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OUT 영국·GB·UK - 지식 바리스타 하광용의 인문학 에스프레소 TAKEOUT 시리즈
하광용 지음 / 파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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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영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빅벤, 유니언 잭, 홍차, 버버리, 프리미어리그, 그리고 왕실. 영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분명하지만, 정작 이 나라의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본 적은 드물다. 하광용 작가의 《영국 GB UK》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든다. 책은 흔히 떠올리는 여행 가이드북이나 역사 교양서의 틀을 벗어나, 한 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입체적이고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목부터 흥미롭다. 영국, GB, UK. 모두 같은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왜 이렇게 여러 이름이 필요한 걸까. 올림픽에서는 GB로, 축구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쪼개지는 이 나라의 정체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 서사다. 광고인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저자는 영국을 지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스토리와 이미지, 상징과 감정이 중첩된 브랜드'로 읽어낸다. 이런 시각은 여행서에서도, 역사책에서도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접근이다. 'TAKE OUT' 시리즈의 네 번째 책으로 시대순 서술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주제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듯 각자 취향에 따라 어느 장부터 읽어도 좋다는 자유로움이 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흩어진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며 영국이라는 거대한 그림이 완성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첫 번째 매력은 그 복잡성에 있다. 우리가 '영국'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의 정식 명칭은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다. 세계에서 가장 긴 국호를 가진 나라이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 국가의 연합체다. 책은 유로 2024 결승전을 앞두고 SNS에 퍼진 응원 지도 이야기로 시작한다. 유럽의 모든 국가가 잉글랜드가 아닌 스페인을 응원했고, 놀랍게도 같은 영국 내의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조차 잉글랜드의 패배를 바랐다는 것. 이는 브렉시트의 영향만은 아니다. 수백 년간 이어진 복속과 반복의 기억이 오늘날 스포츠와 문화 속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증거다. 저자는 이런 역사를 무겁게 풀기보다 현대의 스포츠 이벤트나 대중문화의 장면을 끌어와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올림픽에서는 하나의 GB로 뭉치지만, 축구에서는 철저히 분리되는 이 나라의 이중성. 이것이 바로 영국이 영국인 이유다. 역사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대복이 다. 유니언 잭의 탄생 과정도 흥미롭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국기. 잉글랜드의 십자가, 스코틀랜드의 X자 십자가, 그리고 아일랜드의 적십자가 겹쳐지며 만들어진 이 깃발은 통합과 갈등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정치적 협상과 역사적 타협의 산물인 것이다.

영국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왕실이다. 21세기 오늘날에도 왕이 군림하는 입헌군주제 국가. 그것도 비교적 적극적인 편에 속하는 나라. 국호 자체가 'Kingdom'을 표방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왕실은 화려한 의전이나 정치적 상징이 아니다. 저자는 왕관 뒤에 숨겨진 인간의 얼굴과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 공의 사랑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17세에 외사촌 알버트 공을 보고 첫눈에 반한 빅토리아는 여왕이 된 후 그에게 직접 청 혼했다. 외모지상주의였던 그녀는 잘생긴 그의 얼굴에 푹 빠졌고, 학식과 인품까지 갖춘 그와의 결혼을 꿈꿨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평범한 부부와 다르지 않았다. 다혈질인 여왕은 남편을 닦달하고 고성을 질렀으며, 화가 나서 방문을 걸어 잠근 알버트에게 "문을 열라"고 명령하다가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여왕이 아닌 한 여자, 한 아내로서의 모습이다. 그렇게 합을 맞춰가던 부부에게 비극이 찾아왔다. 알버트 공이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때부터 빅토리아 여왕은 40년간 검은 상복을 입고 윈저성에 칩거하며 과부로 살았다. 유교 문화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긴 애도의 시간.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군주가 서열상 자기보다 낮은 신하의 죽음을 이토록 오래 슬퍼했다는 것은,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영국 왕실을 관광 상품이나 가십거리가 아니라, 영국의 정서와 가치관을 응축한 문화 코드로 읽게 만든다. 헨리 8세의 여섯 왕비 이야기는 또 다른 차원의 드라마다. 새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두 명의 왕비를 런던타워에서 처형한 왕. 앤 불린에게 반해 당시엔 불가능했던 이혼까지 감행하며 결혼했지만, 3년도 안돼 간통과 근친상간의 누명을 씌워 참수형에 처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죄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시녀와 결혼하고 싶어서였다. 흥미로운 것은 네 번째 왕비 클레베의 앤이다. 초상화를 보고 반해 독일에서 불러들였지만 실물을 보고 실망한 헨리 8세는 그녀를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그 '못생김' 덕분에 클레베의 앤은 목숨을 건졌다. 왕실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이런 인간적 면모들은 딱딱한 연표 속 사건들을 생생한 드라마로 되살린다.

책을 읽고 나면, 영국을 지도 위의 한 점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 기억과 서사가 켜켜이 쌓인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바라 보게 된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며 하나의 윤곽을 그린다. GB와 UK의 차이, 백년전쟁과 유니언 잭의 탄생, 명예혁명과 왕위 계승의 복잡한 역사, 런던타워에서 희생된 왕비들, 미국 독립을 이끈 영국인 토머스 페인, 산업혁 명의 배경이 된 기후 조건까지.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영국을 만들어낸 요소들이다. 책은 한 나라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문명과 전통, 역사와 브랜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광고인다운 시선으로 국가를 브랜드처럼 읽어내고, 역사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며,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저자의 방식은, 비단 영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나라를, 어떤 문화를, 어떤 역사를 바라볼 때 가져야할 시선에 대한 하나의 모범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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