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릴케 시 필사집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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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파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베끼는 일이라 생각했다. 종이 위에 남의 문장을 옮겨 적는 일, 손목이나 조금 피로하겠거니 하고 펜을 들었다. 하지만 릴케의 첫 행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무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손끝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글자 하나하나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받침 하나, 쉼표 하나에서 멈추게 된다. 활자로 읽을 때는 눈이 미끄러지듯 지나쳐 버렸던 것들이, 손으로 쓸 때는 발목을 잡는다. 필사를 시작한 건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어수선한 계절의 끝 무렵, 오래 묵혀두었던 노트 한 권을 꺼냈다. 마침 읽고 있던 릴케의 시집이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첫 구절을 따라 적기 시작했다. 그것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목적도, 의지도 아닌 그냥 손이 먼저 움직인 것이었다.

그래요, 그대를 그리워합니다
나를 잃어가며
내 손에서조차 나를 놓습니다

— 릴케, 사랑에 빠진 여인

쓰다가 한참을 멈췄다. 내 손에서조차 나를 놓는다. 손으로 쓰고 있는 나는, 지금 내 손에서 무엇을 쥐고 있는 것인지, 또는 놓아버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릴케의 말은 그렇게 작동한다. 읽는 사람의 내부에 들어와, 본래 그 사람의 것이었던 무언가를 건드린다. 마치 오래된 서랍을 열었을 때 잊고 있던 물건이 나오는 것처럼.

릴케는 자신의 묘비에 짧은 시 하나를 남겨달라고 유언했다 한다. 스위스의 어느 작은 마을, 그의 무덤 앞에 서면 그 말을 직접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장미와 모순과 눈꺼풀에 관한 말. 나는 아직 그 무덤 앞에 가본 적이 없지만, 필사하는 동안 여러 번 그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말들을 내 손이 다시 한 번 세상에 쓴다는 것이 묘하게 엄숙하고, 또 묘하게 가까웠다. 죽음 직전까지도 그는 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백혈병으로 떠난 그가 장미 때문에 죽었다는 소문이 돌 만큼, 그의 삶과 장미는 하나의 이미지로 엉켜 있다. 필사하면서 나는 자꾸 그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다. 꽃을 꺾으려 손을 뻗는 시인의 손목. 붉어지는 피부. 그리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눈빛. 아름다운 것을 가까이하려다 상처를 입는 일. 그것이 시를 쓰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필사를 마친 노트를 덮으면서 나는 무언가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지식이나 교훈 같은 것이 아니다. 더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말의 무게를 손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 시인이 고른 단어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침묵이 담겨 있는지를, 읽어서는 알 수 없고 써봐야만 알 수 있다는 것. 릴케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아름다움과 죽음을 노래했지만, 그것이 추상적인 주제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언어가 몸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 언어를 손으로 받아 쓰는 동안, 나도 잠시 그 통로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오늘도 노트를 편다. 펜을 고른다. 그리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 한 줄을 찾는다. 내가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의 내가 필요로 하는 한 줄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 나는 릴케가 백 년 전 어딘가에서 손수 쓴 것처럼, 조금 천천히, 한 글자씩 받아 적는다. 그 느린 시간이 하루에서 가장 고요한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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