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낸 밥값의 기록들 - 흔하지만 쉽지 않은, 뻔한 말들의 무게
오원택 지음 / 한경CAREER / 2026년 3월
평점 :
일시품절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상 속으로 성큼 들어온 지금, 우리는 묘한 역설 앞에 서 있다. 기술은 전례 없이 빠르게 진보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불안은 오히려 더 짙어졌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을 내어주는 기계 앞에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 사람다운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어느 선배가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며 남긴 책을 읽었다. 거창한 성공담도, 빛나는 커리어의 자랑도 아니었다. 그것은 흔하디 흔한 말들, 배려하라, 성찰하라, 성실하라, 몸으로 증명하려 애쓰며 하루하루를 버텨온 사람의 고백이었다.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 오래된 조언들이 AI 시대에도 유효할까. 아니,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이 말들이 더욱 절실해지는 시대가 아닐까.

선배는 묻는다. 세상에 과연 흔한 것이 있는가. 그리고 스스로 답한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순간, 흔한 것도 흔하지 않은 것이 된다고. 이 단순한 명제가 AI 시대에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인공지능은 흔한 것들을 극도로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반복적인 분석, 표준화된 문서, 예측 가능한 패턴. 그것들은 점점 기계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흔하지 않음'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눈, 데이터가 포착하지 못하는 맥락을 읽는 감각, 효율보다 관계를 택할 수 있는 용기. 선배가 말하는 '흔하지 않은 사람이 되자'는 다짐은 단순한 자기계발의 격려가 아니다. 기계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 가라는 촉구다.

배려(配慮)라는 한자가 본래 '남의 술잔이 비어 있는지 살핀다'는 뜻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다. 선배는 배려를 양보와 구별한다. 양보는 내 것을 내어주는 일이지만, 배려는 상대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헤아리는 일이라고. 그래서 배려는 양보보다 훨씬 더 어렵다. AI는 놀라운 속도로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당신의 취향을 학습하고, 다음에 원할 것을 예측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데이터 기반의 추론이다. 진짜 배려는 데이터로 포착되지 않는 순간에 발휘된다. 침묵 속에서 상대방의 무거움을 알아채는 것, 말하지 않아도 지금 뭔가 힘들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 이 섬세한 인간적 능력은 알고리즘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다. 선배의 말처럼, 배려는 흔한 말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바로 그 어려움 속에 인간의 값어치가 있다.

선배는 성찰에 대해 말할 때 흥미로운 비유를 든다. 매미는 허물을 벗지 않으면 날 수 없고, 뱀은 껍질을 벗지 않으면 죽는다. 자연의 허물 벗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우리는 남의 허물을 보는 데는 탁월하지만, 정작 자신의 낡은 생각과 굳어진 편견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눈을 감는다. AI 시대에 이 통찰은 더욱 날카롭게 적용된다. 인공지능은 편향 없이 데이터를 처리한다. 반면 인간은 경험이 쌓일수록 오히려 특정 틀 안에서만 세상을 보게 될 위험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환경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성찰의 능력은 생존의 기술이 되었다. 선배가 말하듯, 허물은 억지로 벗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바라보고 나면 저절로 떨어진다. 그 '바라봄'이 곧 지혜의 시작이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도 하루 연습을 쉬면 자신이 알고, 사흘을 쉬면 청중이 안다. 이 이야기를 선배는 단순한 겸손의 수사가 아닌 냉정한 자기 고백으로 읽는다. 정상으로 오르는 지름길은 없다. 공부는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잠깐 손을 놓아도 밀려 내려간다는 교수의 말이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정확한 비유였음을 깨닫는다. AI가 순식간에 리포트를 작성하고 코드를 생성하는 시대에, 성실함의 의미는 바뀌었는가. 도구는 바뀌었지만 그 도구를 제대로 다루는 사람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반복된 훈련과 꾸준한 노력이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생산해 낸 결과물의 품질을 판단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능력, 그것은 오랜 시간 쌓아온 내공 없이는 길러지지 않는다. 성실함은 과거의 미덕이 아니라,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의 자산이다.

선배는 눈치를 비굴함이 아닌 통찰력으로 재정의한다. 상대방의 현재 상황과 필요, 감정 상태를 종합적으로 읽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 이것은 관찰력, 판단력, 실행력의 총합이다. 신입사원 간담회에서 연수원장이 되겠다고 답했던 동료가 훗날 임원까지 올라간 이야기는 단순한 처세술의 교훈이 아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가장 적절한 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읽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실행했다. 인공지능은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며 패턴을 찾아낸다. 그러나 살아있는 조직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흐름을 읽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회의실의 공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상사의 말 뒤에 어떤 맥락이 숨어 있는지, 팀원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살아있는 감각은 인간이 조직에서 발휘할 수 있는 고유한 역량이다.

선배의 글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버텨냄'이다. 억울한 감사를 견디고, 남 탓 대신 스스로를 돌아보며, 넘어졌을 때 그 실패를 공부 삼아 다시 일어서는 것. 이 버텨냄은 체념이나 수동적 인내가 아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모진 풍파를 통과해 나가는 능동적 의지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삶의 무게를 대신 짊어지는 기계는 없다. 관계의 어려움을, 실패의 아픔을, 선택의 무거움을 몸으로 통과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그 통과의 경험들이 쌓여 비로소 사람다운 깊이가 생긴다. 선배의 30년 고백이 흔해 보여도 뻔하지 않은 이유는, 그 말들이 관념이 아닌 살아낸 시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알고리즘이 아니라, 더 단단한 사람이다. 배려하고, 성찰하고, 성실하게, 눈치 있게, 긍정의 언어로, 신중하게. 이 낡아 보이는 덕목들이 실은 AI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내기 위한 가장 정직한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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