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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민수 요리 역사 특강 - 읽기만 해도 배부른
최고민수(박민수) 지음 / 온더페이지 / 2026년 3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따뜻한 국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새벽부터 사골을 고아 국물을 냈고, 그 냄새가 골목 어귀까지 번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 국밥 한 그릇에 수천 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는 걸. 소를 키우고, 뼈를 고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그 행위 하나하나가 문명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음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인간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다. 전쟁이 음식을 바꾸고, 음식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종교가 식탁을 규정하고, 식탁이 종교를 먹여 살리기도 했다. 와인 한 잔에는 디오니소스 신화가 녹아 있고, 빵 한 조각에는 파라오의 치세와 혁명의 함성이 배어 있다. 음식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곧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최고민수 박민수님은 책을 통해 흥미로운 음식과 역사를 재미있게 설명해 주어 단숨이 읽을 수 있었다. ^.^와인을 처음 제대로 마신 건 20대 중반이었다. 선배가 잔을 건네며 말했다. "일단 돌려봐."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와인이 잔벽을 타고 흘러내렸고, 선배는 그걸 '와인의 눈물'이라 불렀다. 그때 나는 그게 그저 낭만적인 표현인 줄만 알았다. 알코올이 물보다 빨리 증발하기 때문에 생기는 마랑고니 효과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와인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경 조지아 코카서스 지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포도씨와 항아리, 와인 제조 도구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다. 성경 속 노아도 방주에서 내려와 포도를 심고 와인을 빚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와인이 음료를 넘어 문명의 산물로 자리 잡게 된 건 로마 덕분이었다. 유럽의 물은 석회질이 많아 마시기 어려웠고, 로마 병사들은 와인을 물 대신 마셨다.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와인을 멀리 운반하기보다 아예 현지에서 포도를 재배하는 쪽이 낫다는 판단이 섰다. 프랑스, 독일의 포도밭은 그렇게 생겨났다. 와인이 종교와 만나면서 그 운명은 더욱 깊어졌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빵과 와인을 나눈 이후, 와인은 가톨릭 미사의 필수품이 되었다. 수도원은 와인을 생산하고 양조법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14세기, 교황이 프랑스 아비뇽으로 강제로 이주당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아비뇽 유수라 불리는 이 사건은 단순한 권력 투쟁이 아니었다. 교황과 사제단이 70년간 프랑스 땅에 머물면서 미사에 쓸 와인을 프랑스에서 조달하게 되었고, 아비뇽 인근 론 지역은 비로소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발돋움했다. 와인 한 병의 탄생 뒤에 이토록 복잡한 역사가 숨어 있을 줄이야.위스키와 브랜디 이야기는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끈다. 이슬람 세계에서 발전한 연금술과 증류 기술이 십자군 전쟁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다. 본래 금을 만들려던 시도가 술을 만드는 기술로 변모했다. 인류의 위대한 실패담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금을 얻지 못하는 대신, 저울과 플라스크와 증류기를 얻었다. 그리고 스카치 위스키를, 코냑을, 보드카를 얻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위스키를 빚기 시작한 건 포도가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 때문이었다. 와인 대신 보리로 증류주를 만들었다. 그런데 잉글랜드가 합병 이후 전통 증류주에 높은 세금을 매기자, 스코틀랜드 양조업자들은 북부 고지대의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이탄으로 맥아를 건조하면서 독특한 스모키 향이 스며들었고, 셰리 오크통 안에서 몇 년을 숨어 지낸 밀주는 어느새 황금빛 호박색 위스키로 변신해 있었다. 탄압이 명주를 만든 셈이다. 왕실 귀족들마저 이 밀주에 손을 댔고, 결국 영국 정부는 세금을 대폭 낮추며 합법적인 양조장을 허용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맛있는 형태로 남은 경우다. 브랜디의 탄생도 비슷한 우연들의 산물이었다. 프랑스 코냑 지방은 석회질 토양에서 자란 신맛 강한 포도로는 와인 경쟁력이 없었다. 종교전쟁으로 포도밭이 황폐해지자, 네덜란드 상인들이 와인을 증류하자고 권했다. 실패한 땅에서 세계 최고의 술이 탄생했다. 브랜디라는 이름 자체도 네덜란드어 '브란데베인', 즉 '태운 와인'에서 왔다. 불에 태워 증류한다는 의미였다.음식의 역사를 읽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감각이 있다. 허기다. 물리적인 허기가 아니라, 알고자 하는 허기. 이 재료는 어디서 왔을까, 이 요리는 왜 이 모양일까, 이 맛에는 어떤 사연이 담겼을까. 한 잔의 와인을 마시면서 기원전 코카서스의 포도밭을 떠올리고, 바게트를 한 입 베어 물면서 프랑스 혁명 전야의 굶주린 파리 시민들을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음식을 역사로 읽는 방식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라"고 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장 자크 루소의 글에서 비롯된 오해였고, 그 오해가 한 여인의 목숨을 단두대로 이끄는 데 일조했다. 가짜뉴스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그 피해는 언제나 현실이었다. 음식의 이야기는 그렇게 권력과 정치와 인간의 나약함을 동시에 품는다. 요리는 인간이 자연을 길들인 방식이다. 불을 사용하고, 발효를 이용하고, 증류를 고안하고, 숙성을 기다린다. 그 모든 과정이 문명이다. 우리가 오늘 무엇을 먹는가는, 수천 년 전 누군가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의 결과다. 식탁 위의 모든 것은 기억이다.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일이 이토록 맛있을 줄은, 음식의 역사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