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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마음 공부 - 소란과 번뇌를 다스려줄 2500년 도덕경의 문장들
장석주 지음 / 윌마 / 2025년 1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밤사이 쌓인 알림을 지우고, 뉴스피드를 스크롤하며, 놓친 메시지가 없는지 살핀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점심시간에도, 잠들기 직전까지 우리는 무언가를 소비한다. 정보를, 이미지를, 타인의 삶을.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순간조차 불안하다.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남들은 앞서가고 있는데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이것은 기술 중독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근본적인 불안의 구조다.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경험해야 하며, 더 많은 관계를 맺고, 더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 그 강박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자신 안에 쑤셔 넣는다. 마치 빈 공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문제는 이 채움의 욕구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아무리 많이 이뤄도 만족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결핍감만 커진다. SNS에서 타인의 화려한 일상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새로운 자기계발서를 사들이며 변화를 다짐하지만, 결국 또다시 소진되고 만다. 이 끝없는 순환 속에서 우리는 정작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노자가 2500년 전에 했던 말이 지금처럼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채우려 하지 말고 비우라고 했다. 더 많이 소유하려 들지 말고, 덜어내라고 했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진정한 충만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이다.비움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물건을 버리고 미니멀한 공간을 만드는 것일까.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노자가 말하는 비움은 더 근본적인 차원의 것이다. 그것은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 더 나은 직장, 더 높은 연봉, 더 넓은 집, 더 많은 인정. 그 욕망들이 겹겹이 쌓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고, 그것을 위해 또다시 자신을 채찍질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순간은 사라진다. 늘 미래의 어떤 성취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고, 지금 이 자리의 작은 행복들을 놓친다. 비움은 바로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출구다. 욕망의 고삐를 잠시 늦추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사회가 성공이라고 규정하는 것들을 맹목적으로 쫓기보다, 내 안의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소음을 줄여야 한다. 비움은 소극적인 포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선택이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곧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의미 없는 약속들을 줄일 때 진짜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이 생긴다. 쓸데없는 걱정을 내려놓을 때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 여백이 생긴다는 것은 숨을 쉴 공간이 생긴다는 뜻이다. 빽빽하게 채워진 일정표는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질식시킨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대응할 여유가 없고, 무언가 새로운 것이 들어올 틈도 없다. 반면 여백이 있는 삶은 유연하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고, 우연한 만남이나 영감이 찾아올 공간이 있다.노자 철학의 핵심에는 무위자연이라는 개념이 있다.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긴다는 뜻이다. 이것을 게으름이나 무책임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게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애쓰지 않는다는 것은 노력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 많은 '함'으로 가득하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우리는 쉬지 못한다. 일하지 않는 시간조차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자기계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는 두려움이 우리를 몰아댄다. 하지만 자연을 보라.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계절이 오면 자연스럽게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강물은 바다로 가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는다. 자신의 흐름을 따라 낮은 곳으로 흘러가다 보면 어느새 바다에 이른다. 이것이 무위의 본질이다.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물론 이것이 수동적인 자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일은 하지만, 씨앗이 싹트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씨앗 자체의 생명력과 자연의 섭리에 맡겨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무위의 태도다. 이 지혜는 특히 관계에서 빛을 발한다. 우리는 종종 상대를 바꾸려 하고,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관계는 꼬이고 갈등이 생긴다. 반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강요하지 않을 때 오히려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난다. 내가 물러설 때 상대가 다가오고, 내가 요구를 멈출 때 상대가 스스로 움직인다.과잉의 시대에 비움은 저항이다. 더 많이 가지라고, 더 많이 하라고, 더 빨리 달리라고 부추기는 세상에 대한 조용한 거부.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긍정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 대한, 천천히 흐르는 시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긍정이다. 노자의 가르침은 2500년 전 것이지만, 오늘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비움의 용기, 무위의 지혜, 약함 속의 강함. 이것들은 단순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태도다. 오늘 저녁, 잠들기 전에 한 가지만 비워보면 어떨까.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망. 그중 하나만이라도. 그렇게 작은 비움에서 시작해, 조금씩 우리 삶에 여백을 만들어간다면.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숨을 쉬고, 나 자신을 만나고, 진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