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문법 - 르네상스의 천재 피코 델라 미란돌라, 그리고 언어의 숭고한 힘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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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르네상스를 논할 때 우리는 흔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보편적 천재성이나 미켈란젤로의 불굴의 예술혼을 떠올린다. 그러나 조반니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라는 이름은 오늘날 우리에게 낯설다. 1463년 이탈리아 북부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불과 31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이 철학자는, 짧은 생애 동안 교황의 분노를 사고, 감옥에 갇히고, 그의 저서가 인쇄된 책 중 최초로 교회에 의해 금서가 되는 파란만장한 운명을 겪었다. 에드워드 윌슨-리(Edward Wilson-Lee)의 전기 The Grammar of Angels은 피코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선사하는지 이야기한다. 피코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는 이 여정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이며, 언어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가라는 오래되고도 근본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피코는 어린 시절부터 비범함의 표시를 달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단테의 신곡 전편을 한 번만 들어도 앞뒤로 완벽하게 암송했다는 일화는 과장이 아니라, 그가 언어와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이 보통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음을 시사 한다. 그에게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어떤 초월적인 질서와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열 살에 교회의 사무직에 임명되고, 볼로나와 페라라, 파도바와 파리의 대학들을 순례하며 법학과 의학, 고전어를 차례로 정복해간 피코의 학문 편력은,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끝없는 질주였다. 그러나 정통적인 학문의 경계를 모두 섭렵한 후, 피코가 도달한 것은 만족이 아니라 더욱 깊은 갈증이었다. 그는 유대 학자들을 찾아가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배우고, 조로아스터의 언어라고 믿었던 칼데아어(실제로는 에티오피아의 전례 언어인 게에즈어였지만)를 익히면서, 동방의 고대 텍스트들 속에 감추어진 신성한 지식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윌슨-리 책의 핵심 주제이자 피코 철학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언어 자체에 대한 그의 사유이다. 피코가 던진 하나의 관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이 의미 있는 말보다 더 강한 마법적 힘을 가진다. 명상가들이 반복하는 만트라, 마법사의 주문 "아브라카다브라", 혹은 경기장에서 군중이 함께 외치는 구호 등은 그 언어적 의미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의식을 움직인다. 피코는 언어가 의미를 초과하여 작동하는 영역에 천사가 있다고 보았다. 윌슨-리는 이를 황홀하게 하는 말(enrapturing speech)"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합창단에서 함께 노래할 때, 또는 군중 속에서 하나의 구호를 외칠 때, 우리는 잠시 개별적 자아의 경계가 녹아내리는 경험을 한다. 피코에게 이것은 감정적 경험만이 아니라 신비적 합일의 전조였으며, 인간이 천사적 존재, 즉 개별성을 초월한 순수한 이성의 존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증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 즉 공동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틀 안에서 천사를 인간보다 상위에 위치한 존재, 즉 불완전한 육체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순수 이성으로 정의했다. 피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철학적 이해를 통해 천사의 경지에, 나아가 신성한 합일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급진적인 가능성을 탐구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만든 그 하나가 될 것이다." 이단이기 이전에 인간의 가장 오래된 열망 중 하나를 담고 있다. 피코의 900개 명제는 바로 이 야심찬 통합의 기획 위에 세워졌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유대 카발라 전통, 아랍 철학자 아베로에스에 이르기까지, 피코는 모든 지적 전통을 하나의 거대한 통일 이론으로 종합하고자 했다. 그것은 지식의 과시가 아니라, 세계의 모든 지혜가 실은 하나의 진리를 다른 언어와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심층적인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피코의 장대한 지적 기획은 당대의 권력으로부터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1486년 로마에 도착한 스물세 살의 피코는 자신의 900개 명제를 공개 토론에 부치겠다고 선언하고, 도전자들의 여행 경비까지 부담하겠다고 했다. 이 대담한 선언은 지적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의 사유가 얼마나 공개적이고 보편적인 대화를 원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는 토론 자체를 금지했고, 명제들을 이단으로 판정한 교황청 위원회의 결정에 피코는 격렬한 반박문을 발표했다. 그 결과 그의 저서는 교회에 의해 최초로 금서가 된 인쇄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얻었고, 피코 자신은 도피 신세가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피코가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가 박해를 받는 방식이다. 그는 권위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비판자들을 경멸하는 글을 발표했다. 겸손이나 유화의 기술을 익히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윌슨-리의 서술은 피코를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이단아로 그려낸다. 그는 고집스럽지 않았다기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진리 앞에서 정치적 타협이 의미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피코를 구한 것은 로렌초 데 메디치의 우정이었다. 로렌초는 피코를 위해 도서관을 지을 수 있다면 파산해도 좋겠다고 말했을 만큼 그를 아꼈고, 실제로 동지중해 전역에 사람을 보내 희귀 필사본을 수집했다. 피코의 말년은 플로렌체에서 조용하게 연구에 몰두하는 시간이었지만, 로렌초의 죽음과 함께 사보나롤라의 광풍이 도시를 휩쓸면서 그는 또 다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피코는 자신이 플로렌체로 불러들인 바로 그 사보나롤라의 수도원 산마르코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보나롤라는 군중을 열광적인 집단적 황홀경으로 이끄는 웅변의 힘을 구현한 인물이었다. 보티첼리가 그의 설교에 설득되어 자신의 그림을 불태웠다는 일화는, 피코가 그토록 탐구했던 황홀하게 하는 말"의 힘이 실제로 얼마나 강렬하고 동시에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피코는 그 힘의 신성한 가능성을 보았지만, 그것이 어떻게 파괴적인 집단 광기로 전환 될 수 있는지를 목격하면서 생을 마쳤다.

윌슨-리가 피코를 통해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현대적 질문은 개인주의에 관한 것이다. 바사리에서 부르크하르트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는 오랫동안 개인 천재의 시대로 해석되어 왔다. 피코 역시 그 신화의 일부로 위치 지어졌다. 그러나 윌슨-리는 피코의 철학이 실은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피코에게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는 개인이란 과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을 파도의 물마루에 비유했다. 각각의 물마루는 개별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거대한 대양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관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낯설고 불편하다. 현대 서구 사회는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자명한 가치로 여기도록 훈련받았다. 그러나 윌슨-리는,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이 집단적 정체성을 개인적 정체성보다 우선시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음을 지적한다. 문제는 집단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는가이다.

20세기 파시즘은 개인이 집단 속으로 해소되는 황홀경의 어두운 역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피코가 탐구했던 집단적 합일의 경험은 파시즘적 강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자발적인 신비적 참여이자,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연결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 위기가 증명했듯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도전들은 개인적 해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피코의 질문은 이 맥락에서 새롭게 울린다: 우리는 개별적 자아의 경계를 초월하여 공동의 운명 을 인식할 수 있는 철학적, 정신적 자원을 갖추고 있는가? 윌슨-리는 피코를 직접적인 해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피코의 사유가 우리에게 익숙한 개인주의적 패러다임의 외부에 다른 가능성이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고 제안한다. 새들의 언어에 대한 믹스텍 문명의 관심, 아이슬란드 서사시의 신화, 인도 브라만의 신성한 언어관 이 피코의 천사 언어에 대한 탐구와 연결되는 방식은, 인간이 의미와 의미를 초월하는 것 사이의 경계에서 언제나 같은 질 문을 던져왔음을 암시한다.


피코는 로마의 시인 프로페르티우스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위대한 일에서는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체념처럼 들리기도 하고, 숭고한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아마도 피코 자신도 그 양가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천사의 언어를 해독하고, 모든 지혜를 하나의 통일 이론으로 종합하고, 언어가 의미를 초월하는 영역에서 신성과 접촉하겠다는 그의 야망은 달성되지 못했다. 그가 죽기 직전 산마르코에서 미친듯이 써내려간 마지막 원고들은 이후 아무도 읽을 수 없는 "난해한 혼돈"이었고, 결국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The Grammar of Angels가 설득력 있게 보여주듯, 피코의 실패한 탐구는 실패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더 오래 기억된다. 계몽주의 이후의 지성사는 피코 식의 탐구를 "학자들의 허영"이라고 조소했다. 새로운 패러다임과 데이터의 지속적 확장이 지식의 이상이 되었고, 이해보다 정보가, 지혜 보다 혁신이 우선시되었다.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오늘날 행성 규모의 위기 속에서 목격하고 있다. 결국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짧고 눈부신 생애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완성된 체계가 아니라 질문 그 자체다. 언어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가? 인간은 자신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 집단 속으로 녹아드는 경험은 위험인가 아니면 구원인가? 피코는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질문들을 가능한 한 멀리, 가능한 한 깊이 밀어붙였다. 위대한 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충분했다. "In great things, it is enough to have tried" Propertius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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