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 인간의 비합리성을 밝혀낸 행동경제학, 그 시작과 완성
리처드 탈러.알렉스 이마스 지음, 임경은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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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의 말미에서 인간의 정신을 하나의 동물원으로 묘사한다. 이성을 상징하는 인간의 형상 옆에는 용기와 사회성을 나타내는 사자가 버티고 있고, 그 아래에는 욕망과 충동을 대변하는 기묘한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 괴물은 머리가 여럿 달린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온순한 동물의 얼굴과 사나운 짐승의 얼굴을 번갈아 드러낸다. 플라톤에 따르면 뛰어난 인간은 이성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지만, 평범한 사람들 대부분은 이 다두(多頭)의 괴물에 이성이 끌려다니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시카고 대학 부스 경영대학원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와 알렉스 이마스(Alex Imas)가 공동 집필한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는 바로 이 오래된 질문(인간은 과연 이성적인가?)을 행동경제학의 렌즈로 다시 들여다본다. 1991년 초판이 나온 이후 30여 년의 연구 성과를 각 챕터 말미에 덧붙인 이 책은, 표준 경제학 이론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합리적 인간'이라는 전제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촘촘한 경험적 증거로 해체한다. 책의 제목이 된 '승자의 저주'는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낙찰자가 종종 실제 가치보다 과도하게 지불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지만, 저자들은 그 개념을 훨씬 넓은 차원으로 확장한다. 승자의 저주란 결국 '이긴다는 환상' 이면에 도사린 인간 판단의 체계적 오류를 뜻한다.


경제학 교과서가 그려온 인간은 단순하고 아름답다. 그는 안정적이고 잘 정의된 선호 체계를 지니고 있으며, 시장이라는 무대에서 그 선호와 일관성 있게 행동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미래를 일정한 비율로 할인하며, 타인의 이득에 무관심하게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한다. 이 모델의 매력은 그 명쾌함에 있다. 수학적으로 정식화하기 쉽고, 거시적 시장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상당히 유용하다. 탈러와 이마스는 이러한 표준 경제학 모델이 경험적 데이터가 부족하던 시절 이론적 필요에 의해 태어났음을 솔직하게 지적한다. 편리한 기본 가정이 오랜 관성 덕분에 진리처럼 굳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행동경제학은 바로 이 인간상에 균열을 낸다. 책이 다루는 '변칙들(anomalies)'은 실험실 안에서만 발견되는 인위적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시장과 삶의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포착되는 패턴이다. 이 책의 개정판은 초판 이후 수십 년간 쌓인 재현 연구들을 망라하며, 핵심 발견들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기업 인수합병 시장을 분석한 한 연구는 경쟁 입찰에서 패배한 기업이 승리한 기업보다 이후 주가 수익률에서 평균 24% 앞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돈을 더 낸 쪽이 더 손해를 보는 이 아이러니는, '가장 낙관적인 평가가 곧 가장 과도한 가격 지불'로 이어진다는 승자의 저주의 생생한 현실 버전이다.

책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공명하는 주제는 시간에 걸친 선택, 즉 '기간간 선택(intertemporal choice)'의 변칙이다. 표준 경제학은 인간이 미래의 보상을 일정한 비율로 할인한다고 가정한다. 1년 뒤의 100달러는 오늘의 90달러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면, 2년 뒤의 100달러는 81달러와 같은 가치를 지녀야 한다. 이 지수적 할인(exponential discounting) 모델의 핵심은 할인율의 일관성이다. 시간의 간격이 달라져도 선호의 순서는 뒤집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인간은 그렇지 않다. 탈러와 이마스가 제시하는 알람 시계의 비유가 이를 절묘하게 포착한다. 전날 밤의 나는 이른 기상이 '늦잠 15분'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판단해 알람을 맞춘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실제로 그 순간이 닥치면 우선순위는 순식간에 뒤집힌다. '내일의 나'가 설정한 계획을 '오늘 아침의 나'가 무너뜨리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들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 자아인가? 알람을 맞추는 자아인가, 알람을 끄는 자아인가? 이 물음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자기 통제의 실패가 왜 합리적 선택 이론의 틀에 포착되지 않는지를 드러내는 핵심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쌍곡 할인(hyperbolic discounting)'이라 불리는 이 현상으로 가까운 미래일수록 할인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경향은 인간이 계획을 세우면서도 그 계획을 번복하는 행동 패턴의 근본 원인이다.


경제학의 합리성 개념은 선호의 일관성을 전제한다. 사과를 블루베리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사과를 택해야 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이 기록한 '선호 역전(preference reversal)' 현상은 이 전제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맥락이 달라지면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대상에 대해 정반대의 판단을 내린다. 저자들이 드는 스테레오 예시는 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전제품 매장에서 두 스테레오 시스템을 비교할 때, 우리는 미묘한 음질 차이에 집중한다. 경쟁 제품들이 나란히 놓여 있으니 비교가 용이하다. 그런데 구입 후 집에 돌아오면 평가 기준이 달라진다. 이제 스테레오는 거실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는지의 문제로 다가온다. 경쟁 대상 없이 홀로 놓인 제품을 바라보며, 우리는 매장에서와는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결과적으로 매장에서 '맞다'고 느꼈던 선택이 집에서는 '후회스러운' 선택이 된다. 탈러와 이마스가 이 관찰에서 도출하는 결론은 도발적이다. 선호는 고정된 채로 마음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받는 순간, 선택의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관된 선호 체계를 가진 합리적 행위자가 아니라,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즉흥적으로 판단을 조립하는 존재다. 이 발견이 불편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인지적 결함이 아니라 인간 판단의 구조적 특성임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의 가장 흥미로운 서사 중 하나는 이 분야가 학계의 저항 속에서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에 관한 것이다. 탈러와 이마스는 행동경제학의 발견들이 주류 경제학계에서 처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솔직하게 기술한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반론은 이른바 '혼란한 피험자 가설(confused-subjects hypothesis)'이다. 실험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적 행동은 피험자들이 실험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충분한 지식이나 경험이 있으면 해소된다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이 가설에 신랄한 유머로 응수한다. 협력 행동을 연구한 공공재 게임 실험에서 이기적 합리인 모델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협력이 관찰되자, 일부 경제학자들은 피험자들이 '감쪽같이 속아 사려 깊은 인간처럼 행동하게 된 것'이라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 설명의 구조가 흥미롭다. 이기심이 기본 상태이고, 협력은 착각이나 혼란의 산물이라는 전제가 이미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표준 이론의 핵심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 이론에 위배되는 증거를 피험자의 결함으로 돌리는 논리적 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이러한 저항의 원인을 탈러는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진단한다. 경험적 데이터가 부족하던 시절, 수리적으로 우아하고 다루기 편한 합리적 행위자 모델은 경제학자들에게 거의 유일한 작업 도구였다. 도구에 익숙해지면 그 도구가 세계를 온전히 반영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행동경제학이 예측하는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여야 할 경제학자들 자신에게서 발현된 셈이다.


행동경제학이 오늘날 신뢰할 만한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흥미로운 발견을 많이 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탈러와 이마스는 이 분야가 일찍부터 채택한 방법론적 엄밀성, 실험 지침과 데이터의 전면 공개, 직접 재현을 통한 축적적 과학 구축이 토대를 튼튼히 했다고 강조한다. 특히 버논 스미스, 찰스 플롯, 앨빈 로스 등 실험경제학의 선구자들과의 초기 교류가 이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든 후속 연구가 원래 설계를 통제 조건으로 포함시키는 관행 덕분에, 재현은 과학적 과정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또한 금전적 인센티브를 높이거나 실험실을 벗어나 현실 시장으로 이동했을 때도 핵심 변칙들은 오히려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손실 회피, 보유 효과, 시간 불일치, 사회적 선호—이 모든 현상이 실험실 밖에서도 일관되게 관찰된다는 것이 개정판이 축적한 가장 중요한 성과다. 행동경제학의 기초가 무너지고 있다는 일부의 우려와 달리, 이 분야의 토대는 꽤 견고하다.

쿤(Thomas Kuhn)의 과학철학에 따르면,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변칙들이 충분히 축적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수십 년에 걸쳐 쌓인 행동경제학의 변칙들은 경제학에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는가? 탈러와 이마스의 대답은 의외로 조심스럽다. 그들은 경제학에 아직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주류 경제학 교과서는 여전히 신고전주의적 합리인 모델을 중심으로 서술되며, 행동경제학은 기껏해야 별도의 장(章)으로 격리된 '흥미로운 예외들의 모음'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저자들이 더 근본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은, 과연 경제학에 새로운 통일 이론이 등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플라톤이 묘사한 것처럼 여러 충동과 체계가 경합하는 복합체라면, 그 복합체를 하나의 일관된 공리 체계로 포착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합리성(혹은 다른 어떤 단일 원리)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통일 이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그런 이론이 등장한다 해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왕좌의 사칭자에 불과할 것이라는 탈러와 이마스의 통찰은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그럼에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건강보험 가입, 연금 저축, 소비자 계약 등 수많은 실생활 영역에서 기업과 정부는 행동경제학의 통찰을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탈러가 『넛지(Nudge)』에서 제시한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ure) 개념은 이제 정책 입안의 언어로 자리잡았다. 소비자들이 어떤 건강보험 플랜에 기본적으로 가입되어 있는지, 연금 저축이 자동으로 시작되는지 여부가 사람들의 재정적 미래를 결정짓는다. 교과서는 느리게 바뀌지만, 세계는 이미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승자의 저주>를 덮으면서 남는 느낌은 불편함과 해방감의 기묘한 혼합이다. 불편함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품어온 자아상(일관되고 합리적이며 자신의 이익을 명료하게 추구하는 존재)이 얼마나 많은 허구에 기대고 있는지를 깨닫는 데서 온다. 해방감은 그 허구를 벗어나 인간을 있는 그대로, 즉 맥락에 민감하고, 현재에 편향되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선호를 즉흥적으로 구성하는 존재로 바라볼 때 비로소 더 유용한 경제학, 더 정직한 사회과학이 가능해진다는 인식에서 온다. 플라톤의 다두 괴물은 결코 순화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행동경제학의 성과는 그 괴물을 없애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하는 데 있다. 탈러와 이마스는 이 책을 통해 인간 본성의 실제 지형도를 그린다. 그 지도는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빈칸이 많다. 그러나 없는 길을 있다고 속이는 지도보다는, 있는 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불완전한 지도가 훨씬 유용하다. 경제학도, 인간도, 그리고 그 둘의 관계도 아마 이 불완전한 지도를 들고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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