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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난중일기 코드 - 류성룡과 이순신의 위대한 만남
김정진 지음 / 넥스트씨 / 2025년 10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역사는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그 시선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한양의 의정부에서 전쟁 전체를 조망하던 류성룡의 눈과, 바다 위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적의 화살을 피하며 붓을 들었던 이순신의 손은 분명 같은 전쟁을 기록했지만, 그들이 남긴 문장의 온도는 달랐을 것이다. 김정진 교수의 신간이 던지는 가장 흥미로운 제안은 바로 이 '시차'를 동시에 읽어내자는 것이다. 징비록과 난중일기를 각각의 독립된 텍스트가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교차 배치했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마치 입체영화를 볼 때 두 눈의 시차가 만들어내는 깊이감처럼, 두 기록의 간극에서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진짜 부피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징비록을 읽을 때는 류성룡의 시각으로만, 난중일기를 읽을 때는 이순신의 내면으로만 전쟁을 이해했다. 그러나 1592년 같은 날, 한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남해 바다에서는 어떤 결단이 내려졌는지를 나란히 놓고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전쟁의 전체 그림'을 볼 수 있게 된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류성룡이 징비록 속에 의도적으로 숨긴 '코드'의 존재다. 430년이 지나서야 해독되었다는 이 암호는 과연 무엇일 까. 책의 홍보 문구만으로는 그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류성룡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고려하면 그가 남긴 침묵과 생략이야말로 가 장 웅변적인 메시지였을 것이다. 류성룡은 전쟁이 끝나고 정적들의 공격을 받아 파직당했다. 그가 징비록을 쓴 시점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후였다. 그럼에도 그는 개인적 원한이나 변명으로 책을 채우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국가 시스템의 실패와 교훈에 집중했다. 이런 류성룡이 '의도적으로 숨긴 메시지'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직접 말할 수 없었던 진실, 당대에는 너무 위험해서 명시할 수 없었던 비판, 혹은 미래 세대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경고였을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류성룡이 징비록 안에 '이순신 전기'를 숨겨두었다는 대목이다. 이순신이 전사하고 자신이 파직당한 후, 선조와 정적들이 이순신의 공적을 왜곡할 것을 우려해 아예 징비록 속에 이 순신의 일대기를 기록해둔 것이다. 이는 치밀한 전략이었다. 권력은 역사를 왜곡하지만, 기록은 진실을 보존한다는 믿음. 그리고 언젠가 미래의 독자가 이 진실을 발견해주리라는 희망. 류성룡은 징비록을 회고록이 아니라 '시간을 가로지르는 증언으로 설계했던 것이다.
책이 제기하는 또 하나의 화두는 '왜 기록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순신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매일 일기를 썼다. 전투가 끝난 밤, 지친 몸을 이끌고 촛불을 켜고 붓을 들었던 그 순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정진 교수가 지적하듯, SNS 몇 줄도 귀찮아하는 현대인들에게 이순신의 일기 쓰기는 거의 이해 불가능한 행위처럼 보인다.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일기인가. 그러나 바로 그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기록은 더욱 절실했는지 모른다. 기록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다. 오늘을 기록하는 것은 내일을 믿는다는 의미이고, 누군가 이것을 읽어주리라는 믿음이다. 난중일기는 전투 일지 뿐만 아니라,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한 줄, "몸이 아파 누웠다"는 소박한 기록, 간밤에 꿈에 류성룡을 만났다"는 그리움의 고백. 이런 문장들은 영웅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인간성이야말로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류성룡의 징비록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국가 시스템의 실패를 냉정하게 분석하면서도, 전쟁 속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 지 않았다. 기록은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의미의 발견이다. 류성룡은 전쟁의 참상을 기록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징비, 즉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것은 기록 없이는 불가능하다. 잊혀진 것은 반복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책에서 류성룡과 이순신의 관계를 '한국 역사상 최고의 브로맨스'로 표현한 부분은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을 넘어선다. 그것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던 두 사람이 어떻게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연대의 정치학'이다. 류성룡은 이순신을 천거했다. 그것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당시 이순신은 무명의 변방 장수였고, 그를 삼도수군통제사로 발탁하는 것은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류성룡은 이순신을 믿었고, 그 믿음은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 반대로 이순신은 류성룡을 '꿈에서조차 그리워했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 문장은 전장의 고독 속에서 이순신이 어떤 심리적 지지를 필요로 했는지 보여준다. 이순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한양에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신의 결정을 지지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순신에게 엄청난 힘이었을 것이다. 이 연대는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류성룡과 이순신의 협력은 전시 수상과 전선 사령관 사이의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류성룡은 이순신에게 전술적 자율성을 부여했고, 이순신은 그 신뢰에 승리로 화답했다. 동시에 류성룡은 정치적으로 이순신을 보호했고, 이순신은 군사적으로 국가를 지켰다. 이것은 역할 분담과 상호 신뢰에 기반한 전문적 파트너십이었다. 430년 전 류성룡과 이순신이 남긴 기록이 지금도 우리를 흔드는 이유는, 그들이 던진 질문이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