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기 전에 읽는 심리학 - 이대로 살긴 싫은데 바꾸자니 두려운 어른들에게
김혜령 지음 / 메이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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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안을 안고 산다. 직업의 안정성도, 인간관계도, 미래도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불안은 공기처럼 우리 곁에 머문다. 그런데 심리상담가로 17년을 일해 온 저자는 묻는다.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불안이, 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것일까? 저자 자신도 한때 불안에 짓눌려 살았다. 대학원 시절 부모님의 경제적 어려움을 알게 된 이후, 그는 오직 '안정'만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전공과 무관한 직장에 취업해서 잘리지 않을 만큼만 일하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삶. 그렇게 3년이 지나자 안정이 아니라 정체가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 그는 '역동적 평형'이라는 개념을 만났다. 변화와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내적 자원을 활용해 균형을 되찾아 가는 과정. 진정한 안정이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나아가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흔들리는 존재다. 흔들리지 않으려 바위처럼 굳어 있겠다는 건, 어쩌면 죽은 듯이 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탈 벤 샤하르는 안전지대와 위험지대 사이의 '건강한 중간 지대'를 발견하기 위해 모험을 시도하라고 했다. 저자는 그 말을 몸으로 증명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심리상담가의 길을 걸으며 수입이 전혀 없는 시기도 견뎌 냈다. 서른이 넘어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칠 때의 불안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시간을 위기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였을 때,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들이 쌓였다. 마흔이 넘은 지금, 저자가 20년 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불안을 더 이상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안해도 결국 해냈던 경험, 흔들리면서 무너지지 않았던 시간들이 쌓이면서, 불안은 그를 끌고 다니는 주인이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흔들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기보다 기꺼이 흔들리는 자신을 허용해 보자. 불균형과 균형 사이의 시소 타기는 위기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가장 자기다운 성장의 과정이다.

요즘 사람들은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말을 참 자주 한다. 직업의 안정성도, 성공의 공식도 믿을 수 없는 시대에서 사람들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닻으로 자기 자신을 선택한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추구하는 '나다움'이 진짜 나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가 원하는 '자기다움'을 흉내 낸 것인지. 영국의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은 타인의 기대에 맞춰 방어적으로 만들어진 자기를 '거짓 자기'라고 불렀다. SNS에서 나다운 스타일, 말투, 행동을 전시하며 그것을 진짜 자신이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이미 또 다른 거짓 자기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모순되고 변해 가는 다양한 나를 통합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남에게 보여 주기 싫고 나조차 외면하고 싶은 초라한 모습까지 포함해서.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나에 대한 생각이 지나칠수록 오히려 삶에 몰입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청소년기 내내 삶을 증오하고 자살 충동을 안고 살았다. 그가 삶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줄이고, 세상의 일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나만 존재하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저자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일이든, 사람이든, 예술이든 무언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두하게 된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사라지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크게 확장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몰입을 두려워한다. 최선을 다했다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할까 봐, 깊이 사랑했다가 상처만 남을까 봐. 그래서 차라리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무언가에 몰두해 본 경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삶의 자산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감각이다. 어디까지 해봤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지, 어느 지점에서 포기하고 싶어지는지, 그럼에도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런 감각들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두려움에 '나'만 붙들고 살지 말기를. 삶에, 사람에, 일에, 사랑에 한 번쯤은 온 힘을 다해 미쳐 보기를 생각해 본다.

사회심리학자 앤드루 힐과 토머스 커런이 27년간 4만 명 이상의 대학생을 분석한 결과, 완벽주의의 세 가지 유형 중 '사회 부과적 완벽주의' (타인이나 사회가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기대한다고 느끼는 경향)의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젊은 세대는 점점 더 자기 자신을 타인의 기대 속에서 정의한다는 것이다. 외모, 성격, 직업, 재테크, 육아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육각형 인간'을 좇으려 하니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한다. 하지만 완벽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부지런함이나 성실함이 아니라, 게으름과 회피, 끝없는 자기 비난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 사람을 더 주저하게 만든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이 나의 존재를 객체화한다고 말했다. 그의 유명한 말 '타인은 지옥이다'의 본래 의미는, 타인의 시선 속에 갇힌 나의 모습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에 있다. 그 시선에 나를 모두 내맡기느냐, 아니면 중심을 잘 잡고 그 시선을 하나의 의견으로 여기느냐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저자는 대안으로 '완주'를 제안한다.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대단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정한 방향이기에 할 수 있다면 계속하는 것. 학창 시절 공부를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보면, 대부분 1등을 못 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에 충실하지 않아서 후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련과 후회는 결과 그 자체보다 그 순간에 충실하지 못했을 때 남는 것이다. 완벽함이 아니라 꾸준함. 그것이 결국 재밌었던 삶을 만드는 힘이다.


두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좋은 통로가 된다. 저자는 한때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이 함정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두려움은 삶의 장애물이 아니라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지켜 주는 자연스러운 신체 반응이기 때문이다. 통제되지 않는 두려움은 대개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저자가 상담한 20대 여성 승주 씨는 타인의 어두운 표정만 마주쳐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니, 감정 기복이 심했던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 경험이 있었다. 뇌가 그 패턴을 위협으로 기억해, 어른이 된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서 과거의 공포를 재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몸에 새겨진 두려움은 생각을 바꾼다고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두려움이 어디서 왔는지 살펴보고, 최초의 두려움을 겪었던 과거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이해의 단계를 통해 '나는 더 이상 무력한 아이가 아니라 나를 지켜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그것이 진짜 용기다.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용감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한 발짝 내딛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저자의 바람은 이렇게 바뀌었다.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에서 '두려움과 함께 더 자유롭게'로. 두려움을 이해할수록 더 편안해지고 자유로워진다. 우리 모두의 두려움이, 결국 그럭저럭 살 만한 날들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겉으로는 제각각이다. 이직을 해야 할지,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지, 이 친구와 관계를 끊어야 할지. 저자는 오랜 시간 이런 사연들을 마주하며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그 답을 타인에게 요청할 수밖에 없는 마음 이면에 있는 두려움이었다. 틀린 길을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저자도 오래 그랬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종교에 기대고, 별자리 운세까지 찾으며 삶의 해결사를 구해 헤맸다. 그러나 돌고 돌아 얻은 깨달음은 단순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것. 살아가는 한 나라는 존재의 운전대는 다른 누구에게도 넘길 수 없다. 심리학적 지식이나 심리치료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그저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자아를 건강하게 키워 가도록 돕는 안내자일 뿐이다. 변화와 성장을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결국 그 자신이기에.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내가 나를 믿어 주는 것,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힘. 이 세 가지가 어려움을 풀어 가는 유일한 비법이다. 약함을 인정할 때 가장 강한 모습이 드러난다. 힘들다고 말을 꺼내는 것, 도움을 요청하는 것, 막막하다고 토로하는 것, 그 모든 행동이 바로 당신이 가진 힘이다. 삶이 멈춘 듯 느껴질 때, 나 자신에게 말을 걸어 보자. 나에게는 내 삶을 잘 꾸려 갈 힘이 있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믿어 주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강해진다. 아니, 강해지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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