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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본다. '어디에 집을 사야 할까?''이 지역은 정말 개발될까?' 뉴스와 유튜브, SNS에는 매일같이 새로운 개발 호재가 쏟아진다. GTX가 들어온다더라, 신공항이 생긴다더라, 대규모 택지개발이 진행된다더라. 하지만 정작 그 소식들 중 얼마나 많은 것이 실제로 이루어질까? 이번에 읽은 김시덕의<한국도시 2026>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책은 부동산 투자 가이드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본질을 이해 하고,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정치와 정책의 순환 구조였다. 대통령이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선거철만 되면 비슷한 공약들이 되풀이된다. 균형발전, 지방 분권, 신도시 개발, 교통망 확충. 겉으로 보기엔 새로운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과거의 정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런 반복 속에서 시민들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 될까?" 하는 기대와 "어차피 안 되겠지" 하는 냉소 사이를 오가며, 우리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바로 '왜 어떤 공약은 실현되고 어떤 공약은 실패하는가'에 대한 구조적 이해다. 저자는 과거의 사례들을 통해 이 패턴을 보여준다. 가덕도 신공항 은 수십 년째 논의되고 있지만 실제 착공은 요원하다. 반면 GTX는 논란 속에서도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정치적 의지의 문제일까, 아니면 더 근본적인 경제적: 기술적 타당성의 문제일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정책이나 개발 계획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서울이나 강남의 부동산 뉴스만 열심히 챙긴다는 것. 이것은 올바른 판단일까? 우리는 종종 '서울 중심의 시각'에 갇혀 있다. 언론도, 유튜버도, 심지어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서울 사대문 안의 관점에서 전국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성장하고 있는 지역들을 놓치고, 반대로 과대평가된 지역에 현혹되기 쉽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현장'이다. 부동산을 평가할 때 단순히 호재 뉴스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인구 구조, 산업 기반, 교통 인프라, 생활 환경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 근처인가, 교통이 편리한가, 자연환경은 어떤가, 실제 도시계획은 어디까지 진행됐는가. 이 모든 것은 발로 뛰어야만 알 수 있다.
내년은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벌써부터 각 지역에서는 다양한 개발 공약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공항, 새로운 철도 노선, 대규모 산업단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 하지만 저자는 냉정하게 조언한다. "건설 사업 시작 단계에 제시된 예상 시간표는 참고로만 받아들여라. 이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인생 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 GTX가 좋은 예다. 처음 발표됐을 때는 금방이라도 완공될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노선이 계획됐고, 각 역 주변은 개발 호재로 들썩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사는 예상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당초 계획됐던 일부 노선은 백지화되거나 변경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호재'가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다. 그 지역에 정말로 수요가 있는가?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사업인가?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어야 진짜 정보와 소음을 구별할 수 있다.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서울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을 아우른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국을 세 개의 메가시티(대서울 권, 동남권, 중부권)와 여섯 개의 소권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대서울권은 이미 포화 상태다. 더 이상의 확장은 한계에 달했고, 이제는 재개발과 교통망 최적화가 과제다. 1기 신도시의 재건축, GTX로 인한 교통 패턴의 변화, 서울 외곽 신도시들의 성장.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동남권은 방산과 조선,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산업벨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등 국제 정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부산의 엑스포 유치 실패는 아쉽지만, 장기적으로 이 지역의 산업 경쟁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부권은 신흥 강자다. 세종시의 행정 기능, 청주와 오송의 바이오•반도체 산업, 대전 의 연구개발 역량이 시너지를 내고 있다. 포화된 수도권의 대안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자적인 경제권으로 성장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저자가 언급한 부산 2030 엑스포, 잼버리 사태, 전주와 익산의 코스트코, 고흥의 나로우주센터 같은 구체적인 사례들은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각 지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부동산 투자를 할 때 국제 정세를 고려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은 동남권 방산업체들에게 호황을 가져왔다. 미중 갈등은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고, 이는 평택과 용인, 천안과 청주의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후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발생한 대규모 홍수와 산불은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앞으로 이런 재난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발생할 것이다. 재난 취약 지역에 거주하는 데는 점점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집단 이주도 고려해야 할 수 있다. 이런 외부 요인들은 단기간에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동산을 선택할 때도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10년, 20년 후에도 이 지역이 살기 좋을 것인가? 산업이 유지될 것인가? 환 경은 괜찮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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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말도, 정치인의 공약도, 유튜버의 분석도 참고는 할 수 있지만, 맹신해서는 안 된다. 부동산을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남들이 뭐라고 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직접 확인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 지역에 가보고, 주변을 걸어보고, 실제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그래야만 진짜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