당장 확인하고 싶다. 심은 씨앗이 그날 안에 싹트기를 원하고, 뿌린 노력이 이번 달 안에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하지만 농사는 다르다. 농사는 계절을 앞서갈 수 없다. 절기를 건너뛸 수 없다. 봄에 심어 가을에 거두는 것이 자연의 이치고, 그 이치 앞에서 인간은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미실란이 2006년에 시 작해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그 자리를 지켜온 것은 그래서 의미 깊다. 유기농 쌀 시장이 외면받던 시절에도, 농촌이 소멸해간다는 뉴스가 쏟아지던 때에도, 미실란은 볍씨를 뿌렸다. 음악회를 열었다. 책방을 만들었다. 글쓰기를 가르쳤다. 아이들을 논에 데려와 흙을 만지게 했다. 천년 숲도 오늘 심은 묘목 한 그루에서 시작된다. 지금 당장 울창한 숲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묘목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당장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 자신이 심은 나무의 그늘 아래 자신이 쉬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미래를 향한 행동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 사실이 슬프지 않은 이유는, 흙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 살았다는 것을, 우리가 씨앗을 심었다는 것을, 우리가 이 땅을 사랑했다는 것을. 미실란은 그 기억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섬진강이 굽이쳐 흐르는 들녘에서, 계절의 리듬을 따라 숨쉬며, 흙과 씨앗과 사람을 잇는 공동체. 그곳에서 나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