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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돈의 시대, 스테이블코인 - 경제 현장에서 본 달러 이후의 돈, 디지털 화폐 이야기
김신영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돈이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 앞에서 우리는 지금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금속 조각에서 종이로, 종이에서 디지털 숫자로 진화해온 화폐가 이제 블록체인 위의 코드로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블로체인 기술로부터 시작된 브트코인으로부터 이제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두되고 있는 또다른 형태의 암호화페인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알아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새로운 화폐가 가장 오래된 화폐의 원리로 회귀한다는 사실이다. 금 태환 증서가 금의 가치를 담보로 신뢰를 얻었듯이,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를 담보로 안정성을 확보한다. 기술은 첨단을 향해 달려가지만, 신뢰의 메커니즘은 결국 '무언가 확실한 것'에 기대어야 한다는 인류의 본능을 벗어나지 못한다. 비트코인이 보여준 극심한 가격 변동성은 화폐로서의 치명적 결함이었고, 스테이블코인은 그 반성에서 탄생했다. 혁신의 이면에는 언제나 보수적 지혜가 숨어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돈이 의존하는 신뢰의 구조는 기존 화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국가가 보증하는 전통적 화폐 체계에서, 우리는 국가라는 거대한 제도를 믿는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테더나 서클 같은 민간 기업의 준비금 관리 능력을 믿어야 한다. 신뢰의 대상이 국가에서 기업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권력 구조의 재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좀 더 신중하게 이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인 격변기를 맞고있는 세계는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곳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대안을 찾는다. 과거에는 실물 달러를 암시장에서 구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한다. 24시간 작동하는 글로벌 시장, 국경 없는 거래, 중개인 없는 직접 송금.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성은 실로 혁명적이다. 하지만 이 편의성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 국가의 국민들이 자국 화폐 대신 타국 화폐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통화정책은 무력화되고, 중앙은행은 경제를 조정할 수단을 잃는다. 화폐 주권의 상실은 곧 경제 주권의 상실로 이어진다. 아르헨티나처럼 이미 화폐 가치가 붕괴한 국가에서는 오히려 구원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건전한 통화 체계를 유지하는 국가에게는 잠재적 위협이 된다. 한국의 고민도 여기서 출발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지 않으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서둘러 도입하자니 새로운 리스크가 발생한다. 외환거래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디지털 공간에서 원화가 무분별하게 유통되면, 해외로 빠져나간 원화의 규모와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통화 관리의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이다. 진퇴양난의 딜레마다.
암호 화폐에 대한 큰 상처로 남은 테라-루나 사태는 잊혀지지 않는 경고음이다. 알고리즘으로 가치를 안정시키겠다는 야심찬 시도는 결국 거대한 폭락으로 끝났고, 수많은 투자자들이 재산을 잃었다.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역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준비금을 보관한 은행이 무너지면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도 함께 흔들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사건들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 시스템과 완전히 분리된 독립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에 깊이 의존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법정화폐를 담보로 하고, 은행에 준비금을 맡기고, 국채나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전통 금융의 위기는 곧 스테이블코인의 위기가 된다. 더 나아가 스테이블코인 자체가 금융 위기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뱅크런처럼 대규모 환매 요구가 발생하면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충격파가 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이 제공하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가족에게 빠르고 저렴하게 송금할 수 있게 되었다. 환전 수수료와 송금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월가의 거대 자본이 뛰어드는 것은 단순한 투기가 아니라, 글로벌 결제 시스템의 패러다임이 실제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니어스법을 제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달러 패권을 디지털 시대에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 그것은 곧 달러 영향력의 확장을 의미한다. 물리적 달러 지폐가 아니라 디지털 형태로 미국의 통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패권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기술 혁신이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테이블코인은 그저 편리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글로벌 권력 게임의 새로운 도구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에 집중하는 이유도, 유럽과 일본이 각자의 스테이블코인 정책을 모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폐는 언제나 권력이었고, 새로운 형태의 화폐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의미한다. 한국은 이 격변의 시기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섣부른 도입도, 무작정 거부도 답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철저한 준비와 단계적 접근이다. 규제 체계를 먼저 갖추고,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 공조를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기술 혁신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연구와 실험을 병행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프로젝트 한강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쟁은 돈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돈은 국가가 발행하고 보증해야 하는가, 아니면 민간이 더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가. 중앙집중적 통제가 안전한가, 분산된 시스템이 더 건강한가. 편의성과 안정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찾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아직 없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거대한 실험의 한가운데 서 있다. 어쩌면 미래의 화폐 시스템은 전통적 법정화폐와 스테이블코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형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다.확실한 것은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돈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가 준비되었든 그렇지 않든, 변화의 물결은 계속 밀려온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사유하며 현명하게 적응하는 것이다. 혁신과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인식하며,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