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늦을 것 같아서 - 최고부부의 가슴 뛰는 세계여행 - 남미, 폴란드, 하와이 편
최양순 지음, 고영수 사진 / 메이킹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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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손을 떼지 못했다. 페루의 붉은 사막, 빙하가 무너지는 굉음,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항구. 그 풍경들이 문장 사이사이에 살아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묵직한 무언가가,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 그 속도 안에 있었다.

칠순을 넘긴 부부가 다시 짐을 쌌다는 사실. 그것은 용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흔히 '이미 충분히 살았다'는 문장을 꺼내 들기 시작한다. 충분히 봤고, 충분히 겪었고, 충분히 가봤다고. 그 문장은 안도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포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부부는 그 문장을 거절했다. 더 늦기 전에, 라는 역설적인 긴박감으로 다가온다.

여행이 철학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얼마나 먼 곳을 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자신을 마주했느냐와 관련된다. 와카치나의 오아시스 앞에서 저자는 눈물을 고인다. 누군가는 그 눈물을 감동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자기 자신과의 화해라고 읽었다. 10년 전의 내가 이곳에 다시 오리라 다짐했고, 지금의 내가 그 약속을 지켰다는 것. 그 조용한 성실함이 오아시스보다 더 환하게 빛났다.

우리는 흔히 여행을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그들은 일상 바깥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일상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감기에 시달리면서도 바예스타 섬의 보트에 오른 것, 남편이 잠든 사이 혼자 망고를 먹으며 10년 전을 떠올린 것,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뛰고 웃고 구른 것들. 그 장면들은 관광지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두 사람이 살아온 삶의 질감 그 자체였다.

나스카의 지상화는 하늘에서만 보인다. 땅 위에 서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거대한 그림인지조차 알 수 없다. 사람의 생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한가운데를 걷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어느 정도 나이의 고도에 올라서야 비로소 전체 윤곽이 드러나는 그런 것. 칠순의 눈으로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에는, 그 높이에서만 볼 수 있는 어떤 고요함이 있었다.

슬로바키아의 기차역에서 가족이 펼쳐 든 플래카드 앞에서 저자는 운다. '100국은 처음이지?'라는 장난스러운 문구와 함께. 그 눈물이 단지 100이라는 숫자 때문이 아님을 나는 안다. 그것은 한 세대가 걸어온 길의 무게이고, 손녀 손주의 손을 잡고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어떤 유산의 감각이었을 것이다. 여행이 끝나도 여행은 계속된다. 기억 속에서, 사진 속에서, 그리고 함께 걸었던 사람의 몸짓 속에서 계속된다.

이 책이 내게 남긴 질문은 하나다. 나는 지금 내 삶에서 '더 늦기 전에'라고 느끼는 무언가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오래 미뤄둔 화해, 쑥스러워 꺼내지 못한 말, 가보고 싶었던 골목, 다시 읽고 싶었던 책 한 권. 삶은 어느 순간 갑자기 '충분히 늦어버린' 쪽으로 돌아선다. 그 전에 움직이는 것, 그것이 이 부부가 두꺼운 캐리어를 끌며 인천공항을 나선 진짜 이유였을 것이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지금도 전진 중이라고 했다. 후퇴하지 않는 빙하.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붙들고 있었다. 어떤 삶도 그럴 수 있다. 나이가 쌓일수록 움츠러드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 책은 그런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도 같은 것이었다.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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