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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은 오늘 끝내는 법 - 마감이 두려운 직장인을 위한
이동귀 외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왜 미루는지. "해야 한다"는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순간,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거부감이다. 완벽주의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적어도 그 편이 조금은 그럴듯하게 들렸으니까. 하지만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그건 아니었다. 그냥, 다 하기 싫었다. 이유도 명분도 없이. 그냥 통째로다. 이동귀 교수 연구팀의 이 책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에요"라고. 미루기는 의지의 실패가 아니라, 불안과 피로와 낮은 동기가 뒤엉킨 감정의 언어라고. 그 말이 묘하게 위로가 되면서도, 동시에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변해야 한다는 책임도 함께 딸려오니까.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뇌의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이었다.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순간, 우리 뇌는 아주 잠깐의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안도감을 '승리'처럼 기억한다. 문제는 그 안도가 진짜 승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불편함을 잠시 옆으로 밀어둔 것뿐인데, 뇌는 그걸 해결이라고 착각한다.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렸다."시험 시간 내에 다 못 풀면 어쩌지" 그 공포 하나가 씨앗이 되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헐떡이며 달리고 있다. 시간에 쫓기는 삶. 시간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삶. 항상 마감이 등 뒤에서 숨을 내쉬는 것 같은 그 감각.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돌아보면, 꽤 오래된 상처였다. 뇌가 회피를 승리로 착각하는 사이, 나는 점점 더 '시간의 피해 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책은 미루기의 감정적 뿌리를 크게 세 가지 패턴으로 나눈다. 불안형(잘 해야 한다는 압박이 너무 커서, 시작 자체를 못한다), 피로형 (몸과 마음이 이미 소진되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저동기형(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손이 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셋이 다 섞여 있다. 직장에서 의미도 맥락도 없는 일들이 쌓여갈 때, 나는 세 가지를 동시에 경험한다. "이게 왜 필요한 거 지?"라는 의문(저동기), 그래도 잘해야 하는데"라는 강박(불안), "근데 나 지금 너무 지쳤는데"라는 탈진(피로). 이 세 감정이 동시에 충돌하면, 결과는 하나다.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미루다 보면 마감이 코앞에 온다.
책에서 나를 가장 오래 붙잡아둔 것은,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예측하고 설계하는 감각이 부족해서 흘러가 버리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하루 24시간씩 주어진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 시간은 사람마 다, 심지어 같은 사람에게도 하루하루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날은 하루가 일주일처럼 길게 흐르고, 어떤 날은 눈 깜빡할 새에 저녁이 된다. 그 차이는 결국 마음의 상태, 즉 내가 시간 앞에서 어떤 태도로 서 있었느냐에 달려 있다. 마음을 다루는 것이 삶의 기술이 듯, 시간을 다루는 것도 배워야 하는 기술이라는 것. 나는 그걸 너무 늦게 배우고 있는 중이다.
책에서 제안하는 핵심 실천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아침 출근 직후 단 10분, 오늘 반드시 해야 할 핵심 과제 세 가지를 먼저 정리 하는 것. 메일함부터 열지 않는 것. 큰 덩어리의 일을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어 시작의 문턱을 낮추는 것. 유혹이 닿지 않는 환경을 미리 설계해두는 것이다. 그중에서 내 마음을 가장 건드린 건 '완벽'주의가 아닌 '완료'주의라는 개념이었다. 완벽하게 하려다 시작조차 못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혹은 나의 일부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뭔가를 시작하려 하면 "이 정도로 해도 되나?" 하는 의심이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완료하지 않은 완벽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제출되지 않은 보고서는 아무리 완벽해 도 쓸모가 없다. 시작되지 않은 프로젝트는 아무리 머릿속에서 정교해도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움직임이 없는 완벽은 그냥 생각에 불과하다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 아주 작은 것 하나를 골랐다. 하루를 시작할 때 '오늘의 딱 세 가지'를 먼저 적는 것. 그게 전부 다. 거창한 계획표도, 철저한 루틴 개편도 아니다. 그냥 오늘, 딱 세 가지. 그것만 끝내도 오늘은 성공이라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 미루는 것이 게으름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건 마음이 보내는 신호였다. 지쳐있다는 신호, 무섭다는 신호, 의미를 잃었다는 신호. 그 신호를 무시하고 채찍만 들이대는 대신, 이제는 "내 미루기 뒤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를 먼저 물어보려 한다. 자책보다 이해가 먼저다. 이해가 되어야 변화도 시작된다.
가끔 고개를 들어야 한다.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왜 달리고 있는지 잊게 된다. 마감에 쫓기고, 업무에 치이고, 의미도 모른 채 처리하고, 또 처리하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질문이 올라온다. 그 질문이 올라오는 순간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멈추는 것이 실패가 아니다. 잠깐 멈춰서 고개를 드는 것,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것,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 것. 그 것이 진짜 시간을 '관리'하는 삶이다. 시간이 나를 끌고 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시간 위에 서는 삶. 오늘부터, 아주 조금씩,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