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일이든, 사람이든, 예술이든 무언가를 온 마음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두하게 된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사라지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크게 확장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몰입을 두려워한다. 최선을 다했다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할까 봐, 깊이 사랑했다가 상처만 남을까 봐. 그래서 차라리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나 무언가에 몰두해 본 경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삶의 자산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감각이다. 어디까지 해봤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지, 어느 지점에서 포기하고 싶어지는지, 그럼에도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런 감각들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두려움에 '나'만 붙들고 살지 말기를. 삶에, 사람에, 일에, 사랑에 한 번쯤은 온 힘을 다해 미쳐 보기를 생각해 본다.
사회심리학자 앤드루 힐과 토머스 커런이 27년간 4만 명 이상의 대학생을 분석한 결과, 완벽주의의 세 가지 유형 중 '사회 부과적 완벽주의' (타인이나 사회가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기대한다고 느끼는 경향)의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젊은 세대는 점점 더 자기 자신을 타인의 기대 속에서 정의한다는 것이다. 외모, 성격, 직업, 재테크, 육아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육각형 인간'을 좇으려 하니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한다. 하지만 완벽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부지런함이나 성실함이 아니라, 게으름과 회피, 끝없는 자기 비난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 사람을 더 주저하게 만든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이 나의 존재를 객체화한다고 말했다. 그의 유명한 말 '타인은 지옥이다'의 본래 의미는, 타인의 시선 속에 갇힌 나의 모습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에 있다. 그 시선에 나를 모두 내맡기느냐, 아니면 중심을 잘 잡고 그 시선을 하나의 의견으로 여기느냐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저자는 대안으로 '완주'를 제안한다. 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대단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정한 방향이기에 할 수 있다면 계속하는 것. 학창 시절 공부를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보면, 대부분 1등을 못 해서가 아니라 그 시절에 충실하지 않아서 후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련과 후회는 결과 그 자체보다 그 순간에 충실하지 못했을 때 남는 것이다. 완벽함이 아니라 꾸준함. 그것이 결국 재밌었던 삶을 만드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