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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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목원 가드너 황금비님의 첵 <숲으로 출근합니다>를 읽고 나서 한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 정확히는, 덮었지만 자꾸 다시 펼치게 됐다. 특종을 쫓던 기자가 잡초를 뽑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 단순한 서사가, 읽는 내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을 이 책이 다시 꺼내 들었다.

나무의사 다이어리라는 형식이 흥미롭다. 다이어리는 본래 시간의 기록이다. 그런데 이 책의 시간은 마감 시계나 회의 일정이 아니라, 목련이 꽃눈을 맺는 계절, 삼색참죽나무 새순이 세 번 색을 바꾸는 두 달, 무궁화가 매일 아침 새 꽃을 피우고 그날 저녁 지는 주기로 흐른다. 인간이 정한 달력이 아닌, 식물이 정한 달력 위에서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삶. 그것이 이 책이 전하는 가장 낯설고 가장 매혹적인 감각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식물들은 저마다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1억 6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해온 목련은 공룡이 어슬렁거리던 백악기에 이미 꽃을 피웠다. 우리가 이른 봄 길가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는 그 탐스러운 꽃망울 안에, 인류의 역사 전체보다 훨씬 긴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는 사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봄날의 목련 한 그루는 이전과 같은 나무가 아니게 된다.

황금비가 나무의사로서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식물의 이름이나 학명, 개화 시기가 아니다. 그는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 고안해낸 전략들에서 삶의 방식을 읽어낸다. 목련꽃이 북쪽을 향해 피는 이유는 겨우내 햇빛을 받은 꽃눈의 남쪽 부분이 더 단단하게 자라 꽃이 열리는 순간 그 무게에 밀리기 때문이다. 단지 성장의 차이가 빚어낸 방향이다. 그런데 그 방향이 흔들림 없이 북쪽을 가리킨다. 의도 없이 완성된 나침반. 삼색참죽나무의 새순이 처음엔 짙은 분홍, 다음엔 베이지, 마지막엔 초록으로 변하는 것은 자외선으로부터 여린 잎을 보호하기 위해 안토시아닌이 방패막이 되어주다가 엽록소가 충분히 만들어진 후에야 물러나는 과정이다.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아름다워진다.

기생식물인 야고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건다. 뿌리도 없고 잎도 없이, 억새의 뿌리에 기대어 8월 말 단 한 철 꽃을 피우고 사라지는 야고. 저자는 이 식물을 두고 수목원 생태계에서 충분히 제 몫을 한다고 말한다. 수목병리학 교과서는 기생식물을 방제의 대상으로 분류하지만, 수목원의 가드너들은 억새잎을 걷어 야고를 탐방객에게 보여준다. 잡초와 야생화를 가르는 것은 식물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라는 오래된 말이 여기서 다시 한번 증명된다. 1인분을 못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되물으면서, 저자는 야고를 통해 다양함이 곧 건강함이라는 수목원의 철학을 조용히 꺼내 놓는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화려한 식물도감적 지식이 아니라, 저자가 자신의 삶을 식물의 언어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노루오줌을 심으며 저자는 식물이 가장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찾아주는 일이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쓴다. 그늘지고 습한 곳을 좋아하는 노루오줌을 양지에 심으면 타들어가는 것처럼, 자신에게 맞지 않는 토양에 억지로 뿌리를 내리려 했던 서울에서의 10년을 그는 조용히 돌아본다. 빠른 것이 미덕인 도시에서 느린 것들을 견뎌내다가, 한 시간에 한 대씩 마을버스가 서는 태안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0.7배속의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직업이 바뀌었다는 사실보다,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 이 책의 진짜 주제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이제 매 시간 발행되는 뉴스의 속도가 아니라, 겨울 내내 꽃눈을 부풀려가는 목련의 속도로 시간을 감각한다. 늦가을 수목원을 산책하며 통통해지는 꽃눈을 바라보고 내년 봄의 개화를 기대하는 그 감각은, 내일의 주가나 다음 달의 성과와는 전혀 다른 시간관념이다. 아직 오지 않은 봄을 위해 지금의 겨울을 기꺼이 견디는 것. 그것이 나무의사의 달력이다.

나무의사라는 직업 자체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나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전문가. 그런데 이 책에서 나무의사는 나무를 고치는 사람이라기보다, 나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읽어내는 사람에 가깝다. 벚나무가 병해충에 약한 것은 벚나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토심이 얕고 배수가 나쁜 도심 환경에 억지로 이식된 결과다. 잘못된 가지치기, 줄기를 감는 현수막 끈, 콘크리트 위의 좁은 토양. 나무가 아프면 먼저 환경을 봐야 한다. 이 원칙은 식물학을 넘어서 어딘가 낯익은 윤리처럼 들린다.

동백나무 장에서 저자는 천리포수목원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30년에 걸쳐 태안 곳곳에 동백나무를 심어온 이야기를 전한다. 수목원에서 키운 삽수를 무료로 나누고, 재배 기술을 공유하고, 그 나무들이 지금은 마을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18만 평이라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수목원의 역사가 지역의 일상 속으로 번져 나간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다음 세대의 숲이 된다는 것. 나무의사의 다이어리가 단지 식물 기록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조용하다. 주장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목련이 북쪽을 향하는 이유를, 야고가 억새 아래 숨어 사는 방식을, 금목서 향이 만 리까지 퍼진다는 말의 뜻을 천천히 들려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독자는 자신이 어떤 토양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지금의 환경이 자신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곳인지를 묻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무의사의 다이어리는 결국 처방전이 아니라 관찰 일지다. 식물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든 것들이 기특해 보이는 순간이 온다고 저자는 쓴다. 여린 새순이 자외선을 막기 위해 붉게 물드는 것처럼, 살아있는 것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금을 버티고 있다. 그 버팀을 기특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 어쩌면 그것이 숲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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