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디렉션 - 사진작가 이준희 직업 에세이
이준희 지음 / 스미다 / 202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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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무엇을 쫓으며 살아가고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한동안 말문이 막힐 것 같다.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이준희 작가의 책 여정을 따라가며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나는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가. 내 손에 든 것은 무엇이고, 내가 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빙빙 도는 나침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얼마나 정확한 비유인가. 우리는 모두 어느 시점에 그런 나침반을 들고 서 있었을 것이다. 바늘은 미친 듯이 회전하고, 우리는 그것이 멈추기를 기다리며 불안해한다. 때로는 그 기다림이 너무 길어서, 나침반을 내던지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그런데 작가는 그 회전하는 바늘을 붙들고 세계를 방랑했다. 카메라라는 무거운 쇳덩이를 어깨에 메고, 의미를 찾아 헤매며, 빛을 쫓았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방향을 찾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계시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무수한 발걸음, 수많은 셔터음, 끝없는 자기 질문의 축적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빛이란 무엇일까. 작가에게 빛은 사진의 기술적 요소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이었고, 방향이었으며, 존재의 이유였다. “빛이 없으면 어둠 조차 인식할 수 없다"는 C.S. 루이스의 통찰을 사진으로 체현한 사람. 나는 그의 글에서 빛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헌신을 느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빛을 쫓는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음악일 수도, 글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을 향해 걷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설령 그 빛이 때로 너무 강렬해서 눈이 부시고, 때로 너무 희미해서 길을 잃을 것 같아도...

"3승 20패." 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야구 전적으로 표현한 이 대목에서 나는 웃음과 동시에 서늘함을 느꼈다. 얼마나 솔직한가. 얼마나 용감한가. 자신의 실패를 숫자로 정량화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다. 우리 사회는 승리만을 기억한다. 603승을 기록한 임요환을 기억하지, 그가 430번 패배했다는 사실은 쉽게 잊는다. 하지만 작가는 정확히 그 지점을 파고든다. 승률 60%의 '황제'도 열 번 중 네 번은 진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진다는 것, 실패한다는 것에 대해 가진 공포 는 얼마나 과장된 것인가. 이 대목을 읽으며 내 삶의 전적표를 떠올렸다. 아마도 나는 작가보다 훨씬 더 참담한 성적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포기한 꿈들, 중단한 프로젝트들, 실패한 관계들. 그것들을 일일이 세어본다면 나는 아마 2승 30패 쯤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리그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그의 목표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아니라, "와일드카드 결정전에라도 나가서 언더도그로서 한 팀 한 팀 격파"하는 것. 이 얼마나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목표인가. 그는 자신이 1등 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희망이 아닐까. 완벽한 승리가 아니라, 다시 배트를 드는 용기. 무너진 담장을 걷어내고 벽돌을 다시 쌓는 끈기. 작가가 사십 줄에 접어들 어서도 "포기할 때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패배의 쓴맛을 충분히 알고도 여전히 게임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좋다."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촬영을 하기 위해서라면, 온몸에 힘이 빠질 정도로 지쳐도, 밤새 설계도를 그리며 잠을 못 자도 좋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는가? 몸이 가루가 되어도 좋을 만큼 하고 싶은 일이? 고단함마저도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많은 사람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워라밸, 번아웃, 휴식의 중요성. 물론 그것들은 중요 하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것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무엇이다. 그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거의 종교적인 헌신에 가까운 열정이다. 팬데믹 시기,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도 작가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한 손으로 절벽에 매달린 절박한 시간 속에서도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춤추는 사상>이라는 작품을 통해 소멸 위기의 지역에 에너지를 불어넣고자 했다. 생존의 문제와 예술적 지향을 동시에 붙잡으려 했다. 이것이 바로 직업 예술가의 삶이 아닐까. 그것은 낭만만으로도, 현실감각만으로도 유지될 수 없다. 두 가지를 동시에 움켜쥐고, 줄타기를 하듯 균형을 잡아가는 것.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다시 일어서며, 끊임없이 자신의 중심을 찾아가는 것이다. 장애인 스포츠 촬영 현장에서 작가가 느낀 자책감과 깨달음도 같은 맥락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선수들과 양팔을 잃은 선수들이 거침없이 바다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의 나약했던 의지를 반성했다. 온전한 신체를 가진 자신이 겪었던 고통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사진의 힘이 아닐까. 렌즈를 통해 타인의 삶을 목격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 작가가 "소셜 포토그래퍼"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그의 오랜 여정의 결과다.

실패의 경험은 성공의 토양이 되고, 방황의 시간은 내면을 정돈하는 치유의 과정이 된다. 언젠가 나도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까? 그때까지 나는 작가처럼 무거운 가방을 메고 길을 걸을 것이다. 내 안의 빛을 찾아서, 내 삶의 디렉션 을 발견하기 위해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지금의 이 방황조차도 빛나는 여정의 일부였음을 깨 닫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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