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 숏폼, 데이팅 앱, 초가공식품은 나의 뇌를 어떻게 점령했는가
니클라스 브렌보르 지음, 김성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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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편안하게 앉아있지만, 어느 순간 손은 과자 봉지를 향해 뻗어 있다. 영화가 끝 날 때쯤 봉지는 비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이 행동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흔히 이 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냥 먹고 싶었던 거야. 내 선택이었어." 그러나 과연 그것이 진짜 우리의 선택이었을까? 덴마크의 생명공학 연구자 Nicklas Brendborg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충동들, 즉 배 가 고프지 않아도 손이 가는 과자, 특별한 이유 없이 습관적으로 집어 드는 스마트폰, 끝없이 이어지는 소셜 미디어 스크롤이 개인의 나약함이나 의지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이것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을 정밀하 게 조준한 산업의 설계물이며, 우리는 그 설계 안에서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의 기원은 인간이 아닌 새에게서 출발한다. 네덜란드의 과학자 Nikolaas Tinbergen은 조류 실험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새장 안에 자신의 알보다 훨씬 크고 선명한 색깔의 가짜 알을 넣어두었을 때, 새들은 예외 없이 가짜 알 위에 앉으려 했다. 이는 새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었다. 더 크고 선명한 알일수록 암컷의 건강 상태가 좋고 풍부한 먹이를 섭취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진화는 그 방향으로 본능을 설계해 두었던 것이다. 문제는 자연 속에는 새 자신의 몸집보다 큰 알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진화는 그 욕구에 어떠한 상한선도 설정해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은 바로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Brendborg가 초자극(superstimuli)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자극보다 더 크고, 더 강렬하고, 더 집중된 형태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자극들. 그것들은 우리의 본능이 원래 반응하도록 설계된 신호를 극단적으로 모방하여, 뇌가 저항하기 어려운 반응을 끌어낸다.

초자극은 식품 산업에서 그치지 않는다. Brendborg는 음식, 기술, 오락 산업이 모두 동일한 논리, 즉 인간 뇌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하여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구조 위에 설계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식품 회사들은 소비자를 뇌 스캐너에 넣고 어떤 맛의 조합이 보상 중추를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지 실험한다. 포화 상태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레시피를 조정하고, 짠맛과 단맛과 지방의 비율을 정교하게 계산한다. 제품은 우리가 충분히 먹었다고 느끼지 못하도록 설계된다. 이는 상술이 아니라 생물학적 본능을 겨냥한 정밀 공학이다. 영국 성인의 3분의 2가 과체중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은 이 설계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에 불과하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앱의 밝은 색상은 자연에서 잘 익은 열매를 가리키던 시각적 신호를 모방한 것이다. 알림음과 빨간 뱃지는 즉각적인 주의를 요구하는 사회적 신호로 기능하며, '좋아요'와 조회수는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증폭시킨다. 한두 명의 지인에게 칭찬받던 경험이 수백 명에게 동시에 인정받는 경험으로 확장되고, 뇌는 그 자극을 실제 사회적 유대와 구분하지 못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최적화된다는 점이다. 수십억 개의 사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거대 테크 기업들은 끊임없이 알고리즘을 수정하며 우리가 화면 앞에 더 오래 머물게 만든다. Brendborg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천억의 자본을 등에 업은 극도로 지능적인 사람들이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불공정한 싸움에서 개인의 의지력을 탓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전제이다.

Brendborg가 제시하는 또 다른 핵심 개념은 둔감화(desensitisation)다. 특정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우리의 감각은 점점 그 자극에 무뎌진다. 더 자극적인 맛을 원하게 되고, 더 강렬한 자극이 없으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에 산업은 더 강한 자극으로 응답하고, 인간은 또다시 둔감해진다. 이것이 바로 악순환의 구조이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 록 현실은 점점 평범하게 느껴진다. 자연의 맛은 심심해지고, 조용한 시간은 불안해지며, 직접 마주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덜 흥미롭게 보인다. 주의력, 휴식, 관계는 스크린과 경쟁해야 하고, 현실의 사회적 유대는 소셜 미디어의 즉각적인 반응 과 경쟁해야 한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장 매력적이고 성공적인 사람들을 보여주며, 우리는 무의식중에 자신 을 그들과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낀다. 이것이 통제라는 착각이다. 우리는 선택하고 있다고 믿지만, 비교의 기준 자체가 이 미 조작되어 있다. 우리가 욕망한다고 느끼는 것들은 사실 우리가 원하도록 설계된 것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Brendborg는 금욕이나 강박적인 절제를 해결책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특정 음식을 금지하거나 스마트폰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그는 구조적 접근을 권한다. 즉, 의지력 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에 노출되는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식단과 관련해서, 그는 역설적이게도 식사를 더 단 조롭게 만들 것을 제안한다. 다양성은 과식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이며, 음식의 자극이 줄어들수록 뇌는 더 빠르게 만족 신 호를 보낸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3개월간 설탕 섭취를 줄인 실험 참가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같은 디저트를 40퍼센트 더 달게 느꼈다. 초자극에서 멀어질수록, 자연적인 자극이 다시 충분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감화는 가역적이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루함의 복권이다. 지루함은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감각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잠깐의 여백조차 채우려 하고, 침묵이 오면 곧바로 화면을 켠다. 하지만 Brendborg는 바로 그 지 루함이야말로 뇌를 재설정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는 시간, 아무것도 채우지 않는 공간이 우리를 다시 현실과 연결시킨다. 통제한다는 착각에서 깨어나는 것은 자책이나 포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욕망과 중 동이 어디서 왔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이 진짜 나의 것인지 묻는 것에서 시작된다. 먹고 싶어서 먹는 것과, 먹도록 설계되 어 있어서 먹는 것은 다르다. 연결되고 싶어서 소셜 미디어를 여는 것과, 열도록 훈련되어 있어서 여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이 시대의 설계를 완전히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설계를 이해하는 순간, 최소한의 여백이 생긴다. 그리고 그 여백 속 에서 비로소 진짜 선택이 시작된다. 통제는 강철 같은 의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던 착각을 인식하는 것에서 조용히 되찾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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