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를 구한 것은 로렌초 데 메디치의 우정이었다. 로렌초는 피코를 위해 도서관을 지을 수 있다면 파산해도 좋겠다고 말했을 만큼 그를 아꼈고, 실제로 동지중해 전역에 사람을 보내 희귀 필사본을 수집했다. 피코의 말년은 플로렌체에서 조용하게 연구에 몰두하는 시간이었지만, 로렌초의 죽음과 함께 사보나롤라의 광풍이 도시를 휩쓸면서 그는 또 다시 위험에 처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피코는 자신이 플로렌체로 불러들인 바로 그 사보나롤라의 수도원 산마르코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보나롤라는 군중을 열광적인 집단적 황홀경으로 이끄는 웅변의 힘을 구현한 인물이었다. 보티첼리가 그의 설교에 설득되어 자신의 그림을 불태웠다는 일화는, 피코가 그토록 탐구했던 황홀하게 하는 말"의 힘이 실제로 얼마나 강렬하고 동시에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피코는 그 힘의 신성한 가능성을 보았지만, 그것이 어떻게 파괴적인 집단 광기로 전환 될 수 있는지를 목격하면서 생을 마쳤다.
윌슨-리가 피코를 통해 제기하는 가장 중요한 현대적 질문은 개인주의에 관한 것이다. 바사리에서 부르크하르트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는 오랫동안 개인 천재의 시대로 해석되어 왔다. 피코 역시 그 신화의 일부로 위치 지어졌다. 그러나 윌슨-리는 피코의 철학이 실은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피코에게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는 개인이란 과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을 파도의 물마루에 비유했다. 각각의 물마루는 개별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거대한 대양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관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낯설고 불편하다. 현대 서구 사회는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자명한 가치로 여기도록 훈련받았다. 그러나 윌슨-리는,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이 집단적 정체성을 개인적 정체성보다 우선시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음을 지적한다. 문제는 집단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는가이다.
20세기 파시즘은 개인이 집단 속으로 해소되는 황홀경의 어두운 역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피코가 탐구했던 집단적 합일의 경험은 파시즘적 강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자발적인 신비적 참여이자,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연결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 위기가 증명했듯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도전들은 개인적 해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피코의 질문은 이 맥락에서 새롭게 울린다: 우리는 개별적 자아의 경계를 초월하여 공동의 운명 을 인식할 수 있는 철학적, 정신적 자원을 갖추고 있는가? 윌슨-리는 피코를 직접적인 해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피코의 사유가 우리에게 익숙한 개인주의적 패러다임의 외부에 다른 가능성이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고 제안한다. 새들의 언어에 대한 믹스텍 문명의 관심, 아이슬란드 서사시의 신화, 인도 브라만의 신성한 언어관 이 피코의 천사 언어에 대한 탐구와 연결되는 방식은, 인간이 의미와 의미를 초월하는 것 사이의 경계에서 언제나 같은 질 문을 던져왔음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