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을 따라야 인생이 달라진다 - 열심히 살아도 공허한 사람들에게
메건 헬러러 지음, 이현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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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탠포드 졸업장과 구글 임원직. 누가 봐도 완벽한 이력서를 가진 사람이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공황발작이었다. 메건 헬러러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역설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이루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가?

우리는 평생 하나의 공식을 믿으며 살아왔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공식. 그러나 이 공식대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지금 번아웃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는 충격적이다. 직장인의 30%만이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으며, 84%가 번아웃 증상을 경험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목적지'에만 집착해왔다는 것이다. 승진, 연봉, 타이틀 같은 명확한 도착점을 향해 달려가면서, 정작 그 여정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는 외면해왔다. "일단 저기만 도착하면 행복할 거야"라고 되뇌며 현재의 고통을 견뎌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마주한 것은 예상했던 충만함이 아니라 공허함이었다.

소설가 E. L. 도크토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밤에 운전하는 것과 같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그렇게 전체 여행을 완주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방향을 따르는 삶의 본질이다. 대법관이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모든 결정을 그것에 맞추는 대신, 지금 당장 흥미로운 헌법 수업을 듣는 것. 65세에 은퇴할 회사를 20대에 정하는 대신, 지금 경험하고 싶은 직무를 선택하는 것. 데이트 상대가 '운명의 사람'인지 판단하려 애쓰는 대신, 단지 다음 만남을 원하는지만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방향적 삶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바텐더였을 때, 헬러러는 그녀와 함께 일했다. 그들은 그녀가 어떤 구체적인 직책이나 역할을 가질지 예측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공공 서비스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다음 한 걸음이 무엇인지만 찾았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플린트와 스탠딩록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났다. 명확한 커리어 계획에 들어맞지 않는 선택이었지만, 그것이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길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여행에서 돌아온 날, 의회 출마 제안 전화를 받았다.

'나의 목적을 찾아야 해'라는 강박은 현대판 목적지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벽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스프레드시트를 붙들고 앉아 '내 인생의 목적'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목적은 한 번 달성하면 끝나는 도착점이 아니라 계속 나아가는 방향이다. 목적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호기심을 따르는 것이다. 배고픔이 영양이 있는 곳을 알려주듯, 호기심은 충만함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 호기심은 산만함이 아니라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신호다. 우리는 호기심을 따라 작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야망 탓으로 돌린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게 문제야.' 하지만 야망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야망은 단지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욕구일 뿐이다. 문제는 '맹목적 야망'이다. 세상이 인정해주는 것, 남들 눈에 대단해 보이는 것만 좇는 야망.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지는 묻지 않고 외부의 기준만 따르는 야망. 이것은 '나다움'을 삭제한 성공이다. 성공했다고 '보이는' 것과 성공했다고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정렬된 야망'은 나의 진정한 선호, 재능, 기쁨, 호기심을 반영한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가 중요하다. 부모나 사회에게서 물려받거나 흡수한 욕망인가, 아니면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욕망인가? 헬러러에게 구글은 '성공'이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성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승진과 보너스를 받아도 공허했다. 반면 책을 출간하고 코칭 사업을 운영하는 지금은 깊은 충만함을 느낀다. 똑같은 '성공'이지만 경험은 천지 차이다.

'따뜻해-차가워' 놀이를 기억난다. 한 명이 물건을 숨기고 다른 사람이 찾는데, 가까워지면 "따뜻해!"라고, 멀어지면 "차가워!"라고 외치는 놀이. 방향적 삶은 정확히 이것과 같다. 각 갈림길에서 "이게 더 따뜻한가, 더 차가운가?"만 묻는다. 정확한 도착지를 몰라도 괜찮다. 한 걸음씩 따뜻해지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핵심은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실험하고, 배우고, 새로운 정보를 얻어 계속 조정해나간다. 한 자리에 앉아서 정답을 맞히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미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실패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과 조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일단 행동하라. 어떤 행동이든. 더욱이 현실 세계에서는 숨겨진 물건이 계속 움직인다. 25세의 나에게 따뜻했던 것이 35세, 45세에는 차가울 수 있다. 세상도 나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내면과 외부 세상의 변화에 반응하며 진화해야 한다.

방향적 삶의 핵심 역설은 이것이다. 결과에 덜 집중할수록 과정과 결과가 더 충만해진다.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예측하려는 노력을 멈출 때 새로운 기회들이 나타난다. 세상이 어떨 거라고 기대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와 상호작용할 때,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선택지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완벽한 10개년 계획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단지 방향이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보면서도 전체 여행을 완주할 수 있다. 목적지가 아무리 움직여도 상관없다. 방향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결국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남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를 멈추라. 대신 지금 이 순간 나를 따뜻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으라. 그것이 진정으로 내 것인 삶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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