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을 읽는 시간 - 김수행 교수의 자본주의 강의
김수행 지음, 카를 마르크스 원작, 박도영 정리 / 해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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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자본주의는 영원할까. 이 질문이 공허하게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된 이후, 많은 사람들은 역사가 자본주의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그 확신에 균열을 냈다. 거대 투자은행들이 연달아 쓰러지고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현장에서, 바로 얼마 전까지 "시장은 항상 효율적이다"라고 가르치던 경제학자들이 공적 자금을 투입해 금융기관을 살려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다. 이 뻔뻔한 돌변 앞에서 사람들은 다시 마르크스를 꺼내 들었다. <자본론을 읽는 시간>은 그 맥락에서 태어난 책이다. 마르크스의 생애와 방법론, 화폐론, 노동론,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압축하여 독자에게 건네는 이 책은,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유효한 안내서다.


이 책이 먼저 짚는 것은 주류경제학의 한계다. 주류경제학은 인간을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 전제하며, 이들이 자신의 재산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효용과 이윤을 극대화한다고 본다. 이 단순한 가정 위에 정교한 수학적 모델이 쌓인다. 그러나 이 모델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을 처음부터 지워버린다. 갈등이 없으니 착취도 없고, 착취가 없으니 위기의 구조적 원인도 설명할 수 없다. 2008년의 사태가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마르크스는 이보다 훨씬 앞서 이 문제를 꿰뚫었다. 그는 주류경제학이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그들의 상식을 정교하게 합리화하는 속류 경제학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어떤 이론이 옳은가를 따지지 않고, 그 이론이 자본가에게 이익이 되는가만을 기준으로 삼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이 비판은 150년이 넘은 지금도 날카롭게 살아있다.

마르크스를 읽는 일은 그의 삶을 이해하는 일과 떼어낼 수 없다. 그는 프러시아 왕정으로부터 교수직을 거부당하고,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추방되었으며, 결국 런던으로 망명하여 평생 가난 속에서 살았다.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들은 읽기 민망할 정도로 절박하다. 전당포에 옷을 맡겨두어 외출도 못 하고, 돈이 없어 아픈 가족에게 의사를 부르지 못했으며, 수입의 4분의 1을 전당포 이자로 냈다. 세금 독촉장을 받으며 재산 압류를 걱정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그는 대영박물관 도서실에서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를 비롯한 경제학자 199명의 저작을 섭렵하며 연구를 이어갔다. 『자본론』 제1권이 나온 것은 1867년, 그가 이미 49세였을 때다. 제2권과 제3권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엥겔스가 남겨진 원고를 정리하여 출간했다. 이 책이 한 개인의 헌신으로만 완성될 수 없었음을, 그리고 엥겔스라는 평생의 동지 없이는 마르크스도 없었음을 저자는 조용히 상기시킨다. 그의 성격에 관한 묘사도 흥미롭다. 딸들과 함께한 고백 게임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싸우는 것"이고 불행은 "굴복하는 것"이라 답했다.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였다. 이 말들은 그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세계를 변혁하려 한 혁명가였음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핵심 기여 중 하나는 자본주의를 인류 역사의 영원한 종착점이 아니라 특수한 하나의 단계로 파악한 것이다. 원시공산 사회, 노예 사회, 봉건 사회를 거쳐 자본주의에 이른 인류는 앞으로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이 관점은 주류경제학이 자본주의를 인간 본성에 가장 적합한 영구불멸의 체제라 보는 것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만들어낸 개념이 생산양식이다. 생산양식은 경제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구성된다. 토대는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이루어지며, 토대 위에 정치·법률·문화 등 상부구조가 세워진다.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생산관계와 모순을 일으킬 때 사회혁명이 발생한다는 것이 역사적 유물론의 핵심이다. 헤겔이 절대정신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본 것과 달리, 마르크스는 인간의 물질적 생산 조건이 역사를 규정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주연배우는 자본가 계급과 임금노동자 계급이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자본이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라 불렀다. 자본가가 박애주의자여서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준다면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게 된다. 이 구조 안에서 자본가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주류경제학이 개인의 본성에서 출발한다면, 마르크스는 개인이 놓인 구조와 관계에서 출발한다.

책은 마르크스의 화폐론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한다. 화폐는 처음부터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상품들이 서로의 가치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점차 하나의 상품이 모든 상품의 가치를 대표하는 일반적 등가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화폐가 탄생했다. 금이 그 역할을 맡은 것은 썩지 않고, 분할할 수 있으며, 운반이 쉬운 특성 덕분이었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금이 처음부터 모든 상품을 구매할 힘을 가진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을 화폐에 대한 물신숭배라 불렀다. 신하들이 왕이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복종하기 때문에 그가 왕이 되는 것처럼, 금도 화폐로 선택되었기 때문에 그 힘을 갖게 된 것이다. 현재의 불환지폐도 이 연장선에 있다. 오늘날의 지폐는 금과 아무 관련이 없지만 국가가 법화로 지정하고 모든 상거래에서 통용되기 때문에 화폐로 기능한다. 그 가치는 지폐 자체를 생산하는 비용이 아니라, 그 지폐가 실제로 구매하는 상품들의 가치를 반영함으로써 형성된다. 달이 스스로 빛을 내지 않고 태양빛을 반사하듯, 불환지폐는 노동생산물의 가치를 반영한다. 화폐경제가 물물교환경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판매와 구매가 시간적·공간적으로 분리된다는 것이다. 이 분리 자체가 과잉생산 공황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상품을 팔아 화폐를 손에 쥔 사람이 곧바로 다른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상품은 팔리지 않은 채 창고에 쌓인다.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조한다"는 세의 법칙은 물물교환 경제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


책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전개되는 부분은 노동과 기계에 관한 논의다. 기계 그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힘든 일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가가 이윤을 위해 기계를 도입하면 결과는 정반대가 된다. 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어나고, 컨베이어벨트는 더 빠르게 돌며, 기존 노동자들은 해고된다. 기계 자체는 노동자를 해방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이용은 노동자를 더 깊이 속박한다. 단순협업, 매뉴팩처, 기계제 대공업으로 이어지는 생산방식의 발전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노동자를 점점 더 자본에 종속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매뉴팩처에서 숙련노동자는 아직 자본가에게 협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계가 들어오자 숙련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노동자는 기계의 리듬에 맞추는 부속물로 전락했다. 형식적 종속에서 실질적 종속으로의 전환이다. 이 구조 안에서 노동자가 창조하는 가치는 임금과 잉여가치로 나뉜다. 산업자본가는 이 잉여가치에서 금융자본가에게 이자를, 상업자본가에게 상업이윤을, 지주에게 지대를 지급하고 남는 것을 기업이윤으로 가진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이 기본 구도이지만, 잉여가치를 둘러싼 자본가들 사이의 갈등도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임금을 낮추고 잉여가치를 늘리는 문제에서는 자본가 계급 전체가 합심하여 노동자 계급과 싸운다.


마르크스가 새로운 사회에 대해 남긴 묘사는 자본론 전체의 0.5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는 청사진을 그리는 대신 자본주의가 왜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하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발전한 생산력을 더 이상 담아내지 못하는 순간에 주기적으로 폭발한다. 새로운 사회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다.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각자의 노동력을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사용한다. 낮은 단계에서는 노동한 만큼 분배하고, 높은 단계에서는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 상품이 사라지면 화폐도 사라진다. 비생산적 노동이 줄어들고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각 개인의 노동시간은 대폭 단축된다. 과잉생산 공황은 생산의 목적이 자본 증식이 아니라 주민의 필요 충족으로 바뀌는 순간 사라진다. 이 전망이 유토피아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이 소수가 다수를 수탈했던 자본주의의 형성보다 훨씬 쉽다고 보았다. 전자는 소수가 인민대중을 수탈하는 과정이었지만, 후자는 다수인 인민대중이 소수 횡령자를 수탈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책은 방대한 마르크스 경제학을 압축하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읽다 보면 오늘의 현실이 책 속 묘사와 겹쳐 보이는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온다. 비정규직의 확산, 플랫폼 자본주의에서의 노동 착취, 금융 투기의 반복적 붕괴, 양극화의 심화. 마르크스가 분석한 구조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작동 중이다. 물론 이 책이 모든 답을 주지는 않는다. 새로운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오늘의 조건에서 어떤 전략이 가능한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마르크스 자신도 이를 현장에서 씨름하는 사람들이 구체화해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그 씨름을 시작하기 위한 지적 토대를 닦는 일, 그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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