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척학전집 : 훔친 심리학 편 - 있어 보이는 척하기 좋은 인간 매뉴얼 세계척학전집 2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깨닫는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이라는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그 미로에 희미한 촛불을 켜주는 것과 같다. 완벽한 지도를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둠 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지 않도록 작은 빛을 비춰준다. 책에서 건네준 심리학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의문들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왜 나는 특정한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고, 어떤 사람들은 나를 긴장시키는가? 왜 같은 일을 겪고도 어떤 이는 무너지고 어떤 이는 더 강해지는가? 심리학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그 답은 수학 공식처럼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안개 낀 숲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조금씩 더 많은 것이 보이지만, 결코 전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는 없다.

"인간 사용 설명서"라는 표현이 처음에는 다소 기계적으로 느껴졌다. 인간을 어떻게 가전제품처럼 설명서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정말로 서로에 대한 매뉴얼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아니,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매뉴얼조차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 카페에서 우연히 옆자리 커플의 대화를 엿 들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거 야?" 같은 질문들이 테이블 위를 맴돌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같은 언어를 쓴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것. 매슬로가 말한 욕구의 단계들을 생각해본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과 사랑 의 욕구, 존중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 이 간단해 보이는 피라미드 안에 얼마나 복잡한 인간의 마음이 담겨 있는가. 누군가는 아직 안전을 갈구하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이미 자아실현의 단계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도, 우리는 각자 다른 층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매슬로가 신경증 환자 대신 링컨과 아인슈타인, 루스벨트를 연구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오래 머물렀다. 심리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연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춰왔다. 어떻게 하면 병을 고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하지만 매슬로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인간을 완전하게 만드는가?" 이 질문의 전환이 얼마나 혁명적인가.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부족함에만 집중해왔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하지 못하는 것, 내가 되지 못한 것이다. SNS를 스크롤하며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부족한 나를 채우려 애쓴다. 하지만 매슬로의 시선은 다르다. 그는 이미 빛나는 사람들을 보며 "저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물었다. 저녁 산책을 하다가 동네 공원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벤치에 앉아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었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더니, 그 는 자신이 평생 초등학교 교사였다고 했다. 퇴직 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돌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애들을 가르치던 그 느낌이 그리워요. 뭔가를 키워내는 기쁨 말이에요." 그의 눈빛에서 나는 매슬로가 말한 자아실현을 보았다. 거창한 업적이나 명성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욕구를 이해하고 그것을 소박하게 실현하는 모습. 심리학은 이 런 순간들을 설명해주는 렌즈다.

모든 이론은 불완전하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설도 마찬가지다. 경험적 증거의 부족, 문화적 편향... 비판의 목소리는 늘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완벽한 이론만이 가치 있는 것일까? 오히려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 매슬로의 이론은 완벽한 답이 아니라 유용한 질문을 제공한다. "지금 나는 어떤 욕구를 채우려 하고 있는가?", "내가 진정으 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초대한다. 친구와 커 피를 마시며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그녀는 최근 승진을 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 "다들 축하해주는데, 나는 왜 이렇게 공허할까?" 나는 매슬로의 이론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존중의 욕구는 채워졌는데, 자아실현의 욕구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건 아닐까?" 그녀의 눈이 커졌다. "맞아, 나는 인정받고 싶었던 거지, 이 일이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 심리학 이론은 이렇게 작동한다. 명확한 해답을 주는 대신, 우리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요즘 나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숙인 사람들, 피곤한 표정으로 졸고 있는 직장인들, 스마트폰 게임에 빠진 학생들. 각자의 얼굴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누군가는 안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출근길에 오르고, 누군가는 소속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한다. 심리학을 배우기 전에는 그저 ‘사람들'이었던 존재들이, 이제는 각자의 욕구와 동기, 불안과 희망을 가진 독립된 우주들로 보인다. 이것이 심리학이 주는 선물이다. 세상을 더 풍부하게 읽어내는 눈이다. 심리학 공부에 끝은 없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우주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융, 아들러, 프랭클, 매슬로.. 수많은 거장들이 평생을 바쳐 탐구했지만, 여전히 인간의 마음에는 미지의 영역이 더 많 이 남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 만약 인간의 마음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완전히 이해된 존재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예측 가능하고 지루한 삶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미완성이기에 우리는 계속 탐구한다. 알 수 없기에 계속 궁금해한다. 복잡하기에 계속 매력적이다. 심리학은 인간이라는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아니라, 그 미스터리를 더 깊이 음미하도록 돕는 도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