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이 선을 넘을 때 즉각 꺼내는 단호한 문장 63
박형석 지음 / 초록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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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책은 읽는 내내 자꾸 과거의 장면들을 소환한다. 박형석님의 <무례함이 선을 넘을 때 즉각 꺼내는 단호한 문장 63>이 그랬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떠오르는 건 화려한 이론이 아니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 순간들이었다. 회의실에서, 가족 모임에서,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왜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왜 웃으며 넘겼을까. 그리고 왜 집에 돌아와서야 분노와 후회가 밀려왔을까. 이 책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동시에, 더 나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문제는 내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침묵과 폭발 사이에서 길을 잃었을 뿐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를 지키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무례한 말이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시점은 그 말을 들은 순간이 아니다. 진짜 고통은 그 이후에 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샤워를 하는 동안, 잠들기 직전. 그 말을 되새기며 나는 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자책하는 그 시간들. 상대의 말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저자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무례함이 상처가 되는 이유는 그 말 자체보다, 그 말을 어떻게 정리하고 소화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의 무방비 상태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예민한 걸까", "괜히 분위기를 망친 건 아닐까"라는 의심부터 한다. 그 순간 관계의 주도권은 이미 상대에게 넘어가 있다. 특히 그 무례함이 애정, 걱정,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을 때 우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전제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자동적인 의심을 멈추게 한다. 무례함을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로, 패턴으로 읽게 만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설명을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우리는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이해받고 싶어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설명한다. 내 상황을, 내 입장을, 내 마음을. 하지만 그 설명이 길어질수록 나는 더 초라해지고, 상대는 더 많은 틈을 발견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문장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이 방식으로는 대화하지 않겠습니다", "내 입장은 다릅니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요?" 이 문장들은 짧고 단호하다. 감정을 폭발시키지도 않고, 상대를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저 판의 규칙을 다시 세울 뿐이다. 처음에는 너무 직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문장들이 직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그동안 너무 돌려 말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경계 설정이 마치 공격처럼 느껴질 만큼, 나는 무방비 상태에 길들여져 있었다.

책이 다루는 관계의 스펙트럼은 넓다. 직장 상사의 감정적인 언어, 가족의 통제를 가장한 걱정, 연인의 가스라이팅, 초면에 건네는 불편한 농담까지. 각 관계마다 무례함은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다. 특히 직장 내 관계에서 등장하는 사례들은 현실감이 높았다. "그래서 대안은?" "문제점만 찾지 말고 해결책을 제시해"라는 식의 말들. 얼핏 들으면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그 뒤에 숨은 의도는 책임 회피와 감정 전가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건 의사결정권자의 몫입니다"라고 답하라고 제안한다. 역할과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 그것이 무례함에 대응하는 첫걸음이다. 가족 관계에서의 무례함은 더 복잡하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 뒤에 숨은 통제, "다 컸으면서 왜 그것도 못해"라는 식의 비하. 가족이기에 더 참아야 한다는 관념이 우리를 더 무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명확히 말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무례함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고. 오히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분명한 경계가 필요하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기록이다. 특히 가스라이팅이나 지속적인 무례함에 노출된 경우,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현실감을 지키는 도구가 된다. "그런 적 없어", "네가 오해한 거야"라는 말로 기억을 왜곡당할 때, 기록은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처음에는 기록한다는 것이 과한 대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업무에서는 늘 기록한다. 회의록을 쓰고, 메일을 남기고, 문서를 보관한다. 왜 관계에서는 기록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기록은 불신의 표현이 아니라,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고민한 지점은 이것이었다. 단호하게 경계를 긋는 것과 무례하게 대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저자가 제시하는 문장들이 때로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문장들은 상대를 비하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그저 더 이상 이 방식으로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할 뿐이다. 단호함과 무례함의 차이는 의도에 있다. 무례함은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지만, 단호함은 나를 지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무례함은 상대의 존엄을 무시하지만, 단호함은 나의 존엄을 지킨다. 그 선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 실린 문장들을 그대로 외워서 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문장들을 재료로 삼아 나만의 언어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문장은 내게 너무 강하게 느껴질 수 있고, 어떤 문장은 너무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관계의 맥락도, 내 성격도, 상황도 모두 다르니까.

나는 책을 읽으며 여백에 나만의 답변을 적어보았다. 같은 의미지만 조금 더 부드럽게, 혹은 조금 더 명확하게. 그 과정 자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어떤 말에 상처받았고, 어떤 경계가 필요한지. 내가 진짜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결국 이 책이 주는 것은 완성된 대사가 아니라,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침묵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선을 그을 수 있다는 것. 그 작은 깨달음이 일상을 조금씩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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