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뇌과학 - 복잡한 세상이 단숨에 읽히는 필수 지식 27
양은우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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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내가 왜 이렇게 느끼는지를 스스로 가장 잘 파악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뇌과학은 그 믿음에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반론을 제기한다. 내가 기억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재구성된 이야기일 수 있고, 내가 내렸다고 믿는 결정은 이미 뇌가 먼저 내린 것일 수 있으며,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합리적이라 여기는 행동 뒤에는 전두엽의 노화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뇌과학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던차에 양은우님의 <최소한의 뇌과학>을 통해 뇌과학에 대해 알아보았다.

몇 해 전, 오랜 친구와 함께 갔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분명히 우리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다. 그런데 그 여행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두고 우리의 기억은 조금씩 달랐다. 나는 분명히 비가 왔다고 기억했고, 친구는 맑은 날이었다고 했다. 식당에서 싸운 기억이 있다고 했더니 친구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누군가의 기억이 틀렸다는 결론을 내리기엔 둘 다 너무 확신에 차 있었다. 그 대화가 불편했던 이유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억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고, 그건 곧 사실이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굳어 있었다. 하지만 뇌과학의 설명은 다르다. 기억은 카메라처럼 사건을 그대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고 분류하고 감정을 덧붙이는 과정에서 이미 한 차례 편집된다. 해마가 전두엽과 협력하여 정보를 정교화하는 과정, 잠을 자는 동안 대뇌피질에 새겨지는 과정, 그리고 나중에 기억을 인출할 때 다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오류가 누적된다. 기억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완전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가 말했듯, 기억이란 직접 경험한 사건의 일부에 상상을 덧붙여 완성하는 하나의 구조물이다.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다소 과장된 표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기억하는 많은 장면들이 실제로 그랬는지, 아니면 그렇게 기억하고 싶었던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꽤 있다. 좋게 기억하고 싶은 사람은 좋게 기억되고, 나쁘게 끝난 관계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재구성되지 않았을까. 더 흥미로운 것은 기억이 감정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편도체는 해마에서 정리된 정보에 감정을 덧붙여 대뇌피질로 전달한다. 즉, 정보를 받아들일 때의 감정 상태에 따라 같은 사건이 다르게 기억될 수 있다. 내가 그날 지쳐 있었는지, 설레 있었는지, 불안했는지에 따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을 듣고도 전혀 다른 기억이 남는다. 우리가 서로의 기억이 다르다며 다투는 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거짓말의 문제가 아니라 이 구조적 불일치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 내가 얻은 것은 작은 겸손함이다. 나의 기억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그리고 상대의 다른 기억을 거짓이 아닌 또 다른 진실로 바라보는 시선. 그것만으로도 많은 갈등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뇌과학이 던지는 또 하나의 도발적인 질문은 자유의지에 관한 것이다. 생리학자 벤저민 리벳과 이후 패트릭 해거드의 실험 결과는 놀랍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했다고 느끼는 순간, 뇌의 운동피질은 이미 1초 전부터 그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의식이 명령을 내리기 전에 뇌가 먼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사후에 붙인 이름표에 불과한 것일까.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의 기분은 묘한 허탈감이었다. 내가 아침마다 힘겹게 일어나 공부를 하거나, 먹고 싶은 걸 참거나, 어려운 선택을 하면서 쌓아온 것들이 사실은 뇌의 연산이 먼저 결정한 결과를 내가 '내 결정'이라고 오해한 것이라면, 과연 노력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다. 뇌가 먼저 행동을 준비하더라도, 의식은 그 행동이 실제로 실행되기 전까지 멈출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이것이 자유의지의 또 다른 형태다. 완전한 자유의지가 아닐지 몰라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은 무엇일까. 뇌가 무의식적으로 내리는 판단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좋은 습관, 올바른 사고방식, 건강한 감정 처리 방식이 무의식 속에 켜켜이 쌓이면, 뇌가 먼저 내리는 결정의 방향도 달라진다. 결국 자유의지의 가장 현명한 사용처는 당장의 선택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뇌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일지 모른다.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것은, 이것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의 위로로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왜 이런 선택을 반복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생기면, 자기 자신에게 덜 가혹해질 수 있다. 기억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상대에게 덜 가혹해진다. 나이 들면서 뇌가 변한다는 것을 알면 노인에게 덜 가혹해진다. 물론 뇌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훨씬 많고, 오늘의 정설이 내일의 수정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뇌과학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인간은 아직 자기 자신을 다 알지 못하고, 그 탐구는 계속되고 있다. 나는 왜 나를 모르는가. 어쩌면 그 질문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완전히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들여다보게 되고, 계속 궁금해하고, 계속 배우게 된다. 뇌과학은 그 여정에서 가장 솔직하고 겸손한 안내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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