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 2026-2027 ㅣ 에이든 가이드북 &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5년 10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2월의 찬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아침, 나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묵직한 책 한 권을 펼쳤다.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 2026-2027. 864페이지에 달하는 이 가이드북의 무게감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의 간사이 여행이 조금은 덜 막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요즘 누가 900페이지에 가까운 가이드북을 만드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제작진은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했다고 한다. 여행의 불안을 덜어주려면 정보를 아낌없이 담아야 한다는 것. 실제로 현대 여행자들은 이동 중에는 스마트폰을 보고, 숙소에서 다음 날 일정을 계획할 때 종이책을 펼친다. 그렇다면 휴대성을 위해 정보를 희생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책장을 넘기며 나는 150장이 넘는 지도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에이든 특유의 정밀한 지도는 단순히 길을 찾는 도구가 아니었다. 마치 게임 속 맵을 열어보듯, 여행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우메다에서 난바까지, 교토 기온 거리에서 후시미 이나리까지, 동선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구글 지도로는 얻기 힘든,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였다.
책에는 2,000여 곳의 여행지와 음식점이 소개되어 있다. 처음에는 이 숫자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혼란을 주는 건 아닐까. 하지만 테마별로 정리된 구성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벚꽃과 단풍 스팟, 편의점 간식 비교, 드럭스토어 추천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카페, 지역별 빵집 순례. 각 테마는 단순한 정보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경험으로 엮여 있었다. 나는 도톤보리의 타코야키 맛집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각 가게의 특징과 추천 메뉴, 주문 방법까지 상세히 나와 있어서 일본어를 못해도 괜찮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고베 규 전문점 소개를 보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구이다오레(먹다가 망한다)'라는 오사카의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구나. 이 책은 단지 어디를 가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왜 그곳이 특별한지,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일본 여행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교통패스 선택이다. 주유패스, E패스, 각종 지하철과 전철 패스까지, 초보자에게는 암호 같은 이름들이다. 나는 지난 여행에서 잘못된 패스를 사서 오히려 돈을 더 쓴 기억이 있다. 이 가이드북은 패스별 비교표로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준다. 여행 일정과 동선에 따라 어떤 패스가 유리한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심지어 애플페이를 활용한 IC카드 발급법까지 수록되어 있다. 기술의 발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낸 것이다. 우메다 공중정원 소개 부분에서 나는 작은 디테일 하나를 발견했다. "주유패스 소지자는 09:30~15:00 사이 무료 입장 가능." 이런 팁 하나가 여행의 효율을 얼마나 높여주는지, 경험 많은 여행자라면 안다.
오사카는 활기차고, 교토는 고요하고, 고베는 세련되고, 나라는 목가적이다. 이 네 도시는 각자의 색깔이 뚜렷하지만, 간사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교토 파트를 넘기며 나는 금각사와 은각사, 기요미즈데라의 사진들을 오래 바라봤다. 천년 고도의 차분한 매력이 페이지 사이에서 숨 쉬는 것 같았다. 기온 거리를 걷다 마이코를 마주칠 수 있을까.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감각을 상상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고베의 이진칸 거리와 롯코산 야경, 나라 공원의 사슴들. 각 도시의 상징적인 장소들이 단순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그곳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설명되어 있었다. 이 책은 여행지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QR코드를 스캔하자 AI 오디오 가이드가 시작됐다. 지역의 특징, 명소의 유래, 음식의 역사를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준다. 눈으로 읽는 것과는 다른 생동감이 있었다. 아날로그 책이 디지털 기술과 만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낸 것이다. 출판사 타블라라사는 말한다. 아날로그가 항상 불편한 것은 아니라고. 디지털로 제공하기 어려운 편리함이 분명 존재한다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떨어졌을 때, 신호가 잡히지 않을 때, 우리는 여전히 종이의 단단한 신뢰를 찾게 된다. 864페이지의 무게는 부담이 아니라 안심이다.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는 확신. 캐리어에 넣고 다니다가 숙소에서 펼쳐보면 된다. 다음 날의 여정을 계획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그 시간이, 여행의 설렘을 키워주는 의식이 된다.
창밖을 보니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오사카의 거리도 겨울빛으로 물들어 있겠지. 도톤보리의 네온사인이 더 화려하게 빛나고, 교토의 사찰은 고즈넉한 설경 속에 잠겨 있을 것이다. 나는 책갈피를 끼워두고 노트를 펼쳤다. 첫째 날은 오사카성과 우메다 공중정원, 둘째 날은 교토 기온과 금각사, 셋째 날은 나라 공원과 고베 이진칸 거리. 동선을 그려가며 각 장소에서 맛볼 음식까지 체크했다. 드럭스토어에서 살 선물 목록도 적었다. 이 모든 계획이 한 권의 책에서 나왔다. 인터넷을 뒤지고, 블로그를 찾아다니고, 정보의 진위를 가늠하는 수고 없이. 10명 이상의 제작진이 1년 넘게 직접 걸으며 조사한 결과가 내 손안에 있다.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시작된다고. 지도를 펼치고 일정을 짜고 상상하는 이 순간도 여행의 일부라고.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 2026-2027은 단순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여행을 함께 준비하는 동반자였다. 겨울 간사이의 찬 공기와 따뜻한 음식, 고즈넉한 사찰과 화려한 거리가 뒤섞인 풍경이 벌써 눈앞에 그려진다. 이 책 한 권과 함께라면, 짧은 휴가도 충분히 풍요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간사이의 겨울과 만나 어떤 기억을 만들어줄지, 이제 기대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