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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AI가 만듦 - 기획부터 제작까지, 10배속 영화 제작의 비밀
한선옥.조인호.문현웅 지음, 무암(MooAm) 기획 / 파지트 / 2026년 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랫동안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고 살았다. 찍고 싶은 장면이 있었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현실의 벽이 먼저였다. 장비가 없고, 편집을 모르고, 무엇보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손발을 묶었다. 그 꿈은 꿈인 채로 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았다. 그런데 최근 읽은 책 한 권이 그 오래된 자물쇠를 건드렸다. AI를 활용한 영상 제작을 다룬 책이었는데, 나를 가장 먼저 흔든 것은 기술 설명이 아니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시대는 곧 누구나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는 문장이었다. 묘하게도 그 말이 나를 위축시키는 대신 오히려 용기를 주었다. 경쟁이 시작됐다는 것은, 출발선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책에서는 생성형 AI가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말한다. 어느 주의 한국 유튜브 조회수 1위가 AI로 제작된 동물 영상이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흥미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AI가 만든 콘텐츠가 이미 '신기한 실험'의 단계를 넘어 사람들의 시간과 감정을 실제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그 영상을 본 2천만 명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영상을 만든 사람이 어떤 대단한 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두려움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니, 지금도 두렵다. AI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내가 만든 것이 정말 '나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혹여 누군가의 것을 침범하는 건 아닌지. 책은 이 불안도 피하지 않는다. 딥페이크, 저작권 침해, 허위정보 생성 — 기술의 이면에 도사린 그림자들을 솔직하게 다루면서, 그래서 더 신중하게, 그러나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고 말한다. 그 균형 잡힌 시선이 오히려 믿음직스러웠다.책이 제시하는 'VISION'이라는 프레임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 처음 8초 안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후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좋은 장비보다 좋은 설계가 영상을 살린다는 것. 이 말들은 AI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쩌면 글쓰기에도, 말하기에도, 모든 표현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결국 기술이 아니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가 핵심이라는 것을 책은 반복해서, 그러나 지겹지 않게 강조한다.나는 만들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윤곽은 있다. 내가 자라난 지역의 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다. 화려하지 않고, 넓지도 않은 세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신선할 수 있는 장소다. 전문 카메라도, 조명 장비도, 편집팀도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 없음이 더 이상 '불가능'의 이유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무암이라는 제작사가 AI를 활용해 대규모 군중 장면이나 판타지 요소를 구현했다는 사례는, 예산이 아니라 발상이 콘텐츠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의 한계가 창의력의 한계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그렇다고 AI가 모든 것을 대신해줄 거라는 환상을 품지는 않는다. 책에서 말하는 AI는 '감독'이 아니라 '조감독'이다. 지루한 반복 작업을 대신하고, 상상을 시각화하는 데 힘을 보태주지만, 무엇을 찍을지, 왜 찍을지, 누구를 향해 말을 거는지는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야말로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AI는 무한한 가능성을 나열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기술의 파도가 온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파도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모래사장에 서서 구경만 했다. 겁이 나기도 했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파도는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는다. 결국 그 안에 뛰어들거나, 아니면 밀려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다면 차라리 파도를 타는 법을 배우는 쪽이 낫지 않을까. 나는 이제 조금씩 시작해보려 한다. 완벽한 첫 작품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담고 싶은 장면 하나를 AI와 함께 구현해보는 것, 그 경험으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출발이다. 언젠가 그 작은 출발이 쌓여, 내 이름이 담긴 영상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꿈은 여전히 조금 두렵다. 하지만 이제 그 두려움이 나를 멈추게 하는 이유가 아니라,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