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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의 말하기 수업 - 말수가 적어도 인정받는 사람들의 말하기 전략
김해리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회의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머릿속에서 문장을 다듬다 보면 이미 대화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있었고,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그날 꺼내지 못한 말들이 뒤늦게 완성되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적절한 타이밍`을 번번이 놓친 뒤, 나는 나 자신에게 같은 진단을 내리곤 했다. 말주변이 없는 사람. 소극적인 사람. 재미없는 사람이라고.그런 자기 낙인 속에서 <내향인의 말하기 수업>을 처음 펼쳤을 때, 책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왜 말 앞에서 작아지는가?" 나는 그 질문이 나를 향해 있다는 걸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알아챘다. 단순히 성격이 내향적이어서가 아니라, 내향성과 불안, 그리고 예민함이 복잡하게 얽혀 말을 막아왔다는 저자의 분석은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에게 붙여온 꼬리표를 조용히 다시 검토하게 만들었다. 내 말문을 막은 것은 결함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기질이었다. 책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잡은 것은 내향인의 에너지를 '용량이 다른 배터리'에 비유한 대목이었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전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이 비유는 단순하지만 강하게 꽂혔다. 나는 그동안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빨리 지치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겨왔는데, 사실 그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쓰는 구조의 문제였다. 충전이 더 자주 필요할 뿐이지, 완충된 상태에서 꺼내는 말은 그 누구보다 밀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내향성, 불안, 예민함이라는 세 가지 기질을 '말하기의 결격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뒤집으면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말한다. 내향성은 말을 신중하게 만들고, 불안은 청중의 반응을 더 민감하게 포착하게 하며, 예민함은 분위기를 빠르게 읽는 능력이 된다는 것이다. 읽는 내내 '이건 나도 본 적 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분명 나도 발표 전 유독 청중의 표정을 잘 읽었고, 자리의 온도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했다. 그 능력이 단점이 아니라 강점일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은, 오랫동안 내가 외면해온 나의 어떤 부분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생각의 양조장'으로 표현한 부분이었다. 내향인이 홀로 조용히 보내는 시간은 정보를 자기만의 언어로 숙성시키는 과정이라는 것. 즉흥적으로 내뱉는 말은 공중에 흩어지지만, 오래 고인 생각에서 나오는 말은 뿌리가 깊다. 나는 이 문장에서 멈췄다. 말이 느린 것을 늘 결점으로 여겼는데, 어쩌면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말을 단단하게 빚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책은 위로에만 머물지 않는다. 구체적인 전략도 함께 제시한다. 몸의 이완을 통해 말하기 긴장을 푸는 법, 침묵을 실패가 아닌 "생각을 고르는 시간"으로 재정의하는 법,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불안을 감추는 법까지. 이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만의 복귀 문장'을 만들어두라는 조언이었다. 말이 끊기거나 실수를 했을 때 스스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한 문장. 그것이 있으면 완전히 무너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15년 차 스피치 강사임에도 여전히 마이크 앞에서 떨린다고 고백한다. 다만 "들키지 않는 기술"이 생겼을 뿐이라고. 이 솔직한 문장이 오히려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말하기의 불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 불안을 부끄럽게 여기는 대신, 불안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사람이 되는 것. 책은 그 가능성을 조용히, 하지만 단단하게 전달한다.각 챕터 말미에 수록된 연습 노트도 이 책의 깊이를 더하는 부분이다. 단순히 읽고 끝내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말하기 패턴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도록 유도한다. '말하려다 그만둔 장면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라는 질문 하나에, 나는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책은 이렇게 독자를 서두르게 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하기처럼, 책도 느리고 신중하게 독자 곁에 앉는다.책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말하기 기술이 아니다.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말이 느리고 생각이 오래 머무는 것이 부족함이 아니라 하나의 리듬일 수 있다는 것. 그 리듬을 억지로 바꾸려 애쓰는 대신, 자신의 속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말하는 법을 찾아가는 것. 저자는 그 여정을 "나를 다그치는 대신 나만의 속도를 존중하기로 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담담히 표현한다.책을 덮고 나서 나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하나의 믿음을 수정해야 했다. 나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속도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책의 한 장 제목처럼, 우리는 결국 말을 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느려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나의 세계는 비로소 타인과 이어지기 시작한다. 책은 그 첫 문장을 꺼내는 용기를 조용히, 하지만 오래 남는 방식으로 전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